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밤이었나보다.
두시간 동안 BBC에서 제작한 9.11 다큐멘터리 재방송을 보고 나니 머리가 띵하다.
무슨 커다란 사고의 순간을 기다리기나 한 듯, 이야기를 위한 커버를 모두 올려놓고 작성하지 않았던 사고 관련 앨범 커버스토리를 오늘은 해야겠다.
사고는 언제나 있을 수 있는 일이고, 꼭 그 순간을 기다릴 필요는 없을 테니까.
가장 기억나는 사고 관련 앨범 커버는
레드 제플린의 데뷔작 「Led Zeppelin」(Atlantic, 1969)일 것 같다.
레드 제플린의 데뷔 앨범 커버는 1937년 5월 1일 LZ 129 힌덴부르크 LZ 129 Hindenburg의 사고 장면을 담고 있다. 모두 36명 사망.
[영문위키로 보려면
를, 영문위키가 귀찮거나 레드 제플린과 좀더 연관된 글을 읽으려면
를 클릭]
레드 제플린이 이 사진을 커버로 사용한 것은 그동안 음악계를 지배했던 것에 대한 반발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의도대로 그들은 70년대 이후 록 음악을 변화시켰다. 가끔 흑마술적인 분위기까지 풍기기도 했다. 신인 밴드가 음악 말고 다른 것으로 시선을 잡아끌 수 있다면 이런 충격요법을 사용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노골적으로 잔혹함을 보여주는 커버는 말고.) 레드 제플린은 이 커버로 신인 밴드가 음악 말고 할 수 있는 최대의 홍보효과를 노렸던 것 같기도 하다.
가장 멋진 데뷔 앨범 (커버) 가운데 하나.
미스터 빅 Mr. Big의 두번째 앨범 「Lean Into It」(Atlantic, 1990).
이 커버스토리를 쓰려고 마음먹은 것은 이 앨범에 관한 글을 본 이후였다.
참 멋진 밴드였는데 <To Be With You>가 지나치게 많이 들리는 바람에 미스터 빅의 기억은 이 앨범에서 멈췄다. (<To Be With You>는 정말 좋은 곡이다. 지나치게 자주 들었기 때문에 지겨운 것 뿐이다. 익스트림 Extreme의 <More Than Words>도 마찬가지.)
미스터 빅의 앨범 커버는 기차 추락사고 장면을 담고 있다. 멈추지 못해 역을 뚫고 나가 바닥에 처박힌 기차. 1895년 10월 22일 프랑스 파리의 가르 몽파르나스 Gare Montparnasse 역에서 일어난 사고다. 이런 대형사고가 났는데도 기차에 타고 있던 2명의 승객을 포함한 10명의 탑승자들은 전원 무사했는데... 길에 서 있던 한 여인이 건물 파편에 맞아 사망했다. [사고에 대한 내용을 더 알고 싶으면 여기를 클릭]
이 앨범 커버는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 음악인 이야기에 항상 등장하는 레너드 스키너드 Lynyrd Skynyrd가 1977년 10월 17일 발표한 「Street Survivors」(MCA, 1977)이다.
앨범 발표와 동시에 (또는 전후로) 활발한 투어를 벌이는 밴드들은 여러 지역을 여행하기 위해 다양한 탈 것들을 이용한다. 레너드 스키너드는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루이지애나로 가기 위해 비행기를 탔는데, 앨범 발표한 지 딱 3일 뒤인 1977년 10월 20일이었다. (남부투어 중이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비행기는... 추락해 여섯 명이 사망했다. 사망한 사람은 밴드의 리드 보컬 로니 밴 잰트 Ronnie Van Zant, 작곡을 담당하던 기타리스트 스티브 게인스 Steve Gaines, 스티브의 누이 캐시 게인스 Cassie Gaines, 세 명의 코러스 가운데 한명, 밴드의 매니저 딘 킬패트릭 Dean Kilpatrick, 그리고 비행기 조종사였다.
밴드의 핵심을 잃은 레너드 스키너드는 곧 활동을 중지했다. 하지만 1990년대 재결합 붐을 타고 레너드 스키너드도 1991년에 「Lynyrd Skynyrd 1991」(Atlantic, 1991)을 발표하며 재등장해 지금도 활동중이다.
어쨌든 이 사고 이후, 많은 이들은 레너드 스키너드의 대표곡 <Free Bird>를 밴드의 추모곡처럼 생각하게 되었고, 한참 후에 공개되는 레너드 스키너드 다큐멘터리도 'Free Bird'라는 제목을 달았다.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찡하다.
레너드 스키너드의 비행기 사고를 이야기할 때 쯤 해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앨범 커버는 스웨이드 Suede의 컴필레이션 앨범 「Sci-Fi Lullabies」(Nude Records, 1997)다.
이 앨범은 1993년에 발표한 데뷔 앨범 「Suede」와 1994년의 두번째 앨범 「Dog Man Star」, 그리고 1996년의 「Coming Up」에 이르는 동안 발표한 여러 싱글의 B-side를 두 장의 CD에 (거의) 모두 담았다.
앨범 제목으로 내용물을 떠올리긴 어려웠지만, 앨범 커버는 의미심장했다. 앨범 커버 아트는 조이 디비전 Joy Division을 비롯해 뉴 오더 New Order 등의 앨범을 발표했던 팩토리 레코드의 커버 아트 담당 피터 세빌 Peter Saville의 작품이다. 피터 세빌은 커버 아트의 전설로 남은 조이 디비전의 「Unknown Pleasure」(Factory, 1977)의 커버 아트를 제작한 바 있다.
조용히 잠자는 두 대의 비행기는, 사고가 아닌 전투 때문에 추락한 것이 분명했지만 레너드 스키너드의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추락한 비행기라는 이미지 때문에 넣었다.
그렇지만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사고 앨범 커버는 조니 미첼 Joni Mitchell의 「Hits」(Reprise, 1996)다.
난 이 앨범을 지금까지 '교통사고 앨범'으로 불러왔고, 오늘 커버스토리를 위해 비장의 무기처럼 숨겨왔던 커버이기도 하다. 정규 앨범은 아니고, 1968년에 발표한 데뷔 앨범 「Song To A Seagull」 이후 처음으로 발표한 베스트 앨범이다. 30년만에 베스트 앨범이라니...
자신의 그림을 커버로 사용할 정도로 화가로도 유명한 조니 미첼답게 앨범 아트 디렉션과 커버 디자인을 직접 담당했다. 사진은 노먼 시프 Norman Seeff가 찍었다. 커버를 보면, 영락없는 교통사고 현장이다. 사고 차량과 사고를 당한 사람의 위치를 표시해놓은 것까지. 그렇지만 사망자는 한 명도 없다.
조니 미첼은 hit라는 단어를 한번 돌리고 두번 돌려 이렇게 재치와 유머 감각이 넘치는 멋진 커버로 처음으로 발표하는 베스트 앨범의 커버를 멋지게 만들어냈다. 최고의 상상력이다.
내가 이 두 장의 앨범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조니 미첼의 곡 때문이 아니라 앨범 커버와 그 커버를 만들어낸 조니 미첼의 기발하고 상상력 때문이다. 다시 생각해봐도, 정말 최고의 사고 앨범이다.
이런 위트와 유머를 가졌으면 하고 바랄 때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