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커버/스토리 [diary edition]

사고 事故

2008. 4. 9. 02:13

일요일 밤이었나보다.
두시간 동안 BBC에서 제작한 9.11 다큐멘터리 재방송을 보고 나니 머리가 띵하다.

무슨 커다란 사고의 순간을 기다리기나 한 듯, 이야기를 위한 커버를 모두 올려놓고 작성하지 않았던 사고 관련 앨범 커버스토리를 오늘은 해야겠다.
사고는 언제나 있을 수 있는 일이고, 꼭 그 순간을 기다릴 필요는 없을 테니까.




가장 기억나는 사고 관련 앨범 커버는
레드 제플린의 데뷔작 「Led Zeppelin」(Atlantic, 1969)일 것 같다.

레드 제플린의 데뷔 앨범 커버는 1937년 5월 1일 LZ 129 힌덴부르크 LZ 129 Hindenburg의 사고 장면을 담고 있다. 모두 36명 사망.

[영문위키로 보려면

여기

를, 영문위키가 귀찮거나 레드 제플린과 좀더 연관된 글을 읽으려면

여기

를 클릭]


레드 제플린이 이 사진을 커버로 사용한 것은 그동안 음악계를 지배했던 것에 대한 반발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의도대로 그들은 70년대 이후 록 음악을 변화시켰다. 가끔 흑마술적인 분위기까지 풍기기도 했다. 신인 밴드가 음악 말고 다른 것으로 시선을 잡아끌 수 있다면 이런 충격요법을 사용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노골적으로 잔혹함을 보여주는 커버는 말고.) 레드 제플린은 이 커버로 신인 밴드가 음악 말고 할 수 있는 최대의 홍보효과를 노렸던 것 같기도 하다.
가장 멋진 데뷔 앨범 (커버) 가운데 하나.




미스터 빅 Mr. Big의 두번째 앨범 「Lean Into It」(Atlantic, 1990).
이 커버스토리를 쓰려고 마음먹은 것은 이 앨범에 관한 글을 본 이후였다.
참 멋진 밴드였는데 <To Be With You>가 지나치게 많이 들리는 바람에 미스터 빅의 기억은 이 앨범에서 멈췄다. (<To Be With You>는 정말 좋은 곡이다. 지나치게 자주 들었기 때문에 지겨운 것 뿐이다. 익스트림 Extreme의 <More Than Words>도 마찬가지.)

미스터 빅의 앨범 커버는 기차 추락사고 장면을 담고 있다. 멈추지 못해 역을 뚫고 나가 바닥에 처박힌 기차. 1895년 10월 22일 프랑스 파리의 가르 몽파르나스 Gare Montparnasse 역에서 일어난 사고다. 이런 대형사고가 났는데도 기차에 타고 있던 2명의 승객을 포함한 10명의 탑승자들은 전원 무사했는데... 길에 서 있던 한 여인이 건물 파편에 맞아 사망했다. [사고에 대한 내용을 더 알고 싶으면 여기를 클릭]




이 앨범 커버는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 음악인 이야기에 항상 등장하는 레너드 스키너드 Lynyrd Skynyrd가 1977년 10월 17일 발표한 「Street Survivors」(MCA, 1977)이다.

앨범 발표와 동시에 (또는 전후로) 활발한 투어를 벌이는 밴드들은 여러 지역을 여행하기 위해 다양한 탈 것들을 이용한다. 레너드 스키너드는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루이지애나로 가기 위해 비행기를 탔는데, 앨범 발표한 지 딱 3일 뒤인 1977년 10월 20일이었다. (남부투어 중이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비행기는... 추락해 여섯 명이 사망했다. 사망한 사람은 밴드의 리드 보컬 로니 밴 잰트 Ronnie Van Zant, 작곡을 담당하던 기타리스트 스티브 게인스 Steve Gaines, 스티브의 누이 캐시 게인스 Cassie Gaines, 세 명의 코러스 가운데 한명, 밴드의 매니저 딘 킬패트릭 Dean Kilpatrick, 그리고 비행기 조종사였다.

여기서 잠깐!

비행기 사고 이후 바뀐 「Street Survivors」커버
앨범을 발표한 지 고작 3일이 지났을 때 일어난 사고 때문에 위에 이야기한 커버는 30년 동안 폐기되었다.

앨범 커버는 불행한 사고를 예고하는 것 같았다. 불타는 거리에 서 있는 생존자들의 모습이 아니라 불타는 희생자의 모습이었고, 심지어 멤버들 가운데 스티브 게인스의 눈이 거의 감긴 상태였다는 것까지 불행의 예고편이라는 이야기가 돌았다.
바로 직전 앨범 「One More From The Road」(MCA, 1976)는 라이브 앨범인데도 3백만장이 넘는 판매량을 기록했으니 밴드의 새 앨범에 거는 기대가 컸던 MCA는 부랴부랴 오리지널 앨범 커버를 폐기하고 수정된 앨범 커버로 바꿨다.

그 결과, 앨범 발매 30주년 기념판으로 제작한 재발매 버전이 오리지널 앨범 커버로 돌아오기까지 무려 30년의 세월을 창고에 갇혀 있었던 셈이다. 

밴드의 핵심을 잃은 레너드 스키너드는 곧 활동을 중지했다. 하지만 1990년대 재결합 붐을 타고 레너드 스키너드도 1991년에 「Lynyrd Skynyrd 1991」(Atlantic, 1991)을 발표하며 재등장해 지금도 활동중이다.
어쨌든 이 사고 이후, 많은 이들은 레너드 스키너드의 대표곡 <Free Bird>를 밴드의 추모곡처럼 생각하게 되었고, 한참 후에 공개되는 레너드 스키너드 다큐멘터리도 'Free Bird'라는 제목을 달았다.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찡하다.

한번 더 여기서 잠깐!!

cfile24.uf@257CAA355864CAB01720F4.jpg

흥미롭게도, 얼마전 새 앨범 「Simple Plan」(Atlantic, 2008)을 발표한 미국 록 밴드 심플 플랜 Simpla Plan은 레너드 스키너드의 앨범 커버와 매우 비슷하다. (심지어 맨 오른쪽 멤버 눈이 아래를 향하고 있는 것까지.)
왼쪽은 밴드의 프론트맨 피에르 부비에 Pierre Bouvier가 자신의 마이스페이스에 새 앨범 커버라며 공개했던 최초 커버고, 오른쪽은 최종 확정된 커버다. 이 에피소드에 레너드 스키너드 이야기는 없지만, 최초 구상은 거기에서 시작되지 않았을까 싶다. 왼쪽 앨범 커버는 음반사가 거부해 결국 오른쪽 커버로 발표하게 되었다. 하지만 뜻을 굽히지 않은 건지 레너드 스키너드의 이야기와 함께 거론되길 바라는 기대심리인지 알 수 없지만 결국 오스트레일리아에서만 공개한 한정판 커버로 사용했다고 한다.
오스트레일리아 리미트드 에디션을 입수하지 못해 최초 앨범 커버 사진은 누가 찍었는지 모르겠지만, 최종 앨범 커버의 사진은 워윅 세인트 Warwick Saint가 찍었다. 앨범은 2008년 2월 12일에 공개되었고 심플 플랜 멤버 가운데 그 누구도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은 '아직' 들은 바 없다.





레너드 스키너드의 비행기 사고를 이야기할 때 쯤 해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앨범 커버는 스웨이드 Suede의 컴필레이션 앨범 「Sci-Fi Lullabies」(Nude Records, 1997)다.

이 앨범은 1993년에 발표한 데뷔 앨범 「Suede」와 1994년의 두번째 앨범 「Dog Man Star」, 그리고 1996년의 「Coming Up」에 이르는 동안 발표한 여러 싱글의 B-side를 두 장의 CD에 (거의) 모두 담았다.

앨범 제목으로 내용물을 떠올리긴 어려웠지만, 앨범 커버는 의미심장했다. 앨범 커버 아트는 조이 디비전 Joy Division을 비롯해 뉴 오더 New Order 등의 앨범을 발표했던 팩토리 레코드의 커버 아트 담당 피터 세빌 Peter Saville의 작품이다. 피터 세빌은 커버 아트의 전설로 남은 조이 디비전의 「Unknown Pleasure」(Factory, 1977)의 커버 아트를 제작한 바 있다.

조용히 잠자는 두 대의 비행기는, 사고가 아닌 전투 때문에 추락한 것이 분명했지만 레너드 스키너드의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추락한 비행기라는 이미지 때문에 넣었다.




그렇지만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사고 앨범 커버는 조니 미첼 Joni Mitchell의 「Hits」(Reprise, 1996)다.

난 이 앨범을 지금까지 '교통사고 앨범'으로 불러왔고, 오늘 커버스토리를 위해 비장의 무기처럼 숨겨왔던 커버이기도 하다. 정규 앨범은 아니고, 1968년에 발표한 데뷔 앨범 「Song To A Seagull」 이후 처음으로 발표한 베스트 앨범이다. 30년만에 베스트 앨범이라니...

자신의 그림을 커버로 사용할 정도로 화가로도 유명한 조니 미첼답게 앨범 아트 디렉션과 커버 디자인을 직접 담당했다. 사진은 노먼 시프 Norman Seeff가 찍었다. 커버를 보면, 영락없는 교통사고 현장이다. 사고 차량과 사고를 당한 사람의 위치를 표시해놓은 것까지. 그렇지만 사망자는 한 명도 없다.
조니 미첼은 hit라는 단어를 한번 돌리고 두번 돌려 이렇게 재치와 유머 감각이 넘치는 멋진 커버로 처음으로 발표하는 베스트 앨범의 커버를 멋지게 만들어냈다. 최고의 상상력이다.

Joni Mitchell / Misses (1996)
마지막으로, 여기서 잠깐!

조니 미첼의 「Hits」는 그녀의 30년 음악활동 가운데 추려낸 15곡의 히트곡을 담았다. 정말 히트한 것이었는지 궁금할 정도로 오래된 곡들이지만, 익숙한 조니 미첼의 히트곡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조니 미첼의 유머감각은 「Hits」에서 끝나지 않는다. 「Hits」를 발표하면서 이란성 쌍둥이 같은 또 한 장의 앨범 「Misses」(Reprise, 1996)도 함께 공개한 것.

「Misses」는 제목 그대로 싱글로 발표했지만 히트를 기록하지 못했거나 자신이 생각하기에 정말 보석같은 곡이지만 싱글로 발표하지 않아 많은 이들이 모르는 곡들만 담고 있다. 크레딧은 「Hits」와 모든 것이 동일하다. "모면하다, 피하다" 등의 뜻을 담고 있는 miss를 이용해 히트(교통사고)를 피했다는, 뼈 있는 농담을 담고 있다.


내가 이 두 장의 앨범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조니 미첼의 곡 때문이 아니라 앨범 커버와 그 커버를 만들어낸 조니 미첼의 기발하고 상상력 때문이다. 다시 생각해봐도, 정말 최고의 사고 앨범이다.
이런 위트와 유머를 가졌으면 하고 바랄 때가 많다.

공유하기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naver 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