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커버/스토리 [diary edition]

한때 바다를 좋아했다. 무작정 버스를 타고 강릉으로 떠난 적도 많았다. 이유는 없었다. 그냥. 할일없이 멍하니 앉아있을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좋아했던 것 같다. 그러다 산이 좋아졌다. 산은 무작정 갈 수 없었다. 잠깐 산행이라도 등산화를 준비하고 먹을 것과 온도에 따른 의복도 준비해야 했다. 요즘은 산도 바다도... 갈 일이 없다. 그저 어디로든 움직이고 싶다고 '마음 먹을 뿐'이다.



바다는 여러 모습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일까. 바다의 모습을 앨범 커버로 삼은 밴드가 많다. 그들의 바다는, 각각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밴드의 음악성과 바다를 연관짓고 싶어하는 것 같다. 때로는 거센 파도가 밀려오는 험악함으로, 때로는 영화의 한장면 같은 아련함으로, 때로는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은 즐거움으로 바다를 담고 있다.

오늘은 그렇게 바다를 담은 앨범 커버 스토리다.




엄청난 찬사를 받은 고딕메틀 밴드 아나테마 Anathema가 어느날 갑자기 메틀에서 록으로 방향을 바꾸더니 이제는 완전히 록 밴드같은 사운드로 변해버렸다. 그 성향이 뚜렷하게 드러난 앨범이 바로 「A Fine Day To Exit」(Music For Nations, 2001)다. 전작 「Alternative 4」(1998)에서 어느 정도 변신이 예상되긴 했지만, 이렇게 순식간에 고딕메틀을 버릴 줄은 몰랐다. 하긴, 음악을 바꾸면 잃는 팬과 얻는 팬이 생기고 어느 쪽이 더 많이 증가하는가에 따라 밴드의 생명과 명성은 상승과 추락의 사이에 존재하게 되니, 그런 건 밴드가 감수할 상황이지 내가 고민할 문제가 아니다.
맑은 하늘, 잔잔한 바다, 바닷가에 흩어진 구두와 옷가지들, 그리고 구겨진 맥주 캔과 받을 사람은 보이지 않는 핸드폰, 단란한 가족사진, 오른편에는 (유서라고 생각하기에 딱 좋은) 세 장의 메모... 영화라면 두 시간이라는 러닝타임의 가장 앞부분에 이 장면을 놓는 것이 좋겠다. 왜 그는 이 좋은 날 바닷에서 죽음을 선택했을까? (이런 설명 자체가 소설같다고 생각하겠지만, 커버를 보면 누구나 영화같다고 느낄 것 같다. 이렇게 마음대로 소설 쓰는 것이 당연하게 느낄 정도니...) 뒷면에는 총도 있고, 아직 죽지않은 누군가도 보이는데... 누가 되었건 "이렇게 좋은 날 세상을 떠난 것"은 분명하다.
아나테마가 음악성을 바꿨다고 하더라도 이 앨범에서도 여전히 그들의 특징을 만날 수 있다. 고딕메틀과 핑크 플로이드 Pink Floyd가 만났다, 는 평가를 받은 것처럼 음악적으로는 여전히 탄탄하며 곡의 구성도 장대하니 크게 실망할 음반은 아니다. (밴드가 음악성을 바꿔 '잃은 팬'이 되었다면 완전히 실망할 음반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아나테마의 바다는,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릴만큼 시각적으로 탁월하다. 어떤 영화인지 상상하는 것은 자유.




핑크 플로이드의 바다는 「A Momentary Lapse Of Reason」(Columbia, 1987)에서 찾을 수 있다.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 AMG를 잠깐 살펴보는 중 이 앨범에 붙은 리뷰의 양에 놀랐다... 평점은 다섯 개 만점에 ★★☆☆☆ 별 둘이고, 리뷰는 단 세 줄("핑크 플로이드에서 보여주었던 전형적인 데이빗 길모어 David Gilmour의 기타 연주는 있지만 로저 워터스 Roger Waters가 밴드를 탈퇴하면서 함께 사라진 일관된 비전과 뛰어난 가사는 빠져버린, 이름만 핑크 플로이드인 데이빗 길모어의 솔로 앨범.")이 전부였다. 아예 리뷰가 붙지 않은 것은 봤어도, 리뷰라고 써놓은 것중에 이렇게 짧은 리뷰는 처음 본다. (자료를 조금 더 찾아보니 AMG의 평점은 별 두개가 아니라 한 개 반이었다. 반 개 표시가 안되나보다. 그러나 2017년 3월 6일 현재는 두 개가 맞다.)
커버 디자인은 힙노시스 Hipgnosis로 알려진 스톰 소거슨 Storm Thorgerson의 작업이다. 스톰 소거슨은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니까, 이건 진짜 700개의 철침대를 영국의 한 바닷가에 일일이 세워놓고 찍은 실제 사진이다. 이 장면을 찍기 위해 무려 3주 동안 비가 내리지 않는 맑은 날을 위해 대기했다고 한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스톰 소거슨 인터뷰에서 확인해보길.) 핑크 플로이드의 팬들이 그나마 안심한 것은 앨범 커버를 스톰 소거슨이 담당했다는 점이었다.
이 커버에서는 길게 늘어선 빈 침대와 한 명의 환자, 그리고 뒷면에서 볼 수 있는 한 명의 간호사가 핵심같지만 잡티처럼 보이지만 하늘을 나는 행글라이더와 한구석에 앉아있는 개와, 그리고 침대만큼 광활하게 펼쳐진 백사장과 그보다 훨씬 더 광대한 바다 역시 중요한 요소다. 특별히 엄청난 의미를 가졌다기보다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사진과 디자인을 선보이는 것이 스톰 소거슨의 작품이니 만큼 커버만은 만족스럽다.



Neil Young 「On The Beach」(Reprise, 1974)

닐 영 Neil Young의 앨범 가운데 가장 슬픈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앨범 「On The Beach」(Reprise, 1974) 속 이야기처럼 그의 바다도 우울하다. 닐 영은 이 앨범 속에 담아놓은 어둡고 무거운 이야기들을 묻어두고 싫어한 탓에 LP로 발표한 지 30년이 지나서야 CD로 발매하는 것을 허락했다. (음악만 들으면 이 앨범에 담아놓은 이야기들이 그렇게 어두운 것이었는지 느끼지 못한다. 밝다고 할 수는 않지만 '지독하게' 어둡다고 할 수 없다.)
이 앨범이 슬픈 이유는 그가 한때 사랑했던 것들이 이제는 가슴 아프거나 구역질나는 현실이 되어버렸다는 고백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1971년 첫번째 부인 수전 Susan과 결별한 뒤 만난 영화배우 캐리 스노드그래스 Carrie Snodgress와 평탄하지 않은 결혼 생활, 1973년 약물과다 복용으로 사망한 닐 영의 백밴드 크레이지 호스 Crazy Horse의 기타리스트 대니 휘튼 Danny Whitten(이 사건은 이후 닐 영의 음악에 몇번 더 등장한다), 한때 그 역시 동의했던 히피의 모습이 점점 배부른 돼지처럼 변질되는 것에 신물이 났다. 바로 그런 것들이 이 앨범 속에 그대로 담겨 있기 때문에 앨범은 지독하게 어두웠고, 롤링스톤은 리뷰에서 "최근 10년간 발표된 앨범 가운데 가장 절망적인 앨범"이라고 썼다.
밥 자이더만 Bob Seidermann이 찍은 앨범 커버 사진은 그렇게 어두운 닐 영의 모습을 그대로 그려내고 있다. 바닷가 근처의 행복한 시절을 바닷가에 모두 처박아버린 닐 영의 뒷모습. 물론 그는 바다로 걸어갈 생각은 없다. 그저 등을 돌린 채 그 시절을 잊어비리려는 것이다. 아니면... 파란 하늘과 파란 바다 저편의 그 무엇을 향해 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싶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더 쓰려고 준비해놓았는데, 아무래도 너무 길어서 part 2로 넘겨야겠다.

"바다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part 2"로 바로 가려면 링크를 클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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