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배경음악부터. 플레이.
Art Of Noise <Moments In Love> from the album [Who's Afraid of the Art of Noise? (ZTT, 1984)
새벽에, 문득,
일 때문에 듣던 음반을 보며 혼자 웃었다.
그땐 그랬다. 모든 편집디자인은 매킨토시로 통하던 시절.
맥에 애정이 크지 않아 세부사항 전부 기억할 수는 없는데, 웻 웻 웻의 경우는 확실히 기억한다. 매킨토시가 구현하지 못하는 한글이 몇 개 있었다. 웻도 그 가운데 하나. 웻이라는 글자를 구현하지 못해 웨트라고 써야 했고, 그래서 Wet Wet Wet은 웨트 웨트 웨트가 되었다. 외래어 표기법으로 따지면 웻이 아니라 웨트가 맞을 게다. 그렇지만 웻이라고 쓰고 싶었다. 똑같은 말을 세 번 쓰는데 웨트는 너무 굼떠 보였다*. 그땐 그랬다.
* 같은 이유로 내가 외래어 표기법을 일부러 따르지 않는 단어가 있다. David 이다. 데이비드가 맞는 표기이지만 날렵해보이지 않고 굼떠 보여 지금도, 그리고 이후에도 데이빗이라고 적는다. 내가 책을 낼 때 출판사 표기 원칙과 맞지 않아 충돌이 생긴다면 끝까지 고집할 몇몇 단어가 있는데, 데이빗은 "뭐, 출판사 원칙이 그렇다면 데이비드로 쓰든 맘대로 하십쇼'"라고 할 의향은 있다. 반대로, 내가 편집자 위치라면 데이비드라고 표기한 원고를 받았을 때 출판사 원칙이니 데이빗이라고 고쳐놓을 게다. 나는 데이빗이라고 쓰니까. 데이빗 보위 David Bowie !
웨트 웨트 웨트. 이 밴드... 영국에선 펄펄 날아다니는데, 미국에서는 힘을 쓰지 못했다. 어디 이 밴드 뿐인가. 영국 밴드가 다 그랬다. 그러나 상황을 바꿀 히트곡이 1994년에 등장한다.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사운드트랙 수록곡 <Love Is All Around>다. 거의 관심을 두지 않던 미국 팬들도 웻 웻 웻이 커버한 트록스 The Troggs의 이 노래는 좋아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오늘 새벽, 날 웃긴 웻 웻 웻의 <Love Is All Around>가 오늘의 주제?
아니... 난 로맨틱 코미디 장르 영화를 안 본다. 간지럽다. (요즘은 안티해피엔딩도 많지만) 해피엔딩으로 이끌어가는 과정도 그다지... 차라리 말도 안되는 특수효과 떡칠한 영화를 보겠다.
오늘 주제는 마스크다.
웻 웻 웻의 세 번째 정규앨범 [High On The Happy Side] (Mercury, 1992)에서 시작하는 커버/스토리다.
해/달 + 웃는광대/우는광대, 네 가지 마스크를 앨범 커버에 담았다.
영국 앨범 차트 1위를 기록했어도, 당시 영국 외 음악 팬들이 이 음악에 귀를 기울일 여유가 없었다. 명반을 배출하던 1991년 미국산 얼터너티브 록 음악의 기세가 등등한 시절. 틴 스피릿 향이 세상을 덮친 때였다. (음악 팬들을 끌어들였는데, 사실 내가 그랬다...) 음악이 좋고 나쁘고가 아니라, 이 앨범 커버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는 이야기이며, 그래서 떠오른 다른 마스크 앨범 커버가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웨트 웨트 웨트가 나를 웃게 해 준 새벽.
* (front cover) illustration : Dave Willardson | art direction, artwork : Bob Defr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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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중반을 잘 지나가던 머틀리 크루의 세 번째 앨범.
웃고 우는 광대 마스크 커버아트 가운데 가장 먼저 기억난다.
80년대 중반 음악계에서 머틀리 크루의 위치와 위력은 대단했다. 80년대는 팝의 시대이면서 헤비메틀의 시대였기도 했다. 머틀리 크루는 당대의 핵심 메틀 밴드였다. 이 정도 밑그림을 깔아놨으면 머틀리 크루 음악은 알아서 자기 위치를 찾아가겠지. <Home Sweet Home>.
* art direction : Paul Mor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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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레이블은 ZTT 레이블에서 발표한 앨범 아트워크를 그대로 쓰지 않고 이 커버로 바꿨다. 최초 앨범 아트워크에서 웃는 광대/우는 광대 마스크를 LP 인쇄에 적절하게 사용하긴 했지만, 이 커버아트에서 프런트에 광대 마스크를 사용한 게 느낌이 더 좋아보인다. 지금까지 아트 오브 노이즈는 이 광대 마스크를 트레이드 마크인 양 여러 형태로 응용해왔다. 그렇지만 아트 오브 노이즈의 커버아트만 따지면, 밴드는 광대 마스크보다 초현실주의 미술을 더 사랑한다.
그리 길지 않은 레이블 히스토리, 그리 많지 않은 소속 아티스트와 발매 음반들인데도 혼란스럽다. '전영혁의 음악세계' 시그널 뮤직으로 사용했던 <Moments In Love>만 봐도 다양한 편곡 버전으로 지금도 재탄생하고 있다. 아트 오브 노이즈 멤버들은 밴드 발표곡들을 새 버전으로 재조립하는 걸 즐기고 있기 때문에 꾸준히 다른 버전을 내놓는다. 그래서 매번 <Moments In Love>를 듣는다. 혼란스럽지만, 매번 이 곡을 들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 결과는 좋다.
울다가 웃으면... 음.... 그런 일이 생긴다고 한다.
(아직 확인하진 못했다.)
그런 커버아트를 세 장 소개했으니 이제 끝, 이라고 선언하려다 갑자기 '마스크' 커버 한 장이 더 생각났다. 뭐, 다른 앨범들처럼 웃고 우는 두 마스크를 동시에 담아낸 앨범은 아니라서 뺄까 하다 생각난 김에 꺼내보자 했다.
아무리 얼굴을 가리고 나왔다고 해도, 내 평소 습관으로 보면, 별 흥행 요소는 되지 못했다. 얼굴 보고 좋아하나, 음악 듣고 좋아하지. 가면 쓰고 나와 노래하면서 경쟁하다 지면 얼굴을 까야 하는 수모를 겪는 TV 프로그램 역시 긴장감 제로다. 앨범 커버처럼 가면을 쓰고 무대에 선다는 이들의 이야기에 피식 웃었다. 하지만 <Lost Reflection>를 듣고 곧바로 좋아하게 된 밴드. 설정이 유치하긴 했어도 못 본 척 넘어가기로 했다. 음악이 좋았으니까.
잘 생겼어도 얼굴을 가려 음악에 집중하게 만들겠다는 의지였거나
못 생겼어도 얼굴을 가려 음악에 집중하게 만들겠다는 의지였거나
어쨌든,
나는 아직도 마스크를 쓴다. 믿을 게 나뿐이라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