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커버/스토리 [diary edition]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가짜미끼를 단 피라미 낚시 말고 낚시를 해본 적이 없다. 세월을 낚을 여유도, 이유도 아직 없어서 그런 모양이다. 출렁이는 물속에 잠긴 찌를 보고 있으면 찌는 자기 자리에 그대로 있는데 내 머리만 어질어질 쏟아져버릴 것 같다.

 

낚시할 줄도 모르면서도 난 낚시방송을 본다.

낚시방송 볼 때 내 규칙 :

1. 바다낚시는 안 본다. 배 타고 낚시하는 경우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위키드 튜나'만 잠깐 봤다. 하지만 지금은 안 본다. [작살 때문에... 고기가 너무 커...]

2. 낚시터에서 세워놓은 구조물에 앉아 낚시하는 프로그램은 안 본다.

3. 배스 낚시는 가끔 보는데, 진행 말투가 거슬리면 안 본다.

4. 붕어 낚시는 본다. 소류지 낚시는 풍경 때문에 좋아한다. 잡히거나 말거나.

 

잠깐. 세월을 낚을 이유도, 여유도 없다고 하지 않았나? 멍하니 티비 앞에서 시간 보내며 남들 낚시하는 거 볼 여유는 있단 말인데... 그렇다. 바로 앞에서 한 말도 기억 못 하는 나는 붕어 대가리 뇌. 3초짜리다.

 

잠깐. 3초? 오래 전부터 그런 말이 있었다. 풀어주면 바로 또 잡힌다고 해서 3초라고 했다. (닭 대가리를 두고 하는 말이었나?) 헷갈려 '붕어 3초'로 검색했더니 맞는 것 같다. 붕어의 뇌를 옹호하는 기사가 많다. 심지어 붕어는 모르겠고 놀래기는 11개월 전 일도 기억한다더라는 기사도 있다. 흠... 게다가 우연히 이 글을 쓰기 시작할 때 만난 책에서도 "1부. 물고기에 대한 오해 / 제1장 물고기를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 챕터에서 이렇게 강조한다.

 

'물고기의 기억력은 3초'라는 악명 높은 이야기는 간단한 실험을 통해 낭설인 것으로 밝혀진 지 오래다. 암초 주변을 유심히 관찰하면 '청소부와 고객 간의 상리공생'이라는 물고기들의 사회역학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물고기들은 멍청한 얼간이며, 본능의 노예'라는 인간의 자만심을 여지없이 깨뜨릴 것이다."

- 조너선 벨컴 [물고기는 알고 있다], 에이도스, 2017, p28.

 

 

아, 본능의 노예...

위에 인용한 책은 "우리가 무심코 '물고기'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매우 다양한 동물의 집합체다. (...) 우리가 '물고기'라고 부를 때, 우리는 지구상의 척추동물 중 60퍼센트를 지칭한다고 보면 된다."(p.17)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오늘은 "3초에서 시작하는 붕어 대가리 커버/스토리", 정확히 말하면, "붕어 대가리가 아니라 '고기' 대가리 커버/스토리"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물고기가 무엇인가부터 따지고 들어가야 할 분위기다. 책을 인용했더니 왜 이리 심오해지나.

 

더 깊이 들어가면 나만 손해다. 그냥, 고기 대가리 커버/스토리 시작!

 

 

 

Captain Beefheart & His Magic Band [Trout Mask Replica] (Straight, 1969)

* album design : Cal Schenkel

고기 대가리 하면 바로 이 앨범 커버가 떠올라야 한다.

프랭크 자파 Frank Zappa의 레이블 스트레이트에서 발표한 이 앨범은 프랭크 자파가 프로듀싱했고, 프랭크 자파의 유명 앨범들을 디자인한 칼 셴켈 Cal Schenkel이 디자인을 담당한, 록의 걸작이다. 이 앨범을 모르면 60년대 후반 록의 한 부분을 뭉텅 빼먹는 셈이 될 정도. 이 앨범은 캡틴 비프하트를 영원한 록의 거물로 올려놓은 결정타가 되는데... 단 한 번 듣고 이 앨범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는 글자 그대로 사이키델릭 홀릭이다. 솔직히 수 많은 프랭크 자파의 앨범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들은 앨범이 한 장이나 있을까 싶을 정도인데, 자파보다 (최소) 한 수는 밑에 있는 캡틴 비프하트의 음악을 한번에 감상하는 건... 불가능하진 않지만 쉽진 않다. [ * 나 역시 이 앨범을 내 돈 주고 사지 않았다. 명반이라길래 들어보려고 샀는데 도저히 못듣겠다며 항복을 선언한 K가 내 음반 한 장과 맞바꿔줬다. 덕분에 이 음반을 내 라이브러리에 꽂아둘 수 있었다.]

안녕~ 하고 손 흔드는 줄 알고 있었는데, 지금 천천히 다시 보니 고기 대가리 벗겨질까봐 엄지로 받치고 있는 것 같다. 캡틴 비프하트의 명반/걸작을 감상해보길 권한다. 어느 순간, 아!, 하고 느낌이 오는 무언가가 있는 앨범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감동이 3초를 갈 수 있을까 싶다는 점. 이 앨범을 드디어 가졌다는 기쁨에 몇 번 들었는데 기억나는 곡이 단 한 곡도 없다. 다 까먹고 고기 대가리 마스크를 했다는 것만 기억한다. (그게 앨범 제목인 덕분에 그래도 제목을 술술 불 수 있어 아는 척 하기는 좋다.)

 

 

 

ĠENN [Liminal] (Everything Sucks Music, 2021)

* band logo by Leona Farrugia | photos by Bridie Florence | design and layout by Eilidh Urquhart

세 명의 몰타 출신 여성 록 뮤지션이 영국으로 건너가 드러머를 영입하면서 4인 밴드가 된 여성 록 밴드 젠. 아직 가사까지 확인해가며 노래 속으로 깊이 들어가진 않아서 어떤 내용을 노래하는지 모르겠지만, 여성 밴드들이 보여준 독특한 태도를 이들도 유지하고 있다. 밴드캠프 링크를 붙여놓을 테니 직접 들어보고 이야기해주길.

물고기 가면을 쓰고 물 속에 들어간 여인은 젠의 보컬리스트 레오나 파루자 Leona Farrugia다. 어떻게 알았느냐고? 유튜브 라이브 영상에서 보컬의 팔 문신을 확인했다. (음악을 들어보면 참 멋진 밴드구나, 싶을 텐데, 링크한 2년 반 전 업로드 영상 조회수가 1639회다. 멋진 라이브에 화질도 좋은데 보면서 조회수 좀 올려주었으면 좋겠다. 조회수가 최소 1만 단위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조회수 숨겨주기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그나저나, 레오나 파루자는 왜 물고기 가면을 쓰고 물 속에 들어간 사진을 커버아트로 썼을까.

이걸 해결해보겠다고 (거짓말 많이 보태) 한참 고민했지만 찾지 못했다...가 스포티파이 밴드 바이오그래피에서 단서를 찾았다.

 

스포티파이가 정리해놓은 ĠENN의 바이오그래피 (일부)

그러니까 젠의 음악은 백스터 듀리(Baxter Dury인데 Drury라고 오타를...), 메트로노미 Metronomy, LCD 사운드시스템 LCD Soundsystem, 워페인트 Warpaint, 그리고 캡틴 비프하트 Captain Beefheart를 떠올리거나 함께 버무리면 어느 정도 감이 잡힐 거란 말이지. 오, 캡틴 비프하트!! 설마... 바로 위에서 이야기한 캡틴 비프하트를 까먹지는 않았겠지?

이 바이오그래피에서 유추하면 젠의 물고기 대가리 커버아트는 캡틴 비프하트의 송어 대가리 마스크 오마주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 혹시라도 젠에게 물어볼 기회가 생겼다면 이렇게 물어보길. "[Liminal] 커버아트는 캡틴 비프하트의 오마주인가?" 장담컨대, 대답은 "어? 어떻게 알았지??"일 게다.

 

 

 

Kevin und die tätowierte Vollzeitmutter [Übler Rüdiger] (Mantra Studio, 2019)

*artwork by Luca Bermudez

 

- [Ein Von Sinnesfreuden Besessender Mensch] (Mantra Studio, 2020)

*artwork by Luca Bermudez

케빈 운트 디 태토비어트 폴자이트무터 Kevin und die tätowierte Vollzeitmutter (혹시 한글 표기가 틀렸으면 지적 바랍니다. 독일어를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습니다.)는 지금까지 네 곡의 싱글을 발표한 스위스의 스토너 록 듀오다. 밴드캠프에 직접 올린 앨범 소개를 보면 모두 EP라고 적고 있는데, 각각 10분이 넘는 단 한 곡만 담고 있어 EP로 불러주고 싶어도 불가능하다.

2018년부터 2020년 사이에 발표한 네 장의 싱글 커버는 모두 설정이 같다. 같은 크기의 바다를 배경으로 오징어, 게, 고기 대가리 마스크 쓴 남자, 고기 대가리 마스크 쓴 여자, 이렇게 넷이다. 2020년 이후 새 곡을 발표하지 않는 걸로 봐서 이 네 장의 '컨셉트' 싱글이 시작이자 끝인 것 같다. 커버아트 역시 네 장의 '컨셉트'에서 끝이 난 것 같다. 같은 작가의 일러스트를 수록한 싱글이든 EP든 앨범이든 발표한다면, 무조건, 그 해의 베스트 커버아트에 넣어줄 테다. (혹시라도 내 '3초짜리 기억력' 때문에 누락되지 않기를 바란다.)

 

 

이렇게 고기 대가리 커버아트를 마무리 지으려는데... 다 생각해놓고 빼먹은 게 혹시 있으려나?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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