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짜 커버/스토리



아마도 이 앨범 만큼 오늘 커버/스토리에 맞는 앨범도 없을 것 같다.
(가장 자주 내용을 오해하는 타이틀 가운데 하나인) 앨범 타이틀과 히트곡 제목... 그리고 무엇보다 성조기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
브루스 스프링스틴 Bruce Springsteen의 앨범 「Born In The U.S.A.」(Columbia. 1984)다.

잘 알고 있다시피 이 노래는 월남전에 파병된 군인이 아들에게 그때 이야기를 해주는 내용이다. "조그만 마을에 살던 내게 총을 쥐어주고는 베트남에 가서 황인종들을 죽이라고 이야기했지... 아들아 넌 그때 상황을 이해할 수 없을 게다."라는 이야기였지만 제목과 앨범 커버 때문에 지금도 충분히 오해할만하다.

사실 당시에도 히트곡은 <Born In The USA>보다 <Cover Me>나 <Dancing On The Dark> 같은 즐거운 노래였으니 오해할만도 했다. 그런데... 처음부터 <Born In The USA>가 경쾌한 로큰롤이었던 것은 아니다. 1998년에 공개된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숨은 이력에 관한 곡들을 모아놓은 4장짜리 박스셋 「Tracks」(Columbia. 1998. 이 박스셋의 하이라이트만 모아놓은 한 장으로 압축버전 「18 Tracks」(Columbia. 1998)도 있음)에 실린 <Born In The USA>는 지금 들을 수 있는 최종 버전과 많이 달랐다.

1982년에 녹음한 이 버전이라면 그동안 이 곡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숱한 오해는 조금 줄일 수 있었을 테지만, 어쨌든 가사와 멜로디가 약간 바뀐 것을 제외하면 처음이나 최종 버전이나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그가 음악만으로는 아주 신나는 <Born In The USA>에서 여전히 뚜렷한 자신의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 때문에 그의 음악을 지금도 좋아한다.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아직도 <Devils & Dust>나 <We Shall Over Come>을 통해 사회의 잘못된 부분을 좋은 방향으로 돌리고 싶어하는 열망이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흑과 백의 멤버 구성, 여성과 남성의 멤버 구성으로 60년대의 미국 분위기를 몸소 실천한 (그러나, 마약에 찌들어살면서 어두운 측면까지 고루 갖춰 한때 무너졌던) 밴드 슬라이 앤 더 패밀리스톤 Sly & The Familystone의 「There's Riot Goin' On」(Epic, 1971)도 성조기 커버라면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이 앨범은 마약에 찌들어 공연도 망치고 음악도 망쳤던 그룹이 70년대에 접어들면서 정신을 차리고 심기일전해 공개한 작품으로 모처럼 빌보드 차트 1위를 기록하는 <Everyday People>이 들어 있는 멋진 앨범이다.

Sly & The Family Stone / There's A Riot Goin' On (second cover)
여기서 잠깐!

「There's Riot Goin' On」의 커버는 성조기 커버가 분명하지만 왼쪽처럼 라이브 장면을 담은 버전이 더 유명할지 모른다. 최근 오리지널 앨범들이 익스펜디드 에디션으로 공개되기 전까지 「There's Riot Goin' On」은 왼쪽처럼 뜬금없는 라이브 사진을 넣은 커버로 더 많이 알려졌다.

앨범의 주제가 불분명하기는 오리지널 커버도 마찬가지지만, 이 라이브 장면 역시 앨범의 주제와 아무런 연관이 없다. 밴드 이름도 앨범 타이틀도 없는 오리지널 성조기 커버의 홍보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는지 음반사에서는 이 커버로 바꿔 공개했는데... 슬라이 앤 더 패밀리스톤의 팬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보여주며 당신도 이들의 팬이 될 것이 분명하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저 관객속에서 당신의 모습을 찾아보라고 꼬드기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공개된 익스펜디드 에디션의 오리지널 커버 복원은 반갑다.




사실 미국의 60년대는 성조기가 하나의 패션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애국심이 아니다. 60년대의 성조기는 미국의 뒤틀린 인권정책과 반전, 평화를 노래하는 데에 아주 중요한 소품이었다. 미국은 어디로 가는가. 미국이라는 나라의 근본으로 돌아가자. (논란의 여지가 많지만) 개척정신을 지키자. 같은 의미로. 이를테면, 3.1운동에 사용한 태극기처럼 60년대 미국은 성조기를 흔들며 주장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함께 흔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사이키델릭 록의 신화를 만드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햇던 밴드 제퍼슨 에어플레인 Jefferson Airplane도 앨범 「Volunteers」(RCA, 1969)를 발표하면서 성조기를 배경으로 깔았던 것.

이 앨범의 오리지널 타이틀은 「Volunteers Of America」였다. 하지만 의미가 너무 드러나는 것에 당황한 음반사에서는 Voluteer의 의미만을 남긴 채 뒷부분을 잘라낼 것을 요구했다. 내용에 대해서는 손댈 것이 없었다. 이때는 혁명을 이야기하건 반전을 노래하건, 마약을 찬양하든 모든 것이 용납되던 시기였으니.

어쨌든 제퍼슨 에어플레인은 반전을 주장하는 의용군이 되었다. 그게 그룹의 진심이었는지 단지 흐름에 동참했을 뿐인지는 밴드에게 물어봐야 할 것 같다.




베트남 전쟁도 끝나고 냉전도 끝나고 핵전쟁의 공포도 수면 아래도 가라앉았다. 하지만 앨범 커버에서 성조기를 사용하는 것은 여전했다. 전쨍은 끊임없이 이어졌으니 노래할 것은 60년대 만큼이나 풍성했다.

하지만 성조기를 사용해 은유적으로 그 사실을 드러내는 것보다는 오히려 직설적으로 주장하는 아티스트들도 많아졌고, 실제로 앨범 커버에서도 성조기보다는 좀더 끔찍하고 리얼한 장면을 담는 경우가 많아졌다.

대신 성조기는 마돈나처럼 겉만 반전을 노래하는 팝에서도 멋진 배경으로 사용되거나 머틀리 크루 Motley Crue의 베스트 앨범 「Red, White & Crue」(Universal, 2005)처럼 별 뜻 없이 단지 멋진 이미지를 위해 배경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Ryan Adams / Gold
앨범을 발표하기 며칠 전에 벌어진 9.11 사건으로 앨범 수록곡 <New York, New York>의 뮤직 비디오가 MTV에서 가장 자주 방영되었다는 스토리를 갖고 있는 라이언 애덤스 Ryan Adams의 두번째 솔로 앨범 「Gold」(The Sound Factory, 2001)의 커버는 정말 인상적인 2000년대의 성조기 앨범 커버다.

이 앨범을 발표할 무렵의 그는 그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을 것이고, 자신의 노래가 그런 의도로 자주 방영될 것이라는 것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참 이상한 일은... 아직도 라이언 애덤스의 음악을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다는 점이다. 싱어송라이터를 좋아하는데도. 성조기 커버가 너무나 강렬해서였을까?


어쨌든, 미국 아티스트들은 성조기를 참 멋지게 커버에 사용했다.

비에 젖어도 안되고, 세탁도 하면 안되는 신성한 것이어서 오후 다섯시에는 장엄한 내레이션을 깔고 국기를 내렸던 우리의 태극기와 비교하면, 정말 많은 차이를 느낀다. 그나마 요즘은 태극기의 신세도 많이 나아졌다. 2002년 월드컵 이후 지나치게 혹사당하고 있긴 하지만.
(혹시나 해서 검색했더니 국기에 대한 맹세를 없애자는 한겨레21의 기사가 검색된다.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링크.)


※ 성조기를 응용한 커버는 너무 많아서 아예 빼버렸습니다.
이 글에 올려놓은 커버처럼 멋진 배경으로 사용한 성조기 커버만 댓글로 추천해주세요^^


[추가]



빅 보이 Big Boi와 앙드레 3000 Andre 3000의 듀오로 구성된 아웃캐스트 OutKast의 이력에 정점을 찍은 세번째 앨범 「Stankonia」(LaFace, 2000)의 커버를 빼놓을 뻔 했네요. 주로 힙합 아티스트 사진을 찍지만 화이트 스트라입스 The White Stripes나 키스 리처드 Keith Richards 같은 롹 뮤지션 사진에도 능한 마이클 라빈 Michael Lavine이 커버 사진을 찍었군요.
성조기를 모노크롬으로 처리한 것은 아웃캐스트가 블랙 뮤직 아티스트라는 사실을 보여주려는 은근한 시각효과까지 노린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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