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커버/스토리 [diary edition]

이곳으로 이사 온 지 꽤 긴 시간이 흘러버려 언제인지 가물가물하다. 그동안 손으로 꼽아가며 몇 년인지 확인했는데 지금은 굳이 세지 않는다. 12월이었다. 구글포토나 내 스마트폰 갤러리에서 12월을 찾으면 확인 가능. 하지만 누가 물어본 적도 없고, 그게 중요한 화제가 된 적이 없어 잊어버렸다. 10년은 넘지 않았다. 대신 될 수 있으면 잊으려 노력했던 나이는 또렸해졌다. 왜, 그런 것 있지 않은가, 내 나이는 '꺾어진 ○○살' 같은 나이. 나이 역시 누가 물어본 적도 없고, 그게 중요한 화제가 된 적이 없어 잊기로 했다. 아직 100세는 되지 않았다.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던 며칠 전.

 

선풍기 꺼내려고 간 창고에는 이사 올 때 포장 그대로 처박혀 있는 시디 박스들이 산더미보다 조금 작게 쌓여 있다. 그 사이에서 발견한 박스 하나. CD를 넣은 박스인데 물음표가 붙어 있다.

이삿짐을 꾸릴 때 시디는 세 가지로 분류했다. ➊ 시디장에 꽂아둘 CD  ➋ 프로모셔널 카피라는 문구가 인쇄되어 있거나, 바코드에 홍보용 스티커가 붙어 있거나, 바코드에 펀치로 구멍을 낸, 다양한 홍보용 CD  ➌ 알라딘중고샵이든 어디에든 팔아버릴 CD.

 

✴️ 그런데 물음표 저 CD 박스는 뭐지?

100장 들어가는 박스보다 작은, 그냥 일반 박스

 

분명 CD는 CD인데, 이건 무슨 CD들이냐?라고 적은 종이. 글자는 부끄러워 지웠음.

 

 

 

✴️ 개봉했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보물상자였다.

 

 

✴️ 우선, 토킹헤즈 talking heads

 

오, CD 박스 맞네... 드디어 찾은 토킹헤즈 !

 

내가 가진 음반들 가운데  '보관하기 가장 어려운 음반 패키지 = 최악의 패키지' 상을 주고 싶은 토킹헤즈의 [Once In A Lifetime] (Rhino, 2003)이 여기 들어있었구나. 다른 CD와 비교해 보면 알겠지만 CD 세 장을 가로로 주욱 늘어놓은 기상천외한 형태 패키지다. 펼치면 CD 여섯 장을 늘어놓은 크기가 된다. 다음 글에서 내가 가진 음반 가운데 최악의 패키지 순위를 꼽을 때 다시 이야기하기로 한다. 사실, 이 음반을 입수하고 하루 지났을까, 이런 패키지가 다 있냐 싶어 최악 순위를 꼽고 싶어졌다. 조만간 실행해 보기로.... 


✴️ 따로또같이 + 다섯손가락

 

사진은 앞이지만, 말하고 싶은 건 굴러다니다 제자리 찾은 백커버다. 따로또같이 CD

 

프런트 커버, 백커버, 그리고 CD가 따로 놀았는데 백커버는 제자리를 찾았다. 이제 프런트 커버만 찾으면 된다. 바로 뒤에 이야기할 다섯손가락 커버 있던 자리에 함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없다. 다른 서랍 찾아봐야겠다. 그래도 한쪽만 찾으면 제모습으로 돌아올 테니, 찾아보자.

 

백커버가 박스 속에 있었고, 내 집 유실물센터에서 나머지 부위를 가져왔다.

 

다섯손가락 [베스트], 앞

 

다섯손가락 [베스트], 뒤. 조립 완료. 이제 CD장으로 간다.

 

 

✴️ 오, 인크레더블 스트링 밴드 the incredible string band

 

영구보관이 가능할까, 라는 소재 때문에 폐기하지 않았던 인크레더블 스트링 밴드 CD

 

사진 몇 장 더 붙이고 글을 쓰다 나중에 쓰려고 지워버렸다. 바로 뒤에 이 CD에 대해 단독 글을 하나 쓰려고 한다. 이건 정말이다. 텍스트도 버리지 않았고, 사진이야 업로드 폴더에 그대로 있다. 나만 쓰겠다고 마음먹으면 된다.

 

 

 

✴️ 플러그드 클래식

 

플러그드 클래식 [Sabai] (미러볼, 2018)

 

얼룩말 커버를 위해 빼놓았는데, 여기 있었다.

 

 

✴️ 사라 브라이트만 sarah brightman

 

Sarah Brightman [Diva] (Angel, 2006)

 

이 블로그 인기글 가운데 하나인 FRA 스티커가 붙어 있다.

 

사라 브라이트만. 카세트테이프다. 무려 미개봉.

사실, 미개봉 카세트테이프는 아직도 꽤 많은 편이라 놀랄 일은 아니다. 개인이 듣던 카세트테이프는 천안삼거리 수양버들보다 더 늘어져 있을 테지만, 어느 날 갑자기 이 포맷을 들을 기기들이 폭망 해버리자 팔지 못하고 처박혀버린 수많은 카세트테이프가 있다. 현재 강렬하게 부활 중. 개봉해 늘어질 대로 들었던 중고도 강렬하게 부활 중. 자기테이프와 플라스틱과 종이로 구성되어 있는데 뜻밖에도 보관상태는 좋다. 보관을 잘해서가 아니라 카세트테이프의 구조가 처박힘에 잘 견디는 형태였기 때문이라고 본다.

 

 

✴️ 파리, 텍사스 OST (music by ry cooder)

 

Ry Cooder [Paris, Texas - OMPS] (Warner, 1985)

 

내가 CD장에 꽂아둔 사운드트랙들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감독이 빔 벤더스인데, 그의 1984년 영화 [파리, 텍사스]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런데... 

 

알맹이가 없다. CD도 저 철길을 쓸쓸하게 걸어다니고 있으려나?

 

 이 영화음악 CD를 어디서 본 것 같다. 곧 찾아서 제자리에 끼워놓으려 한다.

 

 

 

 

 

CD 보물상자를 연 이야기는, 여기까지

 

 

우연히 발견한 저 박스 안 CD들은 전부 사연이 있는데, 그거 다 꺼내놓으려면 한참 걸릴까 봐 여기에서 멈추기로 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같은 조명과 같은 각도로 사진 찍는 게 귀찮아서 여기까지 찍었다. 카메라도 아니고 스마트폰 카메라인데도 힘들어지는 걸 보면 사진 찍기는 더 이상 내 관심이 아닌가 보다.)

 

 

그러고 보면, CD?라고 써놓은 박스는 이삿짐 싸며 분류하는 과정에서 세 가지 분류법을 따르지 않고 블로그에 글 쓸 소재용 앨범만 따로 모아놓은 박스였다. 100장이 들어가는 기본 박스들과 다른 규격 박스에 이건 뭔 시디들이냐,라고 태그를 붙여놓으면 우선 개봉할 테니까. 그러니까... 블로그에 글을 써야지...라고 생각했던 게 짧게는 10년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플러그드 클래식 CD가 2018년 발매니까 거의 10년 된 게 맞다. 생각한 대로 글을 쓰고, 생각한 대로 쓴 글을 읽고 반응해 주고, 그럼 또 낄낄 대며 다시 글을 쓰고, 다시 반응해 주고.... 그러던 옛날이 생각난다. 지금은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 조금 더 나이를 먹었고, 그만큼 더 가라앉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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