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짜 커버/스토리


The Beatles 「Let It Be」(EMI, 1970)


비틀즈 The Beatles는 항상 애정과 애증의 경계에 존재한다.

왜 꼭 비틀즈인가? 비틀즈를 빼면 이야기가 안되나?
남들 다 이야기하는 것도 지겨우니 여기서는 그만 언급하지?
젠장. 비틀즈가 없었으면 롹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야?
존 레논도 짜증나고 폴 매카트니도 짜증나. 차라리 링고 스타가 조용해서 좋아.
등등, 여러가지.

하지만 누구나 인정하듯 비틀즈는 여전히 숭배와 칭송과 찬양의 대상이다.
이유? 비틀즈이기 때문이다.

이 블로그의 커버 스토리 카테고리에서도 아마, 몇 번은 더 등장할 게다.
그만큼 매일 이야기하고도 매일 이야기거리가 떨어지지 않는 밴드가 비틀즈다.
하지만, 난 비틀즈를 파고드는 매니악한 성향은 없다.
그저 비틀즈이기 때문이고 비틀즈의 음악이기 때문에, 좋아하고, 이야기하고, 듣는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비틀즈의 마지막 앨범을 골랐다.
(여기서 마지막은 판매를 목적으로 공개한 것이 마지막이란 뜻이고 실제 마지막으로 녹음한 작품은 「Abbey Road」라는,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덧붙인다.)

네명의 멤버를 정확하게 넷으로 균등분할한 단순명료한 커버.
에단 러셀 Ethan Russell이 찍은 사진을 바탕으로 존 코시 John Kosh가 디자인했다.
멤버의 표정과, 시선과, 배경이 틀릴 뿐, 검은 바탕에 네 사람은 똑같은 크기로 공간을 갖는다.
이 균등분할은 (존과 폴이 나머지 두사람보다 훨씬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네명의 멤버가 동등한 무게와 질감과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것 외에 다른 이유가 있을까?
이것이 비틀즈의 「Let It Be」에 대한 이야기의 전부다.

진짜 할 이야기는, 이 균등분할 디자인은 이후 등장하는 수많은 밴드에게 음악만큼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패러디든, 오마주든, 이미테이션이든, 도적질이든, 그후로도 지금까지 주욱.

그 몇 장을 보자.


Talking Heads 「Remain In Light」(Sire, 1980)

뉴웨이브가 아닌 노웨이브 밴드 토킹헤즈의 디지털라이즈드 이미테이션.
천재 데이빗 번과 세 멤버의 어마어마한 사운드 폭풍.
(밴드는 뉴웨이브에 반항했지만 어쨌든) 뉴웨이브가 오락실의 뿅뿅 소리가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선언한, 대단히 멋진 작품.
다만 토킹헤즈 식의 미니멀리즘에 익숙하지 않다면, 지루하기 짝이 없는 단순한 소절의 반복이라 벽을 향해 집어던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으므로, 넓은 아량으로 들어주어야 할 음반.


들국화 「1집」(동아기획, 1985)

당당하게 커버디자이너의 이름을 써넣은, 그러나 불법복제가 정확할 들국화의 데뷔앨범 커버.
멤버를 흑백으로 처리한 대신 (한송이 더 넣었으면 좋았을 법한) 들국화 세송이가 컬러로 들어갔다.  [여담이지만, 후에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최성원의 사진에 국화가 놓여있는 것을 보면 미래를 예견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음악만큼은 한국에서 롹을 한다는 걸 감안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박수치고 열광해도 좋다. <행진>을 처음 들었을 때 많이 놀랐다. (언제 처음으로 들었는가는 묻지 말 것.) 그리고 <사랑일 뿐이야>의 가사는 아직도 알아듣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한글까지도 영미 롹으로 만들어버리려고 했을까?


Queen <I Want Break Free>(EMI, 1984. single)

스캔하는 도중에, 갑자기 퀸이 생각났다.
유명한 4인조라 혹시나 하고 봤는데, 역시나였다.
「Queen Ⅱ」에서 시도한 다이아몬드형 배치를 꾸준히 사용하긴 했지만, 퀸도 네명의 멤버인지라 균등분할을 이용했다. 이건 「Let It Be」의 오마주일까?
어쨌든 싱글 <I Want Break Free>의 커버는 보다시피 흰색 바탕에 정확한 4등분 분할로 「Let It Be」의 구도를 이어간다. (이 싱글의 실체는 본 적 없으며, 당연히 소유하고 있지 않다.  퀸의 베스트 앨범 부클릿에서 스캔했다)

뭐, 이밖에도 수많은 밴드들이 이 균등분할 디자인을 써먹었다.  지금 이야기한 것은 그야말로 鳥足之血이다.

물론 비틀즈가 오리지널이라고 우길 수는 없다.
정확하게 네 명으로 구성된 4인조 밴드가 있고, 앨범 디자인이 「Let It Be」와 비슷하게 된 앨범을 발표했다고 치자.
왜 비틀즈를 카피했냐고 질문한다면, "비틀즈가 누구야? 들어본 적도 없는 밴드인데? 그 친구들은 한국의 인디 롹밴드인가?"라고 반문해도 특별히 뭐라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4인조이기 때문이다.
4인조 밴드라면 비틀즈의 「Let It Be」를 단 한번도 본 적 없다고 하더라도 한번쯤 이 디자인을 생각했을 것이다.

얼마나 멋진가. 속으로는 자신을 가장 크게 드러내고 싶어도 겉으로는 소외받는 멤버가 단 한명도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완벽한 디자인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도, 역시, 비틀즈는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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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재미있는 글이네요.
    일본에 있는, 잘 모르는 그룹이지만 Youth Anthem이란 4인조 펑크락그룹의 앨범 '이유없는 충동(Impulse without a cause)'의 앨범 자켓도 균등분할 그 자체입니다. 4인조 그룹인 경우 이런 방식을 택하는 것이 멤버간의 갈등을 그나마 최소한으로 막을 수 있는 합리적인 방법이 되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참고로 사진은 http://rockfish.hp.infoseek.co.jp/ 로 가면 볼 수 있습니다.
    2006.03.11 14:16
    • 확실히 밴드 멤버가 네명일 때는 이 커버 디자인이 최고인 것 같아요.
      일본 밴드 사진도 가서 잘 봤어요. 글자 위치만 다르네요.
      얼마전에 일본에서 "비틀즈 앨범 재킷" 관련 책으로도 얼마전에 나온 것 같아요. 흉내낸 작품과 복제한 작품만 담은 책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해내려니 어디인지 잘 모르겠어요. 조만간 한번 찾아보고 똑같이 해볼까봐요.
      2006.03.11 17: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