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짜 커버/스토리

수퍼맨이 되어야 할 때가 있다.

평소에는 클락 켄트 Clark Kent로 살다 위급한 순간이면 그는 안경 벗고 옷 갈아입고 하늘을 난다.
그러면 끝이다.
그런 점에서 제자리에서 빙빙 돌면 자동으로 복장이 바뀌는 원더우먼도 마찬가지겠지만, 원더우먼은 위급한 상황에서는 당연히 빙빙 돌지만 위급하지 않은 상황, 이를테면 남의 집 염탐하러 갈 때도 빙빙 돈다. (원더우먼 컴플리트 에피소드 시즌2까지 보는 동안 깨달은 사실.)

아주 위급한 상황이다.
날짜가 딱 정해져서 그날을 넘기면 절대 안된다.
그러면 잠도 안 자고, 밥도 안 먹고...
다른 방법은 없다. 수퍼맨이 되어야 한다.

날짜가 정해지는 건 수도요금이나 전기요금, 아니면 핸드폰요금 같은 것도 있다.
하지만 이런 건 날짜를 넘겨도 연체료라는 패널티를 부과받을 뿐이다.
수퍼맨이 되어야 할 만큼 위급할 때는, 이렇게 단순한 패널티가 아니라 인간성부터 시작해 기본 자질이나 능력까지 완전히 무시당해도 할말이 없게 만드는 상황이 닥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pseudo-Superman이라도 되어야 한다.

클락 켄트는 잊어라!!
수퍼맨이 간다!!!





수퍼맨 커버/스토리를 위해 꼭꼭 숨겨두려 했지만 별별 이야기에서 꺼내놓았던 앨범 커버.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 Rage Against The Machine의 두번째 앨범 「Evil Empire」(Epic, 1996)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구 소비에트 연방을 지칭한 "evil empire"를 앨범 타이틀로 했지만, 악의 제국은 내부에 있다는 조롱의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참고로 조지 W. 부시는 2002년 1월 29일 연설에서 "axis of evil"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바 있다. RATM의 멤버 탐 모렐로 Tom Morello는 2004년 정치적인 노래를 부른 여러 아티스트들과 함께 콘서트를 열었고 그 실황을 묶어 「Axis Of Justice: Concert Series Vol. 1」(Columbia, 2004)이라는 타이틀로 발표했다. 조롱의 역사는 이렇게 계속되었다. 이 앨범 커버는 다음을 위해 오늘은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일본음악에 관심이 없다 해도 '안전지대'라는 이름은 알 것같다. (바로, 내가 그렇다...) 다마키 코지 Koji Tamaki는 안전지대의 보컬이자 기타리스트이자 작곡가. 이 앨범은 해산한 안전지대가 재결성되기 전인 1995년에 발표한 그의 솔로 라이브 앨범으로 타이틀은 간단하게 「T」(Sony, 1995)다.
라이브에서 힘을 발휘할 요량인지 T라고 새겨넣은 공연 의상으로 갈아입기 직전의 다마키 코지를 상징하는 것 같다. (아아, 농담이다. 부클릿을 통해 공연 사진을 볼 수 있는데, 그는 라이브에서 캐주얼 정장을 입었다.)


L.A. / Unfinished Business
만약 데뷔 앨범을 발표하고 그럭저럭 인기를 얻은 밴드가 두번째 앨범을 제작하는 도중 해산해 데뷔 앨범이 처음이자 마지막 앨범이 되었다면... 일단 휼륭한 이야깃거리가 된다.
바로 이 밴드 L.A.가 그런 경우(라고 한)다.
덴마크의 하드롹 밴드. 1985년에 발표한 데뷔앨범 「Unfinished Business」(?, 1985. 2004년에 Escape Music을 통해 재발매)라는 타이틀을 단 데뷔 앨범도 수퍼맨을 흉내냈다.
(아쉽게도 이 커버가 오리지널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없다. 자료를 찾는 도중에 커버/스토리를 위해 훔쳐온 커버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 앨범을 재발매한 레이블 홈페이지에서 L.A.의 정보라도 찾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샘플로 들어본 음악 스타일은 헬로윈 Helloween 시절의 카이 한센 Kai Hansen이 주다스 프리스트 Judas Priest의 연주에 맞춰 노래한 것 같다. 재발매를 위해 재녹음할 때 카이 한센의 동생(...맞나? 친척이었던가?) 타미 한센 Tommy Hansen이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정보 확인하기])




수퍼맨 커버로 최적의 앨범이 바로 수프얀 스티븐스 Sufjan Stevens의 「Illinoise」(Ashhmatic Kitty Records, 2005)다. 일러스트레이터 디브야 스리니바산 Divya Srinivasan이 그린 이 커버 아트 및 부클릿의 그림은 PLUG Independent Music Awards 2006에서 'Album Art/Packaging of the Year' 부문을 수상했다.

그런데...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찾아봐도 수퍼맨은 없다.
수퍼맨은 어디로 간거지?


그런 의미에서, 여기서 잠깐!
Sufjan Stevens / Come On Feel The Illinoise [오리지널 커버]


수프얀 스티븐스와 디브야가 함께 구상하고 그림은 디브야 혼자 그린 「Illinoise」의 앨범 커버에는 분명 수퍼맨이 있었다.
수프얀 스티븐스는 일리노이 주의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하면서 이곳이 수퍼맨의 두번째 고향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며 앨범 속에 <The Man Of Metropolis Steals Our Hearts>를 넣었다. (메트로폴리스는 스몰빌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클락 켄트가 공부와 취직을 위해 이사한 동네. 클락 켄트는 메트로폴리스의 신문사에 취직했다.)
오른쪽 커버처럼 처음에는 수퍼맨을 집어넣었는데... 저작권자 DC Comics가 태클을 걸었다. 그럼 뻔하다. 맞다. 저작권 이야기다.
"허락도 안받고 우리의 영웅 수퍼맨을 사용해? 사용료를 내야 할 것 아냐? 우리 변호사 빵빵한데 소송걸어버린다?"라는 픽션을 조금 가미한 레퍼토리로 진행되는 이야기.
결국 눈물을 머금고 수프얀 스티븐스는 커버에서 수퍼맨을 지워버렸다. 그래서 이 앨범 커버의 수퍼맨은 우주로 날아가버렸다. (맞다. 초판에 인쇄되었던 수퍼맨은 악의 무리를 없애기 위해 우주로 날아갔다고 치자. 혹시라도 아직 지구에 남아 악당을 물리치는 수퍼맨이 보고 싶다면 일본 라이선스로 구하면 된다. 어제 핫*랙스 광화문점에서 한 장 남아있는 걸 봤다!)


우리의 수퍼맨을 우주로 떠나보낸 수프얀 스티븐스는 디브야 스리니바산과 의기투합해 아예 자신이 수퍼맨이 되기로 했다.
그것이 바로 ↓ 이 앨범이다.



「Illinoise」를 제작할 때 워낙 많은 곡을 만들어놨으니 버리긴 아깝고 다른 앨범에 쓰자니 순전히 일리노이 주를 위한 노래이니 쓸 수도 없고...  그래서 수프얀 스티븐스는 '일리노이 파트 2'로 「The Avalanche」(Ashhmatic Kitty Records, 2006)를 발표했다.
수퍼맨과 똑같이 망토 두르고 왼손은 죽 뻗었다.



Superman Logo
이렇게 해서 오늘의 수퍼맨 커버/스토리는 끝.

그런데, 혹시 알아차렸을까?
여기 소개한 앨범 커버에서 진짜 수퍼맨 로고를 사용한 것은 「Illinoise」에 등장하는 수퍼맨을 제외하면 모두 S가 아니다. 수프얀 스티븐스가 수퍼맨이 되었다면 그는 S를 써야 하는데, 왜 I였을까?
그건 앨범 제목 때문이다. 여기서 I는 Illinois의 바로 그 I다.

진짜 수퍼맨 로고를 사용했다면, 또다시 저작권 분쟁이 일어나 법정으로 가야 할지도 모른다. 혹시 DC Comics에서 이 블로그를 호시탐탐 엿보고 있다면 분명 "법정으로 가기 싫으면 합의금을 내시오. 그리고 로고도 지우시오!!"라는 최초통첩을 보낼지도 모를 일이다.
"이봐요. DC 코믹스사 회장님.
전 애드센스도, 애드클릭스도 달지 않은 순진한 블로거라고요
."
라며, 합의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겠다.

어쨌든 수퍼맨이 되었다가 지금은 클락 켄트로 돌아왔다.
휴... 다행이다.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수퍼맨은 잊어라!!
난 클락 켄트로 살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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