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 뒤샹 Marcel Duchamp의 L.H.O.O.Q와 르네 마그리트 Rene Magritte의 Ceci n'est pas une pipe(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는 아주 유명한 작품 제목이자 철학에서도 간간이 인용된다. 특히 마그리트의 경우는 미셸 푸코 Michel Foucault가 같은 제목의 책으로 특별한 분석까지 시도했으니 익숙할 듯.
오늘은 뜨거운 엉덩이 LHOOQ에 관한 이야기. 마르셀 뒤샹은 모나리자의 얼굴에 아이들 낙서같은 수염을 그려놓고 L.H.O.O.Q라고 이름붙였다. 프랑스어에 익숙하지 않다면 아마 저 작품은 그대로 엘에이치오오큐일 테지만 코맹맹이 같은 발음의 프랑스어로 해보면 "Elle a chaud au cui"와 비슷한 발음이 나온다. 번역하면 "그 여자는 엉덩이에 뜨거움을 가졌다"이고 약간 의역을 거치면 "그 여자의 엉덩이는 뜨겁다" 정도가 될 것이다.
(프랑스어를 발음하고 사전을 찾아본 지 너무 오래되어서 검색하다가 그/그녀에 대한 오랜 논쟁의 흔적을 발견했다. 한미혜님의 글을 읽어보면 그 논쟁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다. 사실 유럽의 언어에는 남성/여성은 물론이고 심지어 중성까지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He와 She 외에 특별히 성이 없으니 그쪽에서는 자랑스럽게 "우리 언어는 성차별을 하지 않는다"고 내세울 수 있는 빌미를 준다. 하하. 잘난 미국... 왜 그와 그녀에 성차별 이야기가 지금도 등장하는지 대충 설명이 될 듯 하다.
그리고 또 하나는 그/그녀는 우리나라 말이 아니라 외국어라는 논쟁이다. 이걸 파고 들어가보면 우리나라 문법은 일본의 영향도 영향이지만 1920년대 외국물을 먹은 소설가와 학자의 잘난척으로 귀결된다. 외국물 먹으며 배웠다는 것들이 우리 것을 살리지 않고 멋부리느라 외국어를 그대로 가져다 쓰는 바람에, 지금까지 우리나라 언어가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걸 극복하려면 제대로 된 대안이 나와야 하는데, 아무도 이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와 '그녀'가 시작부터 잘못된 단어였다면 무엇으로 바꿔야 하는지 제시해주어야만 한다. 아직도 그것 하나 통일 시키지 못하고 있으니, '그'와 '그녀'는 어쩔 수 없이 계속 쓰고 있는 중이다. 어쨌든 she의 유일한 대안은 '그'가 절대 아니다. '그'라고 쓴다고 해서 성차별 운운하는 것은 미국인들의 그 잘난 영어우월주의일 뿐이다.
본 내용하고 전혀 상관없는 이 긴 주석은, 이 글에서 "그 여자"로 쓰게 된 이유에 대한 해명일 뿐이다.)
마르셀 뒤샹이 그 그림을 통해 무엇을 의도하고자 했는지는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그림에 대한 해석은 다른 분, 또는 다음 기회로 넘기고 오늘은 LHOOQ라는 밴드의 커버스토리다.
Bjork (※ 뷰욕, 비욕, 비요크 등으로 쓰고 있지만 일단 이 공간에서는 원음에 제일 가까운 비옐크로 쓴다. 물론 공적으로 쓸 때는 비요크라고 쓴다)의 나라 아이슬란드. 비옐크의 밴드 슈거큐브스 Sugarcubes가 1980년대 말에 성공을 거둔 것을 뺀다면 영미권에 거의 알려진 밴드가 없는 나라. LHOOQ는 바로 그 조용한 나라 아이슬란드 출신 밴드다. 독특한 음악을 지향하면서 코어 팬을 가진 영국의 레이블 Echo를 통해 발표한 그들의 데뷔작은 당시 브리스톨 사운드라는 말과 동의어로 사용하던 트립합 Trip Hop을 사운드의 기본으로 활동한 밴드. 그렇지만 이들의 음악은 성공하지 못하는데 '2%보다 조금 더' 부족한 무엇 때문이다. (그건 듣는 입장마다 다 다르지만 '2%보다 조금 더' 부족하다는 것은 공통적이다.)
마르셀 뒤샹의 그림 제목을 그대로 가져다 썼지만, 그 여자의 엉덩이는 뜨겁지 않고 오히려 차갑다. 아이슬란드의 풍경을 배경으로 했기 때문에 더욱 그런 느낌이 드는 것 같다. 물론 이 앨범을 발표할 당시 19세인 사라 Sara Gudmundsdottir가 조금 추운 듯한 표정으로 옷을 벗고 있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 아주 따뜻하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커버 사진을 찍은 사람은 1970년생으로 영국에서 활동하는 사진작가 마이크 다이버 Mike Diver다. 그의 오피셜 웹에 놀러갔더니 뮤지션에 대한 사진은 없는 것 같고 광고사진이 많다. 아무래도 그의 감각은 최신 광고 경향과 맞아떨어지는 모양이다. 재미있는 것은 LHOOQ의 앨범 크레딧에 "photography and manipulation by Mike Diver"라고 적어놓았다는 점이다. 바로 이것이 마이크 다이버의 사진세계를 설명하는 키워드다. 즉, 조금도 변형을 가하지 않은 원본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오리지널을 의도적으로 변형하는 것을 즐겨한다는 말이다. 카타토니아 Catatonia의 앨범 「Equally Cursed & Blessed」(Atlantic, 2000)에서도 그의 크레딧은 Image Manipulation이다. 엄청난 변형을 가하는 것이 아니라 원본에 자신의 상상속 이미지를 집어넣는 방식을 즐겨 사용한다.
"나는 고전적인 방식으로 진행하는 사진에도 열정이 있지만 컴퓨터를 통한 디지털 이미지 변형에도 관심이 많다. 그런 작업을 10년 넘게 계속 해오고 있다. 내 사진작업은 영화와 그림과 문학에서 영감을 얻는 경우가 많다." - Mike Diver
이게 오리지널 아트웍이고 부클릿을 펼치면 이 그림이 나타난다. LHOOQ의 음반에서 그의 사진 철학은 그대로 드러난다. 처음 LHOOQ의 커버스토리를 써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나비 때문이었다. (봄도 오고 했으니, 나비를 커버에 담은 것들을 골라보는 중이었다.) 뒷 배경은 영화의 블루스크린처럼 이미지 조작을 통해 집어넣고 거기에 아름다운 색의 나비를 집어넣었다. 어디론가 날아가는 나비, 광활한 풍경, 그리고 각자 시선을 따로 두고 있는 멤버들의 모습이 어울려 이 밴드의 묘한 스타일을 함께 묘사해주는 그의 작업. 위에서 추워보인다는 말을 했지만, 조금 더 과장하면, 밴드의 은근한 열기가 느껴진다.
LHOOQ는 단 한장의 싱글과 한장의 앨범을 남기고 사라졌지만, 그리고 2% 정도 부족한 느낌이지만, 가끔 들을 때는 멋진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물론 매일 듣기에는 조금 단순하다. 그래도 데이빗 보위 David Bowie가 아이슬란드 투어에 오프닝으로 세울 밴드로 지목했으니, 아주 형편없는 밴드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