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흐릿해지다.
오뉴월 감기에 걸린 탓이다.
불편하지는 않다.
...그럴 때마다 흐릿하게 떠오르는 기억 몇 개.
정말 불편한 것은 그런 것들이다.
몸이 약해져서 마음까지 약해졌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도 싫다.
결국...
흐릿해지다 또는 희미해지다 Part 1에 이은 두번째 흐릿한 기억들.
수잔 잭스
Susan Jacks의 앨범 「Ghosts」(CBS Canada, 1980)는 유령처럼 떠도는 기억을 형상화시킨 커버(로 추정할 수 있)다.
캐나다 밴쿠버 출신. 테리 잭스와 결혼한 후 1969년부터 1973년까지 함께 파피 패밀리
The Poppy Family로 활동하다 1973년 이혼 후 솔로 활동 시작. 이 앨범은 수잔 잭스의 대표곡 <Evergreen>을 수록한 1980년 앨범으로, 프로듀서와 아티스트 관계로 테리 잭스와 다시 만나 작업한 앨범이기도 하다.
(매니저는 수잔 잭스의 두번째 남편. 이 상황에 대해서는 수잔 잭스의 인터뷰를 참조하는 것이 좋겠다. [인터뷰 읽기])
국내 발매반 라이너노트에는 드라마 '아들과 딸'에 <Evergreen>이 수록되어 유명해지자 1994년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CD로 재발매했다고 써놓았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드라마에는 그리 관심없는 탓에 제목만 기억할 뿐 드라마의 내용은 모르겠다.
유령처럼 떠도는 기억은 앨범 수록곡 <Ghosts In Your Mind>에서 만나게 된다. 한 남자를 사랑했고 그 사랑이 영원할 것이라고 믿던 한 여자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결국 유령처럼 떠도는 추억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후회하는 노래...
이 흐린 커버는 <Ghosts In Your Mind>에서 "ghosts in my mind"를 확인하게 되는 여인의 초상이기도 하다.
80년대부터 90년대 초반에 이르는 동안 여성 보컬을 앞세운 중요한 밴드로 거론되는 브리더스
The Breeders와 스로잉 뮤지스
Throwing Muses, 그리고 벨리
Belly를 거친 후 타냐 도넬리
Tanya Donelly는 솔로를 선언하고 앨범 「Lovesongs For Underdogs」(Reprise, 1997)를 발표했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 들어봤는데... 이제는 더 듣지 않을 것 같다. 어쨌든 그녀는 밴드 멤버였던 타냐 도넬리는 잊으라는 주문을 하고 싶었던 것인지 흐릿한 기억속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인지 백 커버의 또렷한 초상과 달리 앨범 커버는 흐릿한 모습을 담았다.
사진은
앤드류 캐틀린 Andrew Catlin이 찍었다. 포트폴리오를 올려놓은 앤드류 캐틀린의 웹사이트에서 닉 케이브, 커트 코베인, 마이클 스타이프, 비옐크 같은 아티스트 사진을 발견하게 된다. 빛을 이용한 윤곽을 잡아내는 데에 탁월한 감각이 있는 포토그래퍼 같다. 아, 빛을 잘 이용하는 것은 포토그래퍼 최고의 미덕이다...
음산하면서도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냈던 콕토 트윈스
Cocteau Twins의 「Milk & Kisses」(Fontana, 1996)는 아주 오래된, 따져보니 벌써 10년이 넘은 기억 하나를 남겨준 앨범이다. 그 기억 때문에 앨범을 더 이상 가지고 있지 못하고 정리해버렸다. 그때 덩달아 좋아했던 아티스트가 왕비
Faye Wong였다.
왕비와 콕토 트윈스는 교류를 통해 서로 다른 음악 속에서 독특한 영향력을 과시한 바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때 유일하게 즐겨 듣는 중국 아티스트가 왕비였다.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좋은 기억과 좋지 않은 기억, 두 가지를 다 가지고 있는 이 앨범은 어쩌면 오늘 이야기하고 싶었던 흐린 기억에 대해 아주 적당한 예가 되겠다.
미안하게도, 실예 네가드
Silje Nergaard와 관련된 기억은 하나도 없다.
최근 앨범 「Darkness Out Of Blue」(Emarcy, 2007)을 들었는데도 그리 감흥이 없었던 걸 보면 나와 잘 어울리지 않는 아티스트인 모양이다. 쇼핑몰의 앨범 소개에는 "북유럽 재즈의 대중화를 몰고 온 노르웨이 오슬로 출신의 재즈 싱어"라고 적고 있다.
이 앨범은 2000년에 발표한 「Port Of Call」(Emarcy, 2000). 어차피 흐릿하게 처리할 예정이었다면 좀더 당당하게 찍어도 좋았을 것 같지만, 그녀는 아름다운 몸을 드러내야 하는 모델이 아니라 재즈 아티스트이니 이 정도의 흐린 기억으로도 충분하다.
이렇게 적고 보니, 오늘 커버/스토리에서는 이야기하고 싶은 것과 이야기해야 할 것을 모두 빼먹은 것 같다. 흐릿한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그게 지독하게 나를 괴롭히는 감기 같은 것들이라 이야기해봐야 소용없다는 것까지 고민하느라 왔다갔다 했다.
아니, 감기 때문에 멍한 상태에서 쓴 글이라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자주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
어린 시절에는 아주 달고 살았지만,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나서는 용케 잘 피해다녔다.
특히 몇 년 동안 겨울 감기는 없었다.
어쨌든, 다시, 희미해질 것이다.
충전이 필요하다..
아니다. 감기에 걸린 탓이다. 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