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짜 커버/스토리

세상 참 편해졌다, 고 70대 어르신처럼, 가끔, 중얼거리곤 한다. 정말 그렇다.
꽤 오래전에 30일인가를 인터넷으로 연결된 컴퓨터만 있는 방에 처박혀서 살 수 있을까 실험한 적이 있었는데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요즘이라면 살 수 있을 것 같다. 주문 가능한 것이 상상을 뛰어넘다보니... (난 움직이는 gif만 보면 정신이 혼미해져서 쳐다보지도 못했는데, 요즘은 조금 익숙해졌다. 그래도 맘에 들지 않는 건 여전하며 혼미해지는 것도 여전하다.)

어느 쇼핑몰이든 회사를 피곤하게 하는 고객이 꼭 있다. 난 조금 깨지거나, 조금 까지거나, 색이 별로거나 해도, 일부러 그런 걸 보냈겠어? 내가 잘 모르고 주문한 것이니까, 내 실수니까... 하고 그냥 쓰는데... 얼마전 주문한 CD 때문에 진상고객처럼 행동해버렸다.


자료 찾으러 들어갔다가 수입음반을 할인한다는 배너를 보고, 바로 내부검색을 시도했다. 그리고는 오오 이 앨범이 있었네! 가격도 착하네... 하며 즉석에서 회원가입까지 해버렸다. 음악보다 커버 때문에 꼭 구하고 싶었던 앨범이었다.



그런데 화면 오른쪽에 있는, 화면 움직일 때마다 졸졸졸 따라다니는 게 있다. (티스토리 스킨에도 이런 게 있는데, 그러면 글 읽기를 포기하고 나와버린다... 움직이는 건 불편하다니까...) 살짝 가려진 빨간색이 "재고없음" 표시였는데, 전체화면으로 보기를 끔찍히도 싫어하는 내 습관 때문에 미처 못 보았다. 품절 상품을 자랑스럽게 내보일 거라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회원가입하고, 보관함에 넣고 나서야 재고없음 마크가 뚜렷이 보인다. 몇 개를 더 찾아보니 죄다 품절... 품절상품제외 옵션이 있었지만 이 사이트의 인터페이스를 처음 접하는 내가 그것까지 터득하기에는 조금 시간이 필요했단 말이지. 이벤트한다고 해놨으면 재고 없는 것은 좀 빼줘야 하는 거 아닌가... 여기서 조금 뒤틀렸지만 혹시 건질 게 있나 싶어서 조금 더 확인을 해봤다. 세르주 갱스부르 Serge Gainsbourg 때문에 이날 검색은 프랑스 샹송이었다.

그러다 클로딘 롱제 Claudine Longet의 앨범이 보였는데... 클로딘 롱제는 폴 모리아 Paul Moriat 악단의 편곡 작품으로 유명한 <Love Is Blue>를 불렀다. 무한감동을 주는 건 아니지만 전주의 하프와 중간의 쳄발로 소리 때문에 지금도 기억하는 노래라, 보이니까 괜히 사고 싶었다.
"두 두 라무 레 두(love is soft)"로 시작하지만 "블뢰 블뢰 라무 레 블뢰(love is blue)"로 끝나는 사랑노래.

그랬는데...
도착한 걸 보니... 한국반이다... 국산품혐오 외제선호는 아니지만, 배너는 수입음반 할인전이었으니 한국반이라고 생각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배송비 절약을 위해 추가로 주문한 CD는 트레이가 다 망가지고...
결국 반품하고 싶다고 글을 남겼고 다음날 전화가 왔고 그 다음날 반품했고 지금은 상황 종료.

내 변심이고 부주의였다. (수입음반 할인판매로 배너가 제작되었지만 국내제작한 시리즈물도 그 곳에 함께 있었다. 누구 문제냐를 따지면 애매해지지만 내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건 맞다.) 반품 택배비를 부담할 생각이었는데, 함께 주문한 초저가 할인 CD 트레이가 깨졌으니 회사부담으로 해준다고 해서 괜히 더 미안해졌다. 고작 3900원짜리였는데...

따지고 보면 진상을 부린 건 아니지만 나 같은 사람 때문에 "고객님, 고객님" 하며 친절하게 응대해야 하는 상담원들, 참 힘들겠다고 생각했다. 인터넷이 끊어졌을 때 화가 나서 하*로에 전화하지만, 이야기 몇 마디 하다 차분하게 끝내는, 그런 상황.

공유하기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naver 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