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커버/스토리 [diary edition]

CD장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거나 닦아내려면 모든 CD를 먼저 꺼내야 했다. CD장 앞 먼지를 조금 더 확실하게 닦겠다는 뜻으로 시작한 일이었는데... 커져버렸다. 별 일 없을 줄 알았던 CD들도 먼지를 흠뻑 뒤집어 쓰고 있었다. 그렇긴 하지. 방에서 퍼져나간 먼지가 어디로 갈까. 결국 방이다. 게다가 언제부터인지 '미세먼지'가 일상이 되어버렸으니 사방이 먼지.


도배도 새로 하고 페인트도 새로 칠한 집인데 옛날 먼지가 가득 하다면 몸도 마음도 괴로울 테지. 결국 모두 닦기로 했다. 박스에 들어가 있는 녀석들은 그대로 두고 CD장에 꽂혀 있는 녀석들은 모두 젖은/마른 걸레를 한번씩 거쳐가도록 했다. 몇 장을 닦은 건가...


그러다 만난 돼지 커버들.


왜 돼지 커버를 꺼내놓았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만, 검색에 도움이 되기 위해 적어두기로 했다. 2019년은 기해년(己亥年), 그러니까 돼지해다. 돼지해를 기념하며 (날로 먹는) 커버/스토리를 쓰기 위해서였다.




Blodwyn Pig [All Said And Done] (Secret Records, 2004)

- Illustration : Marion Peck

70년대 록 밴드 블로딘 피그 Blodwyn Pig의 돼지 커버. 두 장의 CD중 첫 번째 CD는 제스로 툴 Jethro Tull의 1968년 데뷔 앨범 [This Was] (Island, 1968)를 2001년에 재녹음한 곡들이다. 왜, 무슨 이유로, 제스로 툴을? 블로딘 피그의 리더 믹 에이브러햄스 Mick Abrahams는 [This Was]에서 기타를 담당한 제스로 툴의 멤버이자 이언 앤더슨 Ian Anderson과 앨범 수록곡을 함께 만든 핵심 인물이다. 하지만 이언 앤더슨이 재즈와 포크를 지향한 데 비해 믹은 블루스와 블루스 록 지향. 이러면 대개 밴드가 깨진다. 하지만 믹이 절 싫어진 중이 된 심정으로 제스로 툴을 떠나는 걸로 종료된다. 믹 에이브러햄스는 블루스 록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블로딘 피그를 결성했다. 크게 빛을 못 봤지만, 어쨌든, [This Was]는 믹이 제스로 툴 멤버로 참여한 유일한 제스로 툴 앨범이었으니 "내가 제스로 툴 원년 멤버야!" 이걸 강조하려고 커버한 게지.

쓸데없이 음악 이야기를 길게 썼다. 커버/스토리로 돌아와서 다시 시작하면, 블로딘 피그는 이 블로그에서 12년 전에 다뤘다. 그때도 돼지해를 기념한다며 날로 먹었던 글("2007년 황금돼지?")인데, 벌써 12년이 지났다. (이 블로그도 최소한 12년은 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링크한 옛날 글에 이 밴드의 돼지 앨범 커버가 있으니 확인하면 되겠다. 이번에 소개한 [All Said And Done]의 커버 일러스트는 마리온 팩 Marion Peck이 그렸다.




The Smashing Pumpkins [Earphoria] (Virgin, 2002)

눈물이 주루룩 흐르게 만드는 국내 발매반 스티커 문구. "이제 다시 볼 수 없는 전설이 되어버린 스매싱 펌킨스의 최초이자 마지막 공식 발매 라이브 앨범"인데... 지금도 볼 수 있는, 심지어 다아시가 빠졌지만 원년멤버들을 불러모아 새 앨범 [Shiny And Oh So Bright, Vol. 1 / LP: No Past. No Future. No Sun.] (Napalm, 2018)까지 공개했다. 그럼 눈물을 거두어야지.

이 커버 속 돼지들은 뮤직비디오 속 돼지였던가? 앨범 어디에도 커버아트에 관한 코멘트가 없어 적지 못했다. 여러 번 이야기했는데, 난 뮤직비디오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유튜브가 대세가 되어버린 요즘에야 오피셜 뮤직비디오로 음악을 듣는다.

아무튼 스매싱 펌킨스가 음반 발표 계획을 통제하려는 소속사 처사에 "저런 놈들이 내 음반 발매사라니!!'라며 분개했고, 결국 [Machina II/The Friends & Enemies Of Modern Music] (Constantinople, 2000)을 인터넷에 무료로 풀어버리며 산화했다. 이때 눈물 좀 흘렸을 걸? 아직은 권리를 주장할 수 있었던 버진이 2년 뒤 최초이자 마지막 정발 라이브 앨범을 발표하자 몇몇 팬들은 또 눈물을 주루룩 흘렸을 걸? 나도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눈물을 흘렸다면, 마지막이라는데 속 편하게 덩실덩실 춤을 추는 돼지들 때문이었을 게다. (아아아, 진짜 눈물 말고. 마음의 눈물.)




이런저런 의미에서,

2019년 기해년(己亥年) 돼지해, 모두 건강하길. 연말 즈음엔 웃으며 이야기할 좋은 일 서너 개 쯤 이루어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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