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짜 커버/스토리

화장실 전구가 나간 지 6개월 쯤 되는 것 같다.
처음에는 반짝반짝 정신을 못차리더니 어느 순간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
 
전구를 바로 갈아끼웠다면 이런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겠지만... 아직도 화장실은 어둡다.
밤에 화장실에서 책을 읽을 수 없다는 게 불편하긴 하지만 큰 불편을 느끼지 못해 그대로 두고 있다.
사실 문을 닫을 일이 없다...
문이 닫힌 곳이 하나라도 있으면 고양이들이 아주 서럽게 울기 때문이다.
결국... 고양이를 위해서라는 말도 안되는 이유를 붙인다.




지난 그래미 시상식 두 개 부문 후보에 올랐던 프레이 The Fray의 데뷔앨범 「How To Save A Life」(Epic, 2005) 커버.

자세히 볼 것도 없이 슬쩍 보기만 해도 깨진 전구라는 걸 알 수 있는데, 요즘 내 시신경에 문제가 많은가보다. 작년 8월 쯤 이 앨범을 처음 봤을 때 나무인 줄 알았다. (얼마전까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심각하다. 앨범 타이틀 때문이었을까? "구원을 얻는 법"... 크리스천 롹 christian rock을 하는 밴드답게 타이틀을 아주 적절하게 붙였다.
2007년에 커버를 바꿔 재발매되었다. 아웃박스를 벗겨내면 원래 커버가 나오긴 한다.

아트웍을 담당한 인물은 네이선 존슨 Nathan Johnson이라고 적혀 있는데... 구글로 검색해봐도 이상한 정보만 나온다. 추가 정보를 얻는 것은 실패했다.
그러자 전구가 깨졌다는 사실과 필라멘트가 끊어졌다는 게 더 확실히 들어온다.
단절...




쉽게 깨지는 전구의 특성 때문에 앨범 커버 속 전구는 항상 위험하다.
세번째 앨범을 발표한 킹스 오브 리온 Kings Of Leon의 「Because Of The Times」(RCA, 2007)의 커버 속 전구도 파열의 그 순간을 잡아냈다.
필라멘트는 아직 끊어지지 않고 빛을 내고 있지만 이미 깨져버린 탓에 폐기해야 한다.
세상의 빛을 밝히는 전구는 이처럼 연약한가 보다.

이글스 같은 서던롹과 펑크, 그리고 인디롹 사운드가 뒤섞여 희한한 음악으로 재편되는 킹스 오브 리온의 앨범은 들을 때마다 항상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커버의 강렬한 이미지와 함께 밴드의 음악이 예전보다 훨씬 더 좋게 들린다.
파열...

Kings Of Leon / Because Of The Times [UK cover]

여기서 잠깐!! 

「Because Of The Times」의 앨범 커버는 영국과 미국이 다르다.
전구의 모습만 크게 담은 것이 미국 버전이자 LP 버전이고, 왼쪽 앨범처럼 두개골 엑스레이 이미지까지 담은 커버는 영국 버전이다.
어쨌든 앨범 커버의 느낌과 인상으로만 평한다면 미국 커버에 더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밴드의 음악이 앨범 커버 이미지만큼 위험하지는 않지만 첫 인상은 훨씬 강렬하기 때문.
영국 버전의 전구는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 끼워넣은 장식 같아서 와닿지 않는다.

커버 사진은 마이크 켐프 Mike Kemp가 촬영했는데, 이 사람에 대한 정보도 쉽게 찾기 힘들다. 그의 다른 작품을 찾아보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통과다.


Electric Light Orchestra / Electric Light Orchestra (1971)Electric Light Orchestra / ELO 2 (1973)

<Midnight Blue>나 <Ticket To The Moon> 같은 한국형 발라드로 꽤 많은 인기를 얻었던 영국밴드 일렉트릭 라이트 오케스트라 Electric Light Orchestra의 셀프 타이틀 데뷔 앨범 「Electric Light Orchestra」(Harvest, 1971)와 두번째 앨범 「ELO 2」(Harvest, 1973)는 전구 이미지를 유지시켜보려 노력했다.

Electric Light Orchestra / A New World Record (1976)

그 의도는 데뷔 앨범 타이틀에서 'Light'라는 단어를 강조한 것으로 알 수 있다.
"재즈와 클래식에 영향을 받은 자유로운 형태의 음악"을 지향한다는 것이 밴드의 출사표였지만, 커버 이미지에서는 밴드 이름을 기억할 수 있게 'Light = 전구'라는 등식을 만들었던 것. 사실 전구 이미지를 강조하지 않았더라도 밴드는 로이 우드 Roy Wood 주도로 결성했기 때문에 이름을 알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로이 우드는 곧 밴드를 떠나버렸고 이후 제프 린 Jeff Lynne이 주도권을 잡으면서 그의 음악성향을 따라 밴드는 사운드를 점차 바꿔나갔다.
제프 린의 음악 스타일 때문은 아니었지만 초기 앨범에서 전구를 내세웠던 밴드는 1976년에 공개한 앨범 「A New World Record」(Jet, 1976)부터 새로운 로고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 로고는 ELO를 기억하게 하는 중요한 매개체가 되고 있다. 처음에는 단순한 로고였겠지만 점차 우주선으로 변형되어 최근 공개된 베스트 앨범까지 이 로고를 사용하고 있다.

일렉트릭 라이브 오케스트라의 전구는 우주선의 스케일에 밀린 탓인지 다시 등장하지 못했다.




독일의 프로그레시브 롹 밴드 트리움비라트 Triumvirat의 앨범 「Spartacus」(Capitol, 1975)의 커버는 강렬한 이미지를 담고 있다.
이 앨범은 로마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켰다 실패한 노예 검투사 스파르타쿠스의 이야기를 그린 컨셉트 앨범이지만, 앨범 커버는 이야기와 상관없이 전구 속에 들어가 필라멘트를 붙잡고 있는 쥐를 그렸다. 처음 이 앨범을 만났을 때 와!! 하는 의성어를 냈던 것을 기억한다. 쥐의 이미지가 달라보였고, 전구 속에 들어간 것도 달라보였다. 커버아트가 이런 거라는 인상을 이 무렵 어렴풋하게 느꼈던 것 같다.

사실 이 밴드의 커버 아트에서 핵심은 전구가 아니라 쥐다.
「Illusions On A Double Dimple」(Capitol, 1974)과 「Spartacus」(Capitol, 1975), 그리고 「Old Loves Die Hard」(Capitol, 1976)로 이어지는 세 장의 앨범이 모두 쥐를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

*          *         *

휴... 깨진 전구에서 시작해 예술적인 커버로 넘어오니, 그나마 위안이 된다.

이상은은 "샴푸를 사러 가"야겠다고 결심했지만
난 전구를 사러 가야겠다.
불 꺼진 화장실이 불편하진 않지만 새 마음 새 기분으로.
우선, 처리할 일부터 처리하고...



[추가]

Onslaught / In Search Of Sanity

clotho님의 댓글을 보고 바로 추가합니다^^

온슬로트 Onslaught는 스래쉬 메틀 성향의 영국 밴드라고 하네요. 1989년에 발표한 두번째 앨범 「In Search Of Sanity」(London, 1989)입니다. 1993년에 해산했다 2005년에 재결성했고, 2007년에 재결성 이후 첫 앨범 「Killing Peace」(Candlelight, 2007)를 딱 한달 전인 5월 3일에 발표했습니다.
chlotho님도 원본을 확인해야 할 필요를 느꼈을 정도로 지금은 재발매 버전의 커버는 많이 어둡습니다. 그 이유는 이 앨범을 처음으로 발표한 런던 레이블이 폴리그램 PolyGram 산하 레이블이었다가 폴리그램도 유니버설뮤직그룹에 합병되면서 오리지널로 재발매를 하지 않았고 2006년에 이 앨범이 다른 레이블에서 재발매되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재발매 레이블은 Blackend라고 하는데, 혹시 계약기간이 끝나 소유권을 가져온 밴드가 직접 설립한 레이블은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봅니다.
디자이너의 이름은 찾지 못했는데... 묘한 분위기입니다. 영화 '로즈'의 엔드 크레딧이 올라갈 때 흔들거리는 전구 같군요^^




sonic님의 댓글로 추가하는 커버입니다.

롹 밴드 퀸스 오브 더 스톤 에이지 Queens Of The Stone Age의 새 앨범 「Era Vulgaris」(Interscope, 2007)도 전구 이미지였군요^^
갑자기 등장한 이 커버 때문에 세시간이 넘게 열심히 서핑을 했습니다. 평소에는 가지도 않던 아티스트 오피셜 웹은 물론이고 포럼과 유튜브, 그리고 구글 등등을 배회하며 정보를 수집했네요.
그 결과 이 앨범 커버 디자인은 2002년 미국 브룩클린에 설립한 디자인 회사 모닝 브레스 인코포레이티드 Morning Breath Inc.가 담당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아카이브와 작업 샘플을 일일이 확인해봤더니 꽤 많은 음반 디자인 작업에도 참여했네요. 에미넴 Eminem이나 카니예 웨스트 Kanye West, 제이 지 Jay-Z 처럼 유난히 힙합 아티스트의 앨범 작업을 많이 했는데 생각해보니 모두 퀸스 오브 더 스톤 에이지의 앨범 배급사 인터스코프 Interscope와 관련있는 아티스트였습니다. 둘이 서로 중요한 파트너였군요.
앨범 커버를 보면 해적전구와 깨진전구가 등장하는데, 포럼에서 본 앨범 발매광고 이미지는 '캐리비안의 해적'을 모방하고 있습니다. 앨범 커버에서도 그 분위기를 느꼈을 겁니다. 퀸스 오브 더 스톤 에이지는 홈페이지에서 새 앨범 수록곡 <Sick Sick Sick>을 홍보하면서 이 캐릭터들을 등장시켰는데, 알고보니 주인공은 해적전구가 아니라 깨진전구였네요^^



베리, 로빈, 모리스 깁 형제가 5인밴드로 남아있으면서 포크 팝을 들려주던 비지스 Bee Gees의 세번째 앨범 「Idea」(Ploydor, 1968)도 전구커버였군요.
데뷔 앨범 커버를 만들어주었던 클라우스 부어만 Klaus Voorman은 세번째 앨범 커버도 제작했는데, 이 커버는 아닙니다. 클라우스 부어만의 커버는 Atco 레이블을 통해 미국과 일본,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에 공급된 커버에 들어간 것이죠. (클라우스 부어만이 누구냐고요? 비틀즈 The Beatles의 앨범 커버 「Revolver」(Parlophone, 1966)의 앨범 커버로 유명하죠. 베이시스트이기도 하고요.)
이 전구 커버는 유럽 커버입니다. 클라우스 부어만 커버의 앨범에는 인레이 디자인으로 사용했습니다. 아, LP를 본 적이 없어서 확인할 수는 없고 CD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정말 깨진 전구도 다시봐야겠네요.
핑크 플로이드 Pink Floyd의 앨범 「Delicate Sound Of Thunder」(Columbia, 1988)은 가장 많은 전구가 등장하는데, 이걸 빼먹을 뻔 했네요. 네. 맞습니다. 스톰 소거슨 Storm Thorgerson이죠. 그의 작품이라면... 음악이 아무리 별로라도 일단 감동입니다. 이런 건 정말 LP로 봐야하는데^^


Sonar 「Black Light」(Cuneiform Records,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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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댓글입니다
    2007.06.03 15:55
  2. 최근의 밴드들 중에서 킹스 옵 리온은 정말 들을만한 팀이였죠. 위의 앨범은 아직 안 들어봤는데 괜찮으리란 예상이 들어요. 서던롹 분위기가 나서인가, 사운드는 조금 다르지만 들을때마다 블랙 크라우스를 연상시켰거든요.

    전구하니깐 생각이 나는데, 온슬러트(Onslaught)라는 스래쉬 밴드가 냈던 앨범 중에 전구가 그려져 있는게 있었어요. 찾아보니 In Search of Sanity 라는 앨범인데 전구가 들어있는 것은 맞지만 제가 기억하고 있던 그림하고는 약간 다르더군요. 본가에 가면 LP로 가지고 있긴 한데 지금은 확인할 길이 없네요.
    2007.06.03 22:21
    • 이번 앨범은 예전 두 작품보다 훨씬 느낌이 좋아요.
      올해의 앨범 열장을 꼽는다면 들어갈 수도 있을 정도로^^

      Onslaught의 앨범 커버는 찾아봤는데, 두가지가 있는 모양이에요. 나중에 나온 것이 좀 흐릿하게 처리된 모양이고 1989년 London 레이블 버전은 또렷하네요^^ 감사합니다. 추가할게요~
      2007.06.03 22:39
  3. 저역시 시신경 이상 ㅎㅎ 더 프레이 앨범 커버가 전구인 줄 몰랐는뎅.
    예리하세요~ ^^

    아, 저도 하나 찾았어요. 조금 있으면 발매될 퀸스 오브 더 스톤 에이지 신보도 전구 아트웍이네요..
    http://ec1.images-amazon.com/images/I/517HpPUIsxL._AA240_.jpg
    예쁘죠? ㅎㅎ
    2007.06.04 13:31
    • 한참 뒤에 알게 되니까 어찌나 허무하던지.. 결국 전구만 찾아내서 이렇게 글 하나 만들었네요^^
      퀸스 오브 더 스톤 에이지는 무려 세시간을 들여 추가했어요^^ 고마워요~
      2007.06.04 15:41
  4. 근데 퀸스 오브 더 스톤에이지 새 앨범 자켓에 저 LP자국은 정말... 압권이군요.... 혹시 인쇄상태 불량이라고 항의 들어오지 않을까요? ㅋㅋㅋ 빽판의 전성기를 경험하지 못하고 결국 청계천에서 중고로 500원 -1000원에 산 흑백 빽판들에 아로새겨진 저 마모 자국이 갑자기 그리워지네요...ㅋ
    2007.06.04 17:51
    • 그 옆에 MONO도 있잖아요^^
      턴테이블을 고쳐야 하는데 언제 고칠지도 모르겠어요.
      나중에 한번 차로 실어다준다고 하긴 했는데...
      2007.06.04 22:59
  5. 헉... 고생하시라고 띡 던지고 간 건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
    그저 전구 앨범 중에서 가장 새삥인 것 같아서...
    ^^;; 어쨌든 여전히 퀸스 오브 더 스톤 에이지 앨범 참 좋네요
    그나저나 다들 어찌나 예리하신지 ^^;; 저는 뻔히 보고도 엘피 자국을 못 느꼈는데 윗분께서 말씀하시니 이거 꽤 괜찮은 디자인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듭니다
    늘 여기서 한 수 배우고 갑니다 ㅎㅎ
    2007.06.05 00:23
    • ^^ 커버/스토리 쓰면서 즐거운 건 모르는 걸 추가할 때거든요.
      세시간 들여서 시간 아까워~ 가 아니라 세시간 들여서 추가해서 뿌듯합니다 <-- 이거죠.
      다음에도 생각나면 언제든지 이야기해줘요~
      2007.06.05 00: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