⊙ 진짜 커버/스토리

게리 무어......

2011. 2. 8. 21:55
게리 무어가 세상을 떠났다.
그에 관한 기억을 꺼내보려고 했는데, 실패다. 아티스트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게 몇 개 안되다 보니 어쩔 수 없다.

영국 헤비메틀, 그러니까 NWOBHM이라는 이름으로 영국 밴드들이 집중 소개될 때 게리 무어도 그 무리에 끼어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이는 그다지 없다. 밴드로 활동하긴 했지만 솔로 기타리스트로 더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래도 일본에서는 게리 무어가 80년대에 남긴 헤비메틀 시기에 대부분 NWOBHM 시기에 발표된 귀중한 음반이라는 내용을 음반 띠지에 적어놓아 그의 음악이 정확한 자리를 찾을 수 있게 해주고 있다.

내가 처음 만난 게리 무어 앨범은  「Corridors Of Power」(1982)였던 듯하다. <End Of The World>의 긴 인트로는 그 자체로 감동이었다. 80년대의 게리 무어 앨범은 거의 소개되어 쉽게 들을 수 있었지만 이내 게리 무어의 음악에서 등을 돌렸다. 이유는 별 거 없었다. 「Victims Of The Future」(1984) 수록곡 <Murder In The Skies> 때문이다. 누군가는 한국 상황을 노래로 만들었다는 사실에 환호했지만 난 그다지 반기고 싶지 않았다. (지금도 이 노래를 듣지 않으며 CD도 없다. 아마 LP는 고향집에 처박혀 있을 테고. 그래도 가끔 중고시장에 나올 때는 살까 말까 고민한다.)

게리 무어를 처음 알게 된 후부터 그가 가입했던 신 리지 Thin Lizzy, 콜로세움 II Collosium II, 그리고 우리나라에 그야말로 물밀듯 영국 포크록이 소개될 무렵 들어온 닥터 스트레인지 스트레인지 Dr. Strangely Strange에서 게리 무어의 이름을 발견하곤 즐거워 했다. 한번 등을 돌린 후라 어정쩡했지만.
게리 무어를 다시 듣게 된 건 1990년의 「Still Got The Blues」(1990) 때문이었다. 남들이 좋다면 싫어하고 싫다면 좋아하는 성격이었던 탓에, 이게 무슨 블루스냐며 다들 비아냥댈 때 난 게리 무어를 예전보다 더 좋아하기 시작했다. 이어 「After Hours」(1992)도 좋아했는데...... 세번째 블루스 앨범 「Blues For Greeny」(1995)에서 다시 등을 돌렸다. 세번이나 똑같은 앨범을 만들어내는 게 싫었으니까. 그러다 90년대 수퍼그룹이라는 BBM을 결성해 앨범을 발표하자 다시 게리 무어를 듣고......

그러니까 정말 변덕스럽게 좋아했다 싫어했다를 반복한 게다. 그땐 음악하는 사람의 지조만큼이나 듣는 사람의 지조를 따지며 나만의 잣대를 들이댈 때니까. 지금은...... 단 한 곡을 빼고 싫어하는 건 없다. 아, 이런 음악을 시도했구나, 아, 이런 음악으로 다시 돌아갔구나, 아, 게리 무어도 일렉트로니카를 해보고 싶었나보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걸 보면 마음도 넓어진 건지, 아티스트의 고뇌를 알게된 건지, 잘 모르겠다.

내한공연 소식이 들렸을 때는 쉽게 포기했다. 셋리스트가 요즘 곡들이라고..... 난 <End Of The World>를 듣고 싶었다. 공연이 좋았다고 했으니 다음에 다시 와서는 옛날 곡도 하겠지 싶었다.

그런데.....,
게리 무어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아쉽다.
뒤적뒤적 시디를 꺼내들었다. 곧 바빠지겠지만 아직은 한산하니까. 이것도 한달이 지나지 않아 아쉽지도, 애석하지도, 기억하지도 못하고 흘러가겠지만, 지금은 모든 게 아쉽다. 게리 무어는 이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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