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짜 커버/스토리

디지털 카메라를 사서 가장 처음 흐뭇해진 순간은 "내가, 파란 하늘을, 파랗게" 찍었을 때다. 이건 내 경우인데, 그 시절을 생각해보면 단지 나만 그런 건 아니었을 게다. 대충 퍼센트로 이야기하면 90% 쯤? 파란 하늘을 내가 찍었다는 사실에 감탄한 사람 가운데 또 90% 쯤은 '내가 하늘이 파랗다는 걸 잊고 살았구나......'라고 내 인생을 생각했을 게다.




최근 잡지 뒤적이는데, 마치 단체로 "3/4 분기 앨범 커버는 이런 설정으로 갑니다"라고 결정한 듯, 하늘과 구름이 있는 커버아트가 쏟아져나왔다. 이분들...... 디지털 카메라를 처음 사셨나? 아니면, 단체로 가을 타시나?

(웹이라면 이미지를 누르면 약간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아직 발표되지 않았거나 입수하지 못한 음반은 크기를 줄여놨습니다.)



Moby 「Innocents」(Little Idiot, 2013)
모비 앨범 커버의 초점은 파란 하늘이 아니라 가면일 게다. 우린 모두 얼간이들? 촌뜨기들?



Jack Johnson 「From Here To Now To You」(Universal, 2013)
자연과 환경을 생각해 자신의 CD는 오직 콩기름 잉크로 인쇄해야 하고 재생용지로 디지팩을 만들어 CD 알판과 북릿 스테이플러 두 개를 제외(아니, 스테이플러를 아예 쓰지 않았던가?)한 모든 것을 친환경으로 제작하는 잭 존슨. 이번 앨범은 소리도 파란 하늘 같을까?



MGMT 「MGMT」(Sony, 2013)
아주 흔한 아메리칸 라이프스타일? 너무나 평범해 오히려 더 특별해 보이려고 시도한 MGMT의 새 앨범. 파란 하늘도, 흰 구름도 지나치게 평범해서 특별하게 보일 수도 있다.



Elton John 「The Diving Board」(Capitol, 2013)
30번째 솔로 앨범이라고 한다. 그런데 커버 아트는 너무 무겁다. 저렇게 하늘이 파란데, 바다는 퍼렇다. 이 앨범은 얼마나 묵직한 인생담을 담고 있을까. 파랗다기보다 퍼렇게 멍이 들 것 같다.



Justin Currie「Innocents」(Endless Shipwreck, 2013)
정말 미안하게도, 저스틴 커리를 제대로 알아채지 못했다. 델 아미트리 Del Amitri의 시작과 끝을 책임지다 이제는 솔로로 활동하는 그였는데...... 어쨌든 그의 세 번째 솔로 앨범은 50세를 넘긴 중년의 중후함을 담았다. 색 바랜 효과는 그리 좋게 작용하지는 않는다.

어쨌든, 그런 의미에서, 여기서 잠깐!

저스틴 커리의 한 인터뷰 배경음악으로 삼은 이 노래, 미발표곡이다. 이런 노래를 왜 지금까지 정식으로 발표하지 않는 걸까. 이 커버/스토리 속 가을을 느끼기에 더없이 좋다. 2006년에 자신의 마이스페이스에만 올렸다는 <Little Smile Inside>다.
 



Polly Scattergood 「Arrows」(EMI, 2013)
마지막으로, 창백한 목소리로 노래하는 싱어송라이터 폴리 스캐터굿의 두 번째 앨범. 그녀의 목소리 만큼이나 창백한 하늘과 창백한 구름이다. 자주색 의상은, 그래서, 더 강렬해 보인다. 분홍색 이름은 디자인 실패다. 그녀는 이번에도 차갑게 노래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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