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열심히 써내려가는데 너무 길어지는 것 같아서 두번째 파트를 이어서 쓰기로 했다.
의도한 것은 아닌데 올리려고 준비한 커버를 보니 마치 처음부터 그렇게 하려고 했던 것처럼 제대로 파트가 나눠진 것 같다... 말하자면 part 1은 무거운 바다고, part 2는 그림 같은 바다인 셈.
(따로 읽어도 되지만
바다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part 1을 먼저 읽는 편이 조금 낫다. 꽤 집중하고 썼는데, part 2는 쓰다가 중단했더니 생각한 것이 다 날아가버린 것 같다... 사실 긴 글은 아닌데 이미지가 화면을 많이 차지하다 보니 그렇다. 다음에는 자르지 말아야지...)
한국계 미국인
Korean-American 수영 박
Sooyoung Park을 중심으로 결성된 인디 록 밴드 심
Seam의 「Am I Driving You Crazy?」(Touch & Go, 1995)의 바다는 꽤 폭력적이다. 커버에 담긴 바다는 시퍼렇다 못해 시커멓다. 바다가 화면을 꽉 채우는 것은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거대함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일까? 부클릿을 펼치면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을 확인할 수 있지만 앞커버의 바다만 보면 엄청나다. 물론 서핑을 즐기는 경우에도 이런 파도를 볼 수 있겠지만 그 매끄러운 바다와 비교하면 이건 '지나치게' 거칠다.
제프 디바인
Jeff Divine이 찍은 커버 사진은 앨범에서 싱글로 커트한 <Hey Latasha>의 뮤직 비디오와 관련있는 모양이다. 강아지문화예술을 통해 우리나라에 라이선스로 공개된 이 앨범 속 성기완의 라이너노트를 인용하면 "두번째 곡 <Hey Latasha>는 이 앨범에서 싱글로 커트되어 인상적인 뮤직 비디오로도 제작된 노래이다. 푸른 파도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앨범 자켓[sic.]과 걸맞게 뮤직 비디오도 넘실대는 겨울 파도의 묘한 울렁거림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암시적인 비장함을 머금은 서막에서 비롯하는 힘이 코러스 부분의 깊이 있는 분출로 이른다."라고 적고 있다.
묘한 울렁거림이라... 내가 보는 심의 파도는 비장함보다는 불가항력적 폭력이다. 울렁거리기보다는 공포에 가까운... 그 의미야 각자 해석할 일이지만, 어쨌든 심도 바다를 앨범 커버에 담아놓았다.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단어와 박수영이 아니라 수영 박이라고 이름을 쓴 이유는, 괜한 민족적 동질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가십거리는 되겠지만, 한국계 미국인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더 많은 감동을 주는 것은 아니다. 전에 썼던 예예예스 Yeah Yeah Yeahs의 카렌 오의 경우나, 드림 시어터 Dream Theater의 존 명, 린킨 파크 Linkin Park의 조셉 한도 마찬가지다.)2006년 5월 30일에 공개되었으니 앨범이 발표된 지 딱 일주일이 지난 이모코어 밴드 슬리핑
The Sleeping의 두번째 앨범 「Questions And Answers」(Victory, 2006)이다. 여러 리뷰를 보면 슬리핑 역시 최근 이모코어의 경향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셈이다. 말하자면, 기본적으로 이모코어 특유의 분노에 가득찬 사운드와 함께 헤비메틀, 고스롹, 때로는 팝 멜로디를 섞는 그런 하이브리드 말이다. 처음 들었을 때부터 다시 되돌려듣는 지금까지 꼭 "큐어
The Cure의 로버트 스미스
Robert Smith가 이모코어 밴드를 결성한 것 같은" 느낌이다.
슬리핑의 바다는 앨범 전체를 훑어봐도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 같지 않다. 다만 앨범 타이틀에 걸맞게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질문을 하는 인물(과 부클릿의 안쪽에서 질문자를 지명하는 부시를 닮은 모습의 인물)이 단지 넓고 넓은 바닷가에 우스꽝스럽게 브리핑을 하는 모습일 뿐. 이렇게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처리한 인물은 슬리핑의 데뷔 앨범 「Believe What We Tell You」(One Day Savior, 2004)에도 등장하고 있다. 데뷔 앨범 커버와 이 앨범에서 그림을 그린
제레미 아람불로 Jeremy Arambulo는 만화와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면서 슬리핑의 앨범과 싱글 디자인을 담당하고 있다.
슬리핑(과 슬리핑의 앨범 커버 속 바다)에 대해서 "질문있습니까?"
답은 슬리핑이 직접 해줄 겁니다!
한때 잉베이 맘스틴
Yngwie Malmsteen이 빠르냐 임펠리테리
Impellitteri의 리더이자 기타리스트인 크리스 임펠리테리
Chris Impellitteri가 빠르냐를 두고 설왕설래 했던 팬이라면 아마 그 틈새에 끼어있었던 랍 롹
Rob Rock을 만날 수 있었다. 랍 롹은 임펠리테리의 보컬로 10여년을 활동했으니. 그는 임펠리테리를 떠나 여러 프로젝트를 전전하다 2000년부터 자신의 이름을 건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건 2003년에 발표한 두번째 솔로 앨범.
지금까지 본 바다와 사뭇 다른 바다다. 마치 전설 속 신화의 한장면 같다. 높은 절벽 끝에 올라선 인간의 모습은 결연하지만, 넓은 바다와 청명한 하늘, 그리고 바닷가에 우뚝 선 천사상에 비하면 초라해보인다. 게다가 하늘에는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
Alan Parsons Project의 히트곡 제목처럼, 랍 롹의 앨범 타이틀처럼이라고 해도 되겠다 싶은 하늘에 뜬 눈동자를 만날 수 있다.
랍 롹의 이 앨범 커버는 중세의 웅장함과 SF적인 상상력을 결합한 일러스트로 유명한 마크 사소 Marc Sasso가 그렸다.
마크 사소의 홈페이지의 포토폴리오에 이 앨범 커버도 올려놓았는데, 그나마 제일 현실적인 그림이다. 다른 그림은 핵폭발 이후의 지구에 살아남은 듯한 전사들과 머나먼 외계에서 금방 날아온 에일리언들이 꿈틀대는 그림들이 주를 이룬다. 오히려 이 커버는 그의 아트웍에서는 좀 이질적인 요소인 셈이다. 그 이유는 아마도 랍 롹이 크리스천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세번째 솔로 앨범 「Holy Hell」(2005, JVC/Victor)의 앨범 부클릿에서 "This album is dedicated to the glory of god."이라는 문장을 발견할 수 있다.
랍 롹의 파워메틀과 마크 사소의 전형적인 일러스트레이션과 제대로 부합하지 않은 작품이긴 하지만 이 앨범 속 바다는 웅장하다. 마치 새로운 세계가 곧 열릴 것만 같다.
앨범 커버 디자인과 부클릿 속, 그리고 팻보이 슬림
Fatboy Slim이 들려주는 음악 스타일과 기막히게 조화를 이룬 「Palookaville」(Sony, 2004)도 바다를 앨범 커버에 담았다.
노먼 쿡
Norman Cook, 그러니까 팻보이 슬림은 워낙 유명한 일렉트로니카 뮤지션이라 특별한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 그는 이 앨범에서 이전에 들려주었던 음악과 많이 다른 스타일을 선보인다. 말하자면 일렉트로니카 뮤지션이 아니라 마치 밴드 중심의 음악을 하듯 일렉트로닉 악기가 아니라 진짜(!)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팻보이 슬림은 베이스 기타를 연주했다. 이 앨범을 만들기 직전에 블러
Blur의 앨범 「Think Tank」(Virgin, 2003)에 참여한 것이 계기가 되어 이런 앨범을 만들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팻보이 슬림의 이번 앨범은 누가 보더라도 활기찬 바다를 연상시킨다. 수영복을 입지 않은 것을 보면 이 해변이 보통 해변은 아닌 듯하다. 그들은 서핑 보드를 들고 빨갛게 익은 모래밭을 지나 시원한 파랑색 계열의 바다로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다. 부클릿에는 이 사람들이 열기구를 타거나 물놀이 공원에서 놀거나 풀밭, 그리고 섬에서 노는 일러스트를 담고 있다. 그러니까 팻보이 슬림의 이 앨범은 2000년대 히피들처럼 고통과 고민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삶을 그리고 있다. 음악은? 음악도 마찬가지다.
팻보이 슬림의 바다는 좋은 의미의 쾌락이다. 2000년 이후 발표한 팻보이 슬림의 앨범 커버는 라이브든 정규 스튜디오 앨범이든 모두 바다와 바닷가의 사람들을 앨범 커버로 삼고 있다. 바다가 팻보이 슬림에게는 음악의 원천이기라도 한 것처럼.
(<Push And Shove>이 의미하는 것처럼 섹슈얼한 가사와 사운드도 즐거움에 가득찼다. 기특하게도 이 앨범은 대한민국에서는 '청소년 이용불가'다. 하긴, 가사를 보기나 했겠어? 앨범 커버를 보니 좀 이상하다 싶었겠지... 어쨌든 이 노래를 듣다 보면 어느 노래와 상당히 비슷한 느낌이 든다. 사운드 콜라주의 대가 벡 Beck의 2005년 앨범 「Guero」(Universal, 2005) 톱트랙 <E-Pro>는 사운드의 구조와 "나나나~" 코러스는 이 노래의 진행과 유사하다. 뭐, 표절이다 아니다를 논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벡의 앨범에 참여한 비스티 보이스 Beastie Boys와 더스트 브러더스 The Dust Brother가 팻보이 슬림을 '지나치게' 참고한 인상을 주는 것은 분명하다.)
몇 차례 한국을 방문해 공연을 가질 정도로 친숙한 스웨덴의 혼성 아카펠라 그룹인 리얼그룹
The Real Group의 베스트 앨범 커버다. 듣기에 너무 편하고 광고음악계에서도 좋아하는 터라 제목은 몰라도 들어본 노래는 꽤 될 법한 리얼 그룹의 베스트 앨범은 한국에서만 공개된 앨범이다. 이런 저런 설명보다 앨범 홍보를 위해 포장지에 붙여놓은 스티커의 문구를 인용해보자.
"공연장에서 모 여가수가 울어버린 바로 그 리얼그룹의 너무나 기다려왔던 바로[sic.] 베스트 앨범. 전세계에서 한국에만 발매되는 리얼그룹 최초의 히트곡 모음집. 한국 공연과 월드컵 전야제 참가를 기념하는 앨범."
그 여가수는 얼마나 좋았길래 눈물을 흘려야 했을까? 뭐, 너무 웃으면 눈물이 날 수도 있으니 그래서 울었다고 생각하자. 어쨌든 이 앨범 커버는 한국에서만 발매된 앨범. 그런데 말이지... 이 커버는 정말 아니다. 물론 의도는 너무 선명해서 이야기해주지 않아도 쏙쏙 들어온다. 생활에 찌든 당신이 이름모를 해외의 한 해변으로 휴가를 떠났다. 뜨거운 태양이 작열할 때 시원한 그늘을 제공해주는 시원한 음악! 그것이 바로 리얼그룹이다!! 이거 아닌가.
한국에서만 발매되어서 크게 신경쓰지 않았는지는 몰라도, 그동안 공개된 리얼그룹의 앨범 커버와 비교해보면... 이 한국전용 베스트 앨범 커버를 볼 때마다 쑥스러워진다. (솔직히 리얼그룹의 오리지널 앨범 커버 아트도 멋지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올려놓은 커버.
이렇게 해서 괜히 두 개로 나눈 바다를 소재로 한 앨범 커버 이야기는 다 했다. 아직도 더 많은 바다 소재의 앨범 커버가 대기하고 있지만 이쯤 해서 마무리지어야겠다.
사실 이번 커버/스토리의 소재는 막 발표를 앞두고 있는 앨범 두 장의 커버에서 시작했다.
하나는 라디오헤드
Radiohead의 보컬 톰 요크
Thom Yorke의 새로울 것 없는 일렉트로니카 앨범 「The Eraser」(XL, 2006)이고, 또 하나는 이미 해볼대로 해본 기타 빠진 롹밴드 포맷을 대단한 발견이라도 되는 양 선전했던 킨
Keane의 새 앨범 「Under The Iron Sea」(Interscope, 2006)다.
톰 요크는 홍해를 가르는 모세의 모습을 그리고 있고, 킨은 질주하는 파도를 말의 모습으로 은유하고 있다. 두 커버 모두 일러스트로 처리해 일단 커버로 시선을 끄는 것은 성공했다.
이 두 장의 앨범으로 또다른 이야기를 이어갈 수도 있지만, 이번 커버/스토리는 여기에서 끝.
생각날 때마다 추가:
Neil Halstead / Sleeping On Roads (4AD, 2002)
Supreme Majesty / Danger (Massacre,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