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커버/스토리 [diary edition]

그곳에 가고 싶었다.

아는 말이라곤 고작 멜하바 Merhaba 뿐이었지만 한때는 정말 '미치도록' 가고 싶었다.
2002년, "떼~ 한민국!"의 함성을 지겹게 들으며 뜻하지 않게 터키가 주목받았다. 당연하지. 3, 4위전 아니었나. 다들 터키 이야기 뿐이었다. 터키 사람들은 1950년 6월 25일 이후부터 우리나라를 "형제의 나라"로 불렀는데, 우리는 그제서야, 그것도 "형제의 나라"라는 단어를 우리가 써줘야 한다는 폼으로 읊어대는 것이 너무 싫었다.
결국 엉뚱하게 터키가 부각된 바람에, 미치도록이라는 수식어는 '언젠가 때가 된다면'이라는 수준으로 낮아져버렸다.

사실 예전부터 터키를 알고 지냈던 건 아니다. 냅스터로 터키의 노래를 들으며 터키 친구들과 채팅하면서야 그 나라에 대해 더 알고 싶었고 더 가고 싶었고 더 듣고 싶었을 뿐이다. 냅스터로 노래를 들으며? 맞다. 냅스터가 폐쇄되기 전, 내가 터키에 미치도록 가고 싶어진 건 그 무렵이었다.
터키 배낭여행카페에 가입해 1진과 2진의 배낭여행 팀이 출발하는 것을 지켜봤고, 이후에도 여행팀은 계속 꾸려졌지만, 그 시절은 나의 이력에서 정점이었기 때문에 부럽지만 그 뿐이었다. 너무 바빠 움직일 수가 없었다고 핑계를 댈까?





혼자서라도 공부해보기로 했다. 언젠가 갈 테니까.
외국어대학교에 터키어과가 있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교재를 사면 될 것 같았다.
외대를 졸업한 분을 통해 기초 터어키어 문법을 손에 넣었다. 구입일 2001년 1월 22일.
(여담이지만, 터키어 문법 책인데, 한글맞춤법통일안을 지키지 않고 터어키라고 표기하고 있는 건 아이러니다. 터키어를 가르치는 건 좋은데, 그러면 한국어 문법은 곧 실종신고 접수처에 등록되어야 하는 게다. 지금도 이책을 교재로 쓰고 있을까?)
어쨌든 이때까지만 해도 뭔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꼭 가고 싶었으니 당연했다.
하지만... 연습문제의 해답을 전혀 알 수 없었고, 정확한 발음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터키 배낭여행 카페에서는 터키어 강좌를 오프라인에서 하고 있었지만 하늘이 준 낯가림 증상 때문에 끝내 참석하지 못했다. 아쉬운 일이다.

그래서 새 마음 새 기분으로 다시 터키어를 공부해보기로 했다. mp3 파일을 수록한 CD가 두장이나 들어있는 교재다. 아직 개봉을 하지 않아서 CD 내용은 모르겠다. 책날개에 보니,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터키어 강사를 하는 터키교수가 지은 책이라고 한다. 만약 터키에 간다면 이따위 문법이 전혀 쓸모없는 것이기도 하고, 돌아와서 한다는 소리가 "바디랭귀지는 역시 세계인의 공통언어"라고 말할 것이 뻔하다.
새로운 언어를 공부한다는 건 실용주의의 관점에서는 헛일이나 다름없는 시간낭비겠지만 내 관점에서는 욕구 충족 이상의 재미를 주는 즐거운 시간낭비다.
문제는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느냐겠지만, 그건 나중 일.
오늘 이 책을 받고 너무 기분이 좋아졌다.

(책을 받자마자 곧바로 사전을 주문했다. 같이 주문해야 맞는 이야기겠지만... 잔머리 굴려가면서 적립금 생각하느라 두번으로 나눈 것이다. 사전을 출고하려면 5일이나 걸리고 7일 뒤에나 사전을 받을 수 있다.  그래봐야, 그땐 터키어 강의의 첫장을 펼쳐보지도 않았을 테니 늦게 주문했다고 해서 문제될 것은 조금도 없다.)

생각해보니, 정말 미치도록 가고 싶었던 모양이다. 터키 어딘가에서 버스비를 흥정하고 있다는 환상이 슬쩍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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