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짜 커버/스토리

표지판

2006. 3. 14. 04:19
아직 운전면허가 없는 내게 도로표지판은 굳이 외울 필요 없지만, 그래도 몇몇 표지판은 너무나 자주 본 탓에 익숙하다. 강원도로 가는 길에 자주 보이는 표지판은 낙석주의와 추락주의 또는 유해물질을 가득 실은 트럭의 뒤꽁무니에 달린 위험+해골표시.

내가 기억하는 표지판 중에 제일 특이했던 것은, 하늘공원 올라가는 길에 있던 개구리 출몰지역 표지판이었다. (두꺼비 출몰지역이었던 것 같기도 한데, 남들 다 찍는 곳이라는 생각에 그냥 웃고 지나간 기억이 난다. 두꺼비든 개구리든, 아무튼 그곳에서 출몰한다고 알려준다. 검색의 생활화를 주장하지만, 이 시간에 검색하는 것도 귀찮다.)
가장 보기 싫은 표지판은 "위험 Danger"이라고 써놓은 표지판이다.
위험... 위험하니 조심해라의 의미보다 죽기 싫으면 접근하지 말라는 위협에 더 가까울 게다. 접근금지. 하지 말라는 것은 더 하고 싶어질 때가 있어서 가끔 무시하고 싶지만, 그래도 하지 말라면 안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에, 익숙하게, 포기한다.

앨범 커버로 표지판을 세워둔 작품 가운데 제일 많이 팔린 것은 아마 팻 매스니 Pat Matheny의 「Offramp」(ECM, 1981)이지 않을까 싶다. (표지판이 아니라 도로 바닥에 써놓은 운전 안내라 표지판으로 보기 힘들겠지만, 포괄적으로 표지판이란 단어를 쓴 것이니 이해해주길.)  재즈가 도대체 뭔가 싶었을 때 예음사였던가, 아마 그랬을 것이다, 거기서 발매한 LP를 샀던 기억이 난다. 그때 칙 코리아 Chick Corea도 사고.
그런데, 그 잘 팔린 팻 메스니의 음악이 눈곱만치도 생각나지 않는다. 누군 교향곡도 다 외우는 판인데, 단 한소절도 생각나지 않는 것을 보면, 분명히 한번 듣고 내 취향이 아니라며 옆으로 치워놨을 게다.
그 이후 우연히 내 손에 들어온 경우를 제외하면 재즈라는 이름이 붙은 음반에는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왜냐하면 난 연주음반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으니까.

그래서, 오늘은 내가 좋아하고 기억하는 표지판 커버 두 장을 이야기하기로 한다.
먼저 펄 잼 Pearl Jam의 앨범부터.

표지판이라는 것은 글자 대신 기호로 무언가를 이야기해준다. 그렇지만 펄 잼의 「Yield」(Sony, 1998)는 누가, 왜, 양보해야 하는지 정확한 의미를 모르겠다. 이때 펄 잼은 조금 흔들리던 시기였고, 예전과 비교하면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도 못했다.
얼터너티브 밴드들은 등장 초기의 활력을 잃어버렸고, 무엇에 대한 '대안'인지, 무엇을 위한 '대안'인지 자신들도 헷갈리고 있었으므로. 너바나 Nirvana는 커트 코베인의 자살로 오래전에 밴드는 해체되었고, 사운드가든 Soundgarden도 활동을 중지했다. 앨리스 인 체인스 Alice In Chains도 더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시애틀에서 활활 타오른 불길은 이 무렵 거의 꺼져가고 있었다.
누구에게 양보를 하라는 메시지인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이 커버는 더 우울하다. 인적도 없는 저 끝없는 길에서 단 한대의 차도 보이지 않는데 누구를 위해, 누가 양보를 해야 하는 것일까. 그 묘한 울림 때문에 <Given To Fly> 단 한곡을 기억하고 있지만, 애착이 가는 음반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데이빗 커버데일 David Coverdale과 지미 페이지 Jimmy Page의 프로젝트 앨범 「Coverdale.Page」(Geffen, 1993)이다.

이 앨범 커버는 솔직히 너무 선명한 의미를 달고 있어서 촌스러운 느낌까지 든다.
따로 가던 두사람이 모여서 한 방향으로 힘을 합쳐서 이 앨범을 발표한다, 뭐 그런 의미 아닌가.
사실 이때 지미 페이지는 예전의 명성에 먹칠을 하진 않았지만, 지켜보는 것으로도 불안했던 시기다. 제플린 해산 이후 자신의 솔로 프로젝트와 밴드 활동도 그다지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 (상대적으로 로버트 플랜트 Robert Plant는 그럭저럭 성공적인 솔로 활동을 하고 있었고.) 그런 의미에서 이 앨범은 다행이었다. 비틀거리던 지미 페이지는 예전의 감각을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었고, 이듬해 로버트 플랜트와 함께 프로젝트 앨범 「No Quarter: Jimmy Page & Robert Plant Unledded」(Phonogram, 1994)를 발표하면서 레드 제플린 시절의 활기를 되찾았다.

무엇을 이야기하려는 건지 확실한 표지판 커버라면 그 이야기를 들어주면 되고, 무엇을 이야기하려는지 모르겠으면 무엇을 암시하고 있는지 찾아보는 것, 그게 바로 표지판 커버가 가진 묘미일 것이다.

(발행까지 해버렸는데, 올라간 글이 엉망이 되고 뒷 문단이 날아가는 것을 경험했더니, 마지막 결론이 엉성해졌다. 나중에 수정해야겠다. 지금은 귀찮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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