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짜 커버/스토리

김창완의 솔로 앨범 「Post Script」(서울음반, 1995)에 실린 <비디오만 보았지>라는 노래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온종일 비디오만 보았지 어처구니 없는 파리대왕
사랑스런 잇지 이야기 후라이드 그린 토마토
국수 한그릇 말아 먹고 퐁네프의 연인을 또 보았지
크로스 로드도 멋지고 에릭 클랩튼도 멋지고
누가 빌려갔는지 없는데 파바로티와 그 친구들
굴속 같은 방안을 언제 청소를 하나
여기저기 뒤지다보니 파워 오브 원이 나와서
본 건지 안본 건지 모르고 다시 틀어 놓았지

이 가사를 끌어온 진짜 이유는 "굴속 같은 방안을 언제 청소를 하나" 때문이다.
굴속 같은 방을 청소해야 하는데...... 청소라고 해봐야 공간A에 있던 것을 공간B로 옮기는 것일 뿐이라 무의미하다. 청소가 영원히 불가능하다.
그러니 빈둥빈둥 방바닥만 긁고 있을 수밖에.




피터 가브리엘 Peter Gabriel의 두번째 앨범 「Peter Gabriel」(Geffen, 1978).
피터 가브리엘은 흥미롭게도 제네시스 Genesis를 떠나 솔로 활동을 하면서 발표한 첫 앨범부터 네번째 앨범까지 앨범 타이틀을 모두 「Peter Gabriel」로 붙였다. 첫 앨범은 셀프 타이틀을 붙이는 경우가 많으니 그냥 피터 가브리엘이라고 부르면 되는데 Car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이 두번째 앨범은 Scratch, 세번째 앨범은 Melt 또는 Melting Face라고 부른다. 진짜 재미있는 건 Security라고 부르는 네 번째 앨범이다. 첫 세 장은 모두 앨범 아트웍에서 별명을 따왔는데, 네번째 앨범은 음반 제작사에서 붙여놓은 스티커 때문에 Security로 부르게 되었다. 앨범 제목 같은 크기의 글씨로 LP 비닐봉투에 "security" 스티커를 붙여놓았으니 그렇게 착각할만도 하다. 만약에 커버 아트웍으로 이름 붙였다면 Alien 정도가 되었을 게다.

이 앨범의 커버 아트는 힙노시스 Hipgnosis가 담당했다. 워낙 유명한 디자인 그룹이라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결과물만 보고도 이름을 알 수 있을 정도지만, 이 커버는 힙노시스의 전형적인 앨범 커버 아트와 꽤 다른 작품이다. 힙노시스의 작품이라고 하니 허공에 난 스크래치도 뭔가 좀 있어보이긴 하다. 
 



2007년에 재결성한 스웨덴의 멜로딕 데스 메틀 밴드 앳 더 게이츠 At The Gates가 해산하면서 흩어진 멤버들 가운데 몇몇이 모여 결성한 스래쉬 메틀 밴드 헌티드 The Haunted의 네번째 앨범 「rEVOLVEr」(Century Media, 2004)의 커버.

커버의 컨셉트와 디자인을 담당한 프릭션의 프로드 실스 Frode Sylthe는 신경을 자극하는 보컬과 공격적인 사운드의 밴드 성격대로 커버 아트를 꾸몄다. 앨범을 볼 때도 그렇지만 이미지만 봐도 빨간색 바탕은 시각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허공을 긁어대는 손가락은 기타의 날렵한 손가락 같기도 하고, 정신없이 때리는 드럼 같기도 하고, 흠잡을 곳 없는 보컬 페터 돌빙 Peter Dolving의 목소리 파동 같기도 하다.

사실 음악하고는 잘 연결되는데, 커버 이미지는 빨간색의 자극을 제외하면 밴드의 음악 스타일에 비해 뚜렷한 이미지는 없다. 이 앨범은 리미티드 에디션인데 일반판은 흰색 바탕의, 정말 정말 시큰둥해보이는 커버다. 둘 다 같은 사람이 작업했는데 왜 이렇게 차이가 날까. (위의 링크에서 확인 가능.)


Helix / Wild In The Streets
이 앨범은 사실 잘 모르는 앨범이다. 80년대 메틀 음반은 굵직한 것만 들어서 그런지 이런 메틀 밴드가 있었다는 사실도 몰랐다.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중에 이 밴드가 나왔다면, "얼마나 형편없는 음악을 했길래 내가 모를 정도냐?"라면서 짐짓 자존심 세우려는 발언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음악 이야기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있다 해도 한번 들어볼 것을 권하는 수준에서 멈춘다. 글이 아니라 말로 음악 이야기 하며 낄낄대는 건 대학 시절 이후로는 끝이다.)

어쨌든 중요한 건, 캐나다의 메틀 밴드 헬릭스 Helix는 메틀 밴드답게  「Wild In The Streets」(Capitol, 1987)에서 방바닥 대신 벽을 강력하게 긁고 있다. 확실히 센 녀석들인가보다. 이 앨범은 헬릭스의 여섯 번째 앨범이라고 하는데 캐나다에서는 골드를 기록했는데 미국에서는 매니지먼트가 부실해서 형편없는 성공을 거뒀다고 한다. (위키 참고) 아마도 헬릭스가 이 앨범을 발표했을 때 미국에서, 그리고 캐피톨 레이블에서 엄청난 거물이 나왔나보다. 1987년이면 날고 기는 밴드들이 많았을 무렵이니. 만약 내가 레이블 관계자라고 해도 이 밴드를 프로모션하느니 아이언 메이든 Iron Maiden의 앨범을 한장이라도 더 팔려고 하거나 투어 스케줄 이쁘게 짜주는 것에 더 신경 썼을 것 같다.

혹시,
내 판 좀 사줘~~~~~ 라고 이야기하려는 의도로 제작한 커버는 아니겠지? 하하.





며칠 동안 방바닥만 긁었더니 생각하는 것도 바닥을 기고 있다.
그래도 헌티드 앨범을 한참 들었더니 폭력성이 슬쩍 삐져나온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후련해지는 걸 보면.
(아니에요, 아니에요. 전 폭력 하고 거리가 멀어요~)
이걸 기회로 잃어버린 상상력 복원과 방 청소를 해야겠다.
온종일 방바닥을 긁는 건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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