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를 해야할지 몰라 혼란스러울 때는 내 마음보다 더 정신 없이 널부러진 CD들을 정리한다.
정리한다고 하는데 항상 정리되지 않고 흐트러지는 이유는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여기 있던 것이 저기로 가는 것 뿐이어서다.
제자리가 부족하다...
아... 정신없어.
쉬.고.싶.어!!
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
오늘처럼,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한 CD들이 약속한 듯 이런 모습을 하고 있을 때는...
풀잎처럼 누워버렸다.
이 커버들을 보다 기억 나는 몇몇 앨범 커버도 같이 꺼냈다.
웅산 「The Blues」(DreamBeat/EMI, 2005)
세번째 앨범 「Yesterday」(EMI, 2007)는 재즈 보컬을 앞세웠던 웅산이 재즈를 벗어나서도 충분히 감동적인 목소리를 들려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앨범.
혼자 생각한 것이지만, 웅산이 재즈 보컬을 앞세운 데뷔 앨범은 그저 그랬고, 갑자기 블루스로 방향을 바꾼 두번째 앨범 「The Blues」는 명혜원의 곡을 약간 어설프게 흉내낸 <청량리 블루스>를 앞세워 블루지한 연주와 보컬이 멋지게 어울렸다. (어설프게 흉내낼 수밖에 없는 게, 명혜원 같은 아마추어 보컬의 곡을 웅산 같은 프로페셔널이 커버했을 때 어느 장단에 맞춰 진행해야 할지 갈피를 잡기 어렵기 때문이다.)
여기에 비해 세번째 앨범 「Yesterday」는 추천작이다. 그동안 붙어 있던 재즈 꼬리표를 아예 떼어내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확실히 깊이도 느껴지면서 듣기도 부담스럽지 않다. 이 세번째 앨범과 비교하기 위해 꺼냈던 두번째 앨범... 그런데 이 때 폼은 좀 어색하다.
Jane Monheit 「Taking A Chance On Love」(Sony, 2004)
데뷔 때부터 인기를 얻었지만, '순수' 재즈 평단에서는 지나치게 팝적이라며 약간 미뤄두었다는 제인 몬하이트
Jane Monheit. 특히 일본에서 인기를 얻은 제인은 이후 메이저 레이블을 오가며 가치를 높였다. 이 앨범을 발표한 소니를 떠나 지금은 유니버설을 통해 앨범을 발표한다.
난 팝적인 게 좋아.
Janet Jackson 「20 Y.O.」(EMI, 2006)
워낙 30년 이상 된 아티스트들이 많아서 20년이라니까 그리 많은 세월이 지난 것 같지 않은데, 생각해보면 20년은 매우 길다.
데뷔한 지 20년이 지났다고 꼭 이야기해주고 싶었는지 앨범 타이틀은 20 Years Old. 제대로 풀어쓰지 않은 이유는, '올드'가 걸렸던 모양이다.
기억나는 곡이 없는데, 그래도 화사하게 웃어서 좋다.
여기서 잠깐!
자넷 잭슨
Janet Jackson은 바로 이전 앨범 「All For You」(EMI, 2003)에서도 누웠다.
스쳐가면서 보면, 이 앨범도 좋아보인다.
하지만 제대로 "풀잎처럼 눕지 않아서" 이 앨범은 자넷 잭슨 앨범 역사상 제대로 망했다. (망했다는 표현은 상업적인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내 개인적인 감동의 문제임을 미리미리 밝혀둠)
그래서였는지, 이 앨범에 이어 발표한 「20 Y.O.」에서는 제대로 누웠던 모양이다. 역시 어설프면 될 일도 안되는 게다.
누울 생각이 없다면, 아예 '팝 역사상 최고 화제 사진으로 길이길이 기억될 1993년 앨범 「Janet」(Virgin, 1993)처럼 찍는 게 나았을 것이다. 그것도 두번 하면... 지친다. 수퍼볼 노출 사건이 어느 앨범 시절 일이었지? (사실 「Janet」의 앨범 커버만 보면 그리 매력적이지는 않다. 전체를 봐야 진짜 매력이 드러난다.)
항상 있었던 일이긴 하지만 폴 매카트니
Paul McCartney의 아내 린다 매카트니
Linda McCartney의 사망 이후 유난히 자주 접하게 된 팝 아티스트의 乳房癌
breast cancer 선고.
아나스타샤
Anastacia도 그중 한 명이다. 이 글을 쓰면서 떠오른 팝 아티스트는 올리비아 뉴튼 존
Olivia Newton-John과 카일리 미노그
Kylie Minogue 정도였다.
2005년에 발표한 베스트 앨범 「Pieces Of A Dream」(Epic, 2005)는 2003년에 외부에 공개된 암 발병 사실 이후 발표된 앨범이다. 이 무렵, 아나스타샤는 투병 중이었고, 상태는 꽤 호전되었다. 그 느낌을 살리기 위해 만든 커버였을까?
투병중이라는 사실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아나스타샤는 편해 보인다.
풀잎처럼 누운 앨범 커버를 떠올리다 조건반사처럼 생각난 마돈나
Madonna의 앨범 커버.
1994년에 발표한 「Bedtime Stories」(Maverick, 1994)의 커버는 제목과, 노래와, 아티스트와, 아티스트의 실생활이 '제대로' 뒤엉킨 앨범.
처음에는 1984년의 「Like A Virgin」(Sire, 1984)을 꺼냈지만, "풀잎처럼 누운" 커버로는 오히려 이게 더 낫다고 생각해서 교체했다.
한번 더 여기서 잠깐!!
그런데, 왜 처음에는 「Like A Virgin」이 낫다고 생각했을까?
그건 아마도 왼쪽의 커버 때문일 것이다.
위의 커버와 비교해보자.
↑위의 커버는 말 그대로 '관능적이고 뇌쇄적이다'. 그런데, ←왼편의 커버는 뭔가 밋밋해보인다. 위의 커버가 미국 본토 버전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한국 라이선스 앨범 커버는 사진을 180도 뒤집은 왼쪽 버전이다.
마치 잘못 들어간 사진 같다. 시계방향으로 90도 회전시켜봤더니, 차라리 그게 더 나아보인다.
아마도 미국 본토 사람들이야 늘 보던 것이니 오리지널로 가고, 해외에서는 정신적인 충격의 강도를 낮추기 위해 좀더 순한 느낌이 나게 만든 것은 아닐까 싶다. 이 무렵 마돈나는, 음악보다는 음악 외적인 사건(!)들이 폭주하던 시기였으니.
조만간 공개될 예정인 맨디 무어
Mandy Moore의 새 앨범 커버.
놀랍게도 맨디 무어가 싱어송라이터가 되어 돌아왔다. 켈리 클락슨
Kelly Clarkson이 대장의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의 음악성을 고집해 앨범을 발표하더니, 맨디 무어는 레이블까지 옮기면서 싱어송라이터로 변신했다.
나쁘지는 않지만, 아직은 약하다. 다음 앨범 쯤에서는 가장 평범한 팝 싱어송라이터의 앨범에는 근접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쨌든, 이 앨범도 풀잎처럼 누웠다.
불편해보이지만, 방안을 장악한 햇볕 때문에 마냥 함께 누워있고 싶어진다.
마지막으로 여기서 잠깐!!맨디 무어의 표정과 의상과 불편해보이는 소파(맞는지 확신 못함... 헷갈린다. 정식 앨범이 나오면 그때 확인해봐야지.)를 보니 불현듯 데이빗 보위
David Bowie의 앨범 「The Man Who Sold The World」(EMI, 1970)가 생각난다.
조만간 커버/스토리로 다루겠다고 이야기한 지 1년쯤 지난 것 같은 포토그래퍼 키프
Keef의 작품이다. 그는 이 커버 사진을 찍고 디자인도 담당했다.
맨디 무어와 데이빗 보위의 커버에서 비슷한 것도 없는데 비슷하다고 생각한 이유는, 드레스 때문인 것 같다. 맨디 무어의 드레스나 데이빗 보위의 남자용 드레스나,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느낌을 준다. 사실 이때부터 데이빗 보위는 뭔가 특별한 인물로 평가받기 시작(queer?)했고, 맨디 무어는 특별한 싱어송라이터로 대접받고 싶었나보다.
이렇게 살펴보고 나니,
풀잎처럼 누운 것은 대부분 여성 아티스트들이다.
그것이 현실의 아티스트가 가진 관능미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든
관능적으로 꿈틀대는 음악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든.
사진으로 앨범 커버를 꾸미려면 이런 것이 필요한 모양이다.
이번 커버/스토리를 정리하고 보니...
정말로 쉬.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