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유머를 자랑하기 위해, 아니면 밋밋한 커버아트에 대한 반항으로, 그것도 아니면 그저 뭔가 이슈라도 만들어볼까 하고 앨범 커버에 낙서를 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때때로 그것이 예술의 경지에 이르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거의 없다. 그중 하나가 벡
Beck의 앨범 커버다
Beck 「Odelay」(DGC, 1996. Deluxe Edition, 2008)
이 앨범 커버도 훌륭한 수준인가를 따지면 포함될 수 있는 확률은 지극히 낮지만, 그래도 딜럭스 에디션인지라 오리지널 커버에 변형을 주어야 했을 압박을 재미있게 피해갔다고 할 수 있겠고, 음악 역시 유머와 재치를 하이브리드로 표현했기 때문에 나쁘지는 않았다.
벡은 그렇다고 치고, 최근 등장한 몇몇 앨범 커버에 낙서를 응용했지만 훌륭한 수준은 아니다.
Disclosure 「Settle」(Universal, 2013)
이 친구들...... 솔직히 말하면, 이 커버는 올해 최악의 앨범 커버 가운데 하나로 뽑으려고 했다. 그렇지만 그 계획은 폐기했다. 자기네 얼굴도 앨범 커버처럼 낙서를 해놓는 괴팍한 친구들이니까. (디스클로저 Disclosure의 낙서사진을 보려면 [여기를 클릭] ) 게다가 디지털 싱글이든 EP든, 이 앨범이든 지금까지 발표한 모든 음반 커버에 비슷한 낙서를 해놨으니 일관성 측면에서 보면 나름대로 훌륭한 수준이다. 물론 이 앨범 커버를 보면서 전혀 즐겁지 않았다. 그것보다는 오히려 부적절한 손의 위치가 더 흥미를 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부적절한 손의 위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커버 스토리를 시도해봐야겠다.
Peter Holmes 「Nice Try, The Devil」(Comedy Central Rec., 2013)
팟캐스트로 유명하다는 코미디언 피터 홈스의 앨범 커버.
사실 이 사람에 대해서 아는 게 없고, 이 속에 담아놓은 게 음악인지 팟캐스트 개그 모음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음반을 올뮤직가이드 뉴스레터에서 발견했기 때문에 대체로 음반으로 취급당하고 있다고 확신하며 포함시켰다.
원래 코미디언이라 웃기겠다는 의도로 컬러 수염을 그려넣었다면 훌륭한 수준이라고 할 수는 있겠다. 그렇지만 실제로 이 커버를 본 순간 웃기지도 않고, 감동도 없는 것 역시 분명하다.
그나마 노랑색 배경과 우울하면서도 웃긴 표정, 거기에 잘 어울리는 컬러풀한 수염 낙서...... 그냥 평균 정도?
청년들 「청춘」(Mirrorball, 2013. EP)
밴드 '청년들'은 2011년 여름에 결성되어 홍대 인디씬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4인 인디록 밴드이다. 영국음악에 큰 영향을
받은 조지웅(24/기타/보컬)과 김해마(28/드럼/코러스)에 의해 결성되었으며, 디시인사이드에 자작곡을 올리며 활동하던
이승규(22/기타/보컬)와 오민혁(20/베이스)을 영입하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였다. 2012년에 'The best thing
of this night', 'Baby don't kill me', 'my dear' 이 수록된 데모앨범을 직접 만들어 공연장에서
팔았으며, 음악 관계자들과 팬들로부터 가능성을 인정받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2013년 6월 마침내 첫 EP앨범인 '청춘'을
정식으로 발매하게 된다.
- 음반사 보도자료에서 발췌
낙서 커버에 대한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시기에 입수하게 되어서, 아직 비닐을 뜯기 전인데도 한자리 차지하게 된 (모처럼) 한국 밴드의 앨범 커버.
음악은 어떨까? 앨범 커버로 보면, 이 친구들, 펑크가 제격일 것 같다. 그런데 영국 음악에 큰 영향을 받았다 한다. 그렇다면 밴드의 지향과 앨범 커버는 어울리지 않는다. 웃음만 제거했어도 어느 정도 들어맞았을 텐데......
이렇게 대충 몇 장 확인해 본 결과,
낙서가 아니라 아트라면 모를까, 앨범 커버에 낙서하는 건 좋은 방법이 결코 아니다. 웃길 가능성은 50%쯤 되지만 감동을 줄 가능성은 1%보다 적다. 0.000487% 정도? 음반 커버가 꼭 감동을 줘야 할 필요는 없고 그럴 수도 없지만, 재미와 감동을 파장으로만 본다면 감동 쪽의 파장이 길고 오래간다. 그러니까, 감동과 재미를 둘 다 줄 수 없다면 감동을 주는 쪽을 택하는 게 훨씬 현명하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