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가 무섭긴 무서웠다. 그야말로 놀라 자빠질 지경. 무려 14년이란 시간 동안 이 방 방바닥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이삿짐을 싸는 과정에서, 이렇게, 이제야, 이곳으로, 이사했던, 그 때, 그 시절로, 돌아갔다.
그러면서 예상했다.
이삿짐을 싸다 발견한 음반 시리즈를 두 개 올려놓은 뒤 더 이상 올리기는 불가능하리란 걸. 그래서 결국 그 시리즈는 '이삿짐 풀다 발견한 음반' 시리즈로 바뀔 거라는 걸.
예상 시점? 이 무렵 아니었을까?
옥상에 올라갈 마지막 기회라며 문을 활짝 열어주었던 그날 저녁 무렵. 고양이는 옥상에서 내려오기 직전, 바닥 쓰레기 정리하던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래, 마지막.
아니면 여기였을까? 나의 첫 CD플레이어, SONY CDP-770. 픽업을 교체해야 쓸 수 있다고 하는데도 돈이 아까워 수리하지 않고 가져온 후 10년 쯤 더 썼다. 이 기기로 음악을 들을 무렵에는 'CD를 사는 게 부끄러운 일이거나 돈지랄이 결코 아니었다'. 아직도 작동하리라 생각하지만 이젠 버리기로 했다. 안녕. CDP에게 마지막 인사를 할 때 이삿짐은 거의 마무리되고 있었다.
진짜 마지막. 오전까지 비가 내려 바닥이 어지럽다. 이렇게 텅 빈 집이었나. 여기로 옮긴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온갖 쓰레기가 녹조처럼 방을 덮었다. 마지막이 된 순간 다시 처음이다. (내년에 이 집은 흔적 없이 사라진다. 휴, 다행이다. 누군가 내 뒤를 이어 살 사람이 없다. 먼저 살고 나간 나를 얼마나 욕했을까.)
이미 이사가 시작되었으므로.
이삿짐을 싸다 발견한 음반 시리즈는 저절로 끝나버렸다.
그리고...
눈이 내렸고
고양이는 옥상이 없다고 우는 대신 가장 높은 옷장을 찾아 올라가버렸고
(그러다 옷장 끝 좁은 틈 사이로 굴러떨어져 집안을 발칵 뒤집어놓았던 이야기가 있다. 이 녀석, 이전 집 옥상, 그 높은 옥상에서 떨어진 적도 있다. 다치지 않았으니 녀석에게 복이라면 복일까... 아니다. 추락사고 덕분에 옷장 위로 올라갈 길을 막아버렸다. 행은 불행과 함께 온다.)
CD장은 전보다 좁고 불편하게 자리 잡았다.
그러니...
이미 이사를 마쳤으므로.
이삿짐을 싸다 발견한 음반 시리즈는 '이삿짐을 풀다 발견한 음반 시리즈로 저절로 변해버렸다.
(이삿짐을 싸다 발견한 음반이라며 찍어놓은 사진과 이삿짐을 풀다 발견한 음반 사진을 섞어도 별 탈 없겠다. 이리 재고 저리 재봐야 영하 10도 언저리로 추락한 바깥 기온은 변함 없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