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커버/스토리 [diary edition]

가끔 장난인지 진심인지 모를 앨범 커버를 만난다.

아이디어가 지나친 것 같기도 하고, 색다른 즐거움을 주려는 의도 같기도 하고.
조금 더 심각하게 바라보면 무엇인가 조롱거리를 찾아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아티스트는 그저 선 하나 그었을 뿐인데 그 속에서 우주를 발견했다며 호들갑을 떠는 평론가들의 행태를 풍자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 커버들.

오늘은 그런 커버 몇 장을 살펴보기로 했다.
아무 의미없이^^
그래서 제목도 황당 커버/스토리다.




가장 먼저 살펴볼 앨범은 레기 앤 더 풀 이펙트 Reggie And The Full Effect의 「Promotional Copy」(Vagrant, 2000).
이모코어 레이블 가운데 메이저급인 베이그런트라고 해도 이 앨범을 발표할 때는 그다지 즐거웠을 것 같지 않다. 아니, 돈 받고 팔아야 할 CD에 '홍보용 음반'이라고 제목을 달아놨으니... 돈이 펑펑 남아돌아 쓸 곳 없나 두리번거리는 사람 아니면 이 앨범을 과연 집어들까 싶은데.

거기다 레기 앤 더 풀 이펙트라는 이 밴드의 뻥이 얼마나 심한지, 처음부터 끝까지 온통 장난이다.
레이블 웹사이트의 아티스트 항목에 적어놓은 가짜 바이오나 밴드의 오피셜 웹사이트에 적어놓은 말이나 모두 거짓이다. 공CD처럼 단 한장의 부클릿을 끼워넣어 인쇄한 앨범 커버의 뒷면에는 진지해보이지만 실제로는 거짓말인 문장을 다음과 같이 적어놓았다.

"레기 앤 더 풀 이펙트의 「Promotional Copy」는 결코 [정식으로] 발표할 생각은 없었다. 이 마스터테이프를 찾아준 이름 모를 분에게 정말 고마움을 표한다. 어떤 곡의 제목과 샘플은 제목이 없어서 적당한 이름을 붙였다. 앨범의 곡 길이도 그 당시에는 확신할 수 없었으니 [정보의 정확성이] 부족해도 이해와 용서를 구한다. 레기 앤 더 풀 이펙트의 모음집을 지지해준 분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 James and Matt

하지만, 실제로 레기 앤 더 풀 이펙트는 겟업키즈 The Get Up Kids와 콜레스 Coalesce의 멤버 두 명의 프로젝트 밴드다. 그러니 레이블에서도 장난으로 인정해주고 이렇게 앨범을 발표한 것이겠다.
껍데기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이 앨범의 첫 곡 <A.C. Lerok... Bitches Get Stiches>는 뜬금없는 힙합 곡이며 가사도 완전 장난이다... 필라델리파의 조폭(?) A.C. 르록의 메시지를 전하러 누가 찾아와서 레기에게 총을 난사한다는 내용. 그러자 레기가 "윽. 나 총 맞았어..."라고 중얼거리거나 옆 사람이 "레기야, 너 총 맞았다"라는 대사를 넣은 웃기는 곡이다.

참, 혹시 몰라서 하는 이야기인데, Promotional Copy는 Not For Sale, Promotional Use Only 같은 단어를 적은 스티커를 바코드 위에 붙이거나 아예 CD에 인쇄해 돌리는 홍보용 시디다. 대한민국에서는 '비매'라는 홀로그램 스티커를 붙이는 것을 강권하고 있다. 안그러면 그것도 다 세금 내야한다.




가장 맘에 드는 앨범 타이틀이다.

시스템 오브 어 다운 System Of A Down의 미공개곡 모음집 「Steal This Album!」(Columbia, 2002)의 앨범 커버는 레기 앤 더 풀 이펙트보다 한술 더 뜬다. 이 앨범은 아예 부클릿이 없다. 부클릿 없는 주얼 케이스로 보이는 시디 알판이 CD 알판이자 앨범 커버다. (이건 정사각형의 오피셜 커버로 공개한 것이고, 실제로 보면 Parental Advisory 로고도 없고 CD 알판에 써놓은 CD-36이란 숫자도 없다. 당연하다. 시디 알판이 곧 앨범 커버라고 하지 않았나.)

국내 발매반으로 구했다면 라이너노트를 읽기 위해서 트레이를 분해해야 한다. 거기 숨겨놓았으니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다. 라디오헤드 「Kid A」(Parlophone, 2000)의 숨겨둔 8 페이지짜리 비밀 부클릿을 경험했다면, 어렵지 않게 적응할 수 있는 히든 부클릿이다.

그런데... 이 앨범을 훔치면 어떻게 될까?
밴드가 훔치라고 부추겼으니 밴드에게 책임을 물라고 해 볼까?
그렇다고 정말 훔치지는 말 것.




유어코드네임이즈:밀로 Yourcodenameis:milo는 한 술 더 떠 아예 앨범 전체를 공CD와 똑같이 만들었다. 아니, 만들었다기보다는 공시디를 하나 구해 거기에 낙서도 하고 앨범 크레딧도 적어서 그걸 CD라고 발표한 셈이다.

「Print Is Dead Vol. 1」(V2, 2006)으로 이름 붙인 이 앨범은 영국의 포스트펑크 밴드 유어코드네임이즈:밀로의 정규앨범이다. 폴리돌 Polydor에서 V2로 레이블을 옮겼는데 이런 커버 디자인이라니... 레이블에서 "터치하지 않을테니 댁들 맘대로 해보셔"라고 언질하지 않고서는 발표하기 힘들 것 같다. V2면 영국 인디롹계의 메이저인데...

이 앨범은 밴드보다 참여한 인물들이 대단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서울음반을 통해 앨범이 발표되었는데 "현 록 신을 이끌고 있는 Bloc Party, Ultra Brain, The Futureheads, Maximo Park, Hot Club de Paris, The Automatic 등 Yourcodenameis:milo를 열렬히 지지하고 있는 초호화 라인업과의 콜라보레이션으로 탄생한 수작"이라고 스티커를 붙여놨다. 음악은... 내 귀에는 잘 들어오지 않는다.

*          *          *


커버만 보여주는 것으로 충분했는데, 너무 썰렁할 것 같아서 주저리주저리 떠들었더니 글자가 많아졌다.
커버만 보고 이 마지막 줄을 읽었다면, 글씨 읽을 생각을 하지 말고 "황당하군"이라고 한마디 던져놓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1년 후에 추가하는] 여기서 잠깐!!

The Cardigans / Best Of
엄아룡 님의 댓글에 따라 추가하는 커버 한장.

<Lovepool>이라는 킬링 트랙으로 많은 팬을 확보한 카디건스 The Cardigans의 2008년 베스트 앨범 커버도 유어코드네임이즈:밀로의 「Print Is Dead Vol. 1」과 같은 스타일의 앨범 커버지만, 황당의 강도는 훨신 약하다.
유어네임이즈:밀로의 앨범 커버는 거의 장난에 가깝지만 카디건스의 해체 이후 발표한 베스트 앨범 「Best Of The Cardigans」(Stockholm, 2008)의 커버는 장난이라기보다는 아트에 가깝기 때문이다. 비록 디자인은 공CD 포맷을 따르긴 했지만 황당하다는 생각보다는 아트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렇지만 소재의 일치라는 점에서 이 커버스토리의 마지막에 슬쩍 끼워놓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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