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부터 익지 않은 음식에 막연한 공포가 있다.
내 취향이기도 하지만, 집안 내력이기도 하다.
그래도 고기 비린내 같은 것에 그리 신경 쓰는 편이 아니라 찌게나 구이는 잘 먹는다.
물고기 종류를 전혀 먹지 못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죽어서도 생생한 고기의 눈이 불편하다고 했다.
눈을 감는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는데...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다.
고기는 살아있을 때도 죽었을 때도 눈을 뜨고 있다.
햇빛에 바짝 마른 고기조차.
내가 물고기를 불편하게 생각했던 건...
영화 '양철북'의 한 장면에서 살아있는 고기를 먹는 장면이 나왔을 때였던 것 같다.
(항상 하는 이야기지만 내 기억력은 워낙 빈약해서 제대로 기억하는 것이 없다. 벌써 이 말을 몇번이나 썼던 것 같은데...)
오늘은 그런 기억을 더듬어 고기에 관한 커버/스토리를 써봐야겠다.
맞다. 이 커버를 보는 순간 물고기 커버/스토리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앨런 스미시의 데뷔 EP 「앨런스미시프로젝트 0.5」(서울음반, 2007)의 커버다.
(※ 참고로 밴드는 이 앨범을 싱글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별도의 제목이 붙은 싱글은 이 세상에 없다. 착각한 것이라면 지금이라도 EP라고 정정해주길. 핫*랙스나 알*딘 웹사이트에는 싱글이 아니라 EP로 표기해놨다. 그게 정확한 표기다.)
이야기가 샜는데, 다시 커버로 돌아오면, 한때 가장 중요한 인터넷 키워드였던 '엽기'로 봐도 좋을 법한 커버다. 신문지로 싼 커다란 물고기, 그리고 놀라는 한 여인...
보컬을 담당한 멤버가 이 사진을 촬영할 때 "테마가 있고 상상력을 불러일으킬만한 연출"을 의도했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나의 상상력으로 이 커버를 봤을 때는... 엽기적인 동양인이 평범한 서양인을 놀라게 만드는 과정으로 읽었다. 영화적인 상상력이 내게 부족한 탓이지만... 물고기에서 어떤 의미를 찾기 힘들다.
물론, 물고기를 내미는 남자의 온화한 미소와 신문을 읽고 있는 남자의 묘한 미소(저 각도라면 그는 물고기의 몸이 아니라 입만 살짝 보일 것이다. 어쩌면 신문만 보였을지도...) 때문에 그렇게 자극적이지는 않다.
내 영화적 상상력은 얼마나 부족한 것일까... 갑자기 지나치게 빈약해진 것 같다.
밴드 멤버의 지속적인 작업 관련 글이 올라온 사이트의 링크를 추가한다. [커버스토리 1 읽기] [커버스토리 2 읽기]
이 커버는 앞서 이야기한 내 기억 속의 '양철북' 스토리와 가장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앨범 커버다.
헬로윈 Helloween의 「Pink Bubbles Go Ape」(EMI, 1991).
죽어서도 부릅 뜬 눈을 가진 고기와 그것을 막 먹으려는 여인.
물론... 이건 누구나 다 알만한 섹슈얼 이미지를 담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척 보면 압니다" 스타일로 유명한 스톰 소거슨 Storm Thorgerson의 작품이다.
헬로윈에게 이 커버는 독일 호박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작을 암시하는 작품일 것이다.
노이즈와 법정소송을 벌여야 했던 밴드는 노이즈 레이블 시절의 호박 그래픽을 계속 이용하는 건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을 수도 있고, 독일을 벗어나 미국 시장에서도 밴드의 음악을 알리기 위해 이런 커버를 원했을 수도 있다.
하, 이런... 추측이 어느 정도 맞으니 재미있긴 하지만, 이 LP가 국내 공개되었을 때 난 너무너무 즐거워했다. 핑크 플로이드의 앨범에서 느꼈던 감동을 헬로윈의 앨범에서도 맛보다니! 하며. 이너 슬리브의 버블 사진들은 정말 핑크 플로이드 작품 만큼이나 멋졌다.
고기 이야기에서 참 많이 벗어났긴 하지만, '양철북'의 국내 개봉 시점이 그리 오래 지나지 않은 탓에 더 흠칫 했던 건 사실이다.
죽은 채 눈을 뜬 고기.
그렇지만 이 커버 속 물고기는 살아 펄쩍펄쩍 뛰는 고기보다 더 꿈틀거린다.
그게 커버가 주는 상상력 같다.
마지막으로 뼈가 너무도 많은 생선 커버로 가장 유명한 커버 가운데 하나. 캡틴 비프하트 앤 히즈 매직 밴드 Captain Beefheart & His Magic Band의 「Trout Mask Replica」(Straight Records, 1969).
이 앨범 커버를 볼 때마다 괜한 비린내가 사방에 자욱해진다. 하지만 프랭크 자파 Frank Zappa의 프로듀스와 자파가 설립한 레이블에서 나온 앨범이라는 것은 크게 매력을 주지 못한다. 프랭크 자파의 음악성은 이해하지만 그의 음악에 쉽게 감동하지 못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생선을 소재로 한 커버를 살펴보았는데...
오늘은 감동보다는 분석이 앞선 것 같다. 생선이 주는 미끌미끌한 감촉이 그리 매력적이지 않고 죽어서도 또렷하게 눈 뜨고 있어야 하는 운명도 슬프기보단 잔혹해보이고...
무엇보다 생선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목에 걸린 생선가시는 꽤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는 기분 나쁜 경험이다.
생선은 그런 것 같다. 좋은 기억보다는 좋지 않은 기억이 앞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