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병신년. 2017년 정유년. 2018년은 무술년(戊戌年), 개의 해이다. 명백한 사실.
그런데, 이상하다. 2016년 병신년이 끝나자 갑자기 2018년 무술년이 와버렸다. 2017년, 분명 거대한 일이 일어났는데, 정유년은 어디로 간 걸까. 새해가 왔는데도 새해 같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전히 병신년 같던 2017년에 위저 Weezer는 새 앨범 [Pacific
Daydream]을 발표했다. 아직 선정하지 않았고 아마도 끝내 선정하지 않을 '내가 뽑은 2017년 베스트 앨범 커버아트' 가운데 한 장이다. 그런 의미에서, 위저의 새 앨범 커버아트에서 시작한 이번 글의 소재는 병신년 그네다. 그네는 이몽룡과 성춘향이 만나는 장면에 등장하던가? 문학화한 춘향전이나 판소리 춘향가나 완전판으로 아직 못 보았다. 게으른 탓.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로 시작하는 <사랑가>는 몇 번 들어봤다. (이마저도 첫 소절만 안다.)
Weezer [Pacific Daydream] (Atlantic, 2017)
지구, 우주, 별, 소녀... 여러 소재로 뻗어나갈 수 있을 법한 위저의 새 앨범 [태평양지백일몽]이 좋은 이유는 상상력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상상력 자극은 내가 좋아하는 앨범 커버아트의 한 지류다. 평범한 시각으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그런 멋진 상상력 말이다. 위저의 음악을 언제부터인지 듣지 않게 되었다. 아마도 국내 록 페스티벌에서 라이브를 본 이후 같은데, 어떤 게 핵심 이유인지 선뜻 말할 수는 없다.
위저의 앨범이 나오고 한달 쯤 뒤였을까. 명동 회현지하상가의 음반 가게를 지나가다 만난 오프스프링 The Offspring의 앨범. 가격표를 보고 슬쩍 내려놓았다. (초판이라 무척 비쌌다.) 언젠가 그네 이야기를 할 때 써야지 했던 터라 반가운 마음에 찍어두었는데, 이렇게 써먹게 되다니!
The Offspring [Ameicana] (Columbia, 1998)
미국 펑크록 밴드 오프스프링의 성공에 정점을 찍어준 앨범. 5백만장이나 팔렸고 빌보드 앨범 차트 2위까지 진출했다. 이 앨범을 보면서 언젠가는 한번 써먹으려 생각했다. 주제는 그네 아니면 바퀴벌레. (바퀴벌레가 맞는지 따져봐야 하는데, 바퀴벌레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귀여운 듯 바퀴벌레를 안고 있는 저 사내아이는 음반 뒷 커버에서는 피 묻은 신발만 남아 있다. 그네를 타고 있는 건 바퀴벌레... 동화의 감수성, 상상력과 내면의 끔찍함이 공존하는 묘한 커버아트.
Korn [Korn] (Epic, 1994)
콘 Korn의 유명한 첫 앨범. 이 앨범 역시 공포 분위기를 만들어내는데, 그 공포는 즉각 다가온다. 소녀는 이내 얄궃은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될 것 같은데... 놀이터, 그림자, 소녀, 그네, 이런 여러가지 소재가 뒤엉켜 있어 나중에 다시 꺼내올 수 있는 앨범 커버아트다. 콘의 불길한 음악과 앨범 커버아트의 흡인력, 대단했다.
Spoonbill [Squawkus] (Omelett Records, 2016)
오스트레일리아의 일렉트로닉 뮤지션 스푼빌의 2016년 EP. 서커스 단원일까 싶은 한 사내가 그네를 타고 있다. 앨범 커버아트가 잘 모르는 아티스트의 음악을 어느 정도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고 했을 때, 이 앨범 커버아트는 스푼빌의 음악을 10% 정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음악과 전혀 상관없이 기존 어법과 다르다는 점에서 무려 10%나 주었다. 사전 지식 없이 음악 좀 들었다 하는 사람들에게 이 앨범 커버를 들이밀었다면, 열명에 다섯은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그것도 70년대 이탈리아에서 활동했던 밴드의 앨범이라고 짐작할 게다. (실제 테스트 해본 적은 없다. 내가 그렇게 생각했다는 말이다...) 음악을 들어보고 싶다면 밴드캠프에서 스트리밍과 다운로드 서비스를 하고 있으니 직접 들어볼 것. [들어보려면 여기를 클릭]
병신년 그네를 위해 네 장의 앨범 커버아트를 보니 상상력을 자극하긴 하지만 평온하지는 않다. 이몽룡과 성춘향이 이팔청춘 16세에 만나 사랑을 노래하던 시절의 그네 같은 건 없을까? 나이 지긋한 남성 싱어송라이터 한스 요크 Hans York의 2007년 앨범 [Young Amelia] (Hazzazar, 2007) 정도면 아주 평온하겠다. (한스 요크의 이 느긋한 앨범 커버아트 속 음악을 들어보려면 유튜브로 가면 된다. 클릭)
Hans York [Young Amelia] (Hazzazar, 2007)
업데이트 2018. 1. 20.
Manchester Orchestra <The Gold> from the album [A Black Mile To The Surface] (Loma Vista, 2017)
그네를 탈 때 벌어지는 여러 상황 가운데 가장 위험한 상황을 보여주는 음반 커버아트. 깨져버린 관계를 노래한 맨체스터 오케스트라의 최신 싱글 커버는 병신년 그네의 현재진행형 버전이다. 이후 벌어질 상황은 충분히 예견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