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만화책을 본다. 좋아하냐고? 아니, 그렇지 않다. 나에게 만화책은, 형편 없는 독서량이 부끄러워질 때 임시방편으로 선택하는 도구다. 그럴 때만 만화책도 책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만화책은 책이 아니라고 주장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특별히 의견을 제시할 필요나 이유가 없어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다. 만화에 대해 내 의견을 은근슬쩍 제시해본 건 아주 아주 어렸을 때다. 독서는 취미라고 적었을 때. (독서가 과연 취미가 될 수 있는가는 '다툼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따질 생각은 없다. 이건 늪이다. 참전하는 순간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는 늪. 결론은 철학자들이나 인생 선배들에게 맡긴다.)
"등짝을 보자." 아주 유명한 문장이다. [베르세르크]라는 만화에 나온다지? (난 이 만화를 아직 못보았다. 등짝을 보자는 문장에 얽힌 이야기는 나무위키에서 읽었다. [이번에도 친절을 가장해 나무위키의 "등짝을 보자" 항목에 링크를 건다. 클릭!]
뜬금없이,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등짝을 보기로 했다.
Harry Styles [Harry Styles] (Columbia, 2017)
노래 제목을 안다고 잘난 척 했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은 통하지 않는다. 스마트폰 노래 검색 앱 하나면 된다. 리믹스 버전까지 정확히 알려주기도 하니 대단하다. 가끔 앱으로도 알 수 없는 노래가 있긴 하지만, 그런 노래는 묻는 사람이나 대답하는 사람이나 둘 다 모른다. 해리 스타일스 Harry Styles도 노래 앱으로 찾았으면 금방이었을 텐데, 그렇게 찾지 못했다. 광고에 넣은 음악이라 앱을 구동하다보면 광고가 끝나버린다. 그럴 때 쓰는 방법은 들리는 가사로 검색하기. 초반의 선명한 문장 "welcome to the final show"가 제목일 거라 생각하고 검색했는데, 틀렸다. <Sign Of The Times>였다. (<Sign Of The Times>의 유튜브 조회수는 이 글을 쓰는 현재 3억뷰에 근접해 있다. 요즘 1억뷰 정도는 쉬운 일인가 보다.)
2017년에 첫 앨범을 발표한 신인 해리 스타일스는 노래보다 앨범 커버아트가 더 빨리 다가왔다 새 앨범 소개 코너에서 해리 스타일스의 앨범 커버를 본 순간 화들짝 놀랐다. 이 여인네가 앞을 보여주자니 너무 한다 싶어 등짝을 보여주는구나, 생각했다. 문신을 실마리 삼아 검색해 커버아트 속 인물은 남성 보컬 해리 스타일스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앨범 커버아트에 굳이 해당 뮤지션이 등장할 필요 없다. 시선을 잡아끌기 위해 전혀 상관없는 여인네, 그것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여인네를 끌어들이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도 그럴 거라 생각했는데, 해리 스타일스는 그걸 한번 더 꼬아서 자기의 등짝을 남의 등짝처럼 보여주었다. 누구의 등짝일까 궁금하게 만드는 전술, 아티스트 이름을 적지 않아, 역시, 궁금하게 만드는 전술까지, 여러 모로 영리한 친구다.
VENN [RUNES] (Full Time Hobby, 2017)
등짝을 보여주는 또다른 커버아트다. 영국의 포스트 펑크록 밴드 벤 Venn의 첫 정규 앨범 커버아트 속 주인공은 누구일까. 세 명의 멤버 가운데 한 명? 아닐 게다. 짐작하기로는 오피셜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남자의 등짝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만 뮤직비디오 속 남성이 아닐 수도 있겠다. 머리카락이 다르다. 여성도 나오는데 그 여성은 확실히 아니다. 뮤직비디오 속 여인은 금발이다. 커버아트의 등짝을 봐도 누구의 등짝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여기서 멈추기로 했다. 뮤직비디오에 등짝이 나오는데 혹시 누구의 등짝인지 알게 되었다면 글을 남겨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이미 손을 놓은 상태라 누군가 알려주지 않는 한 미궁이다.
* 뮤직비디오 보러 가기 : https://youtu.be/q-BYnQTOiVo
Compos Mentis [Gehennesis] (Mighty Music, 2007)
덴마크의 멜로딕 데스메틀 밴드 콤포스 멘티스 Compos Mentis의 두 번째 정규앨범. 등짝을 보여주는 앨범 커버가 아니었다면 여전히 이들의 음악 한 조각도 듣지 못했을 게다. 비록 섬뜩한 분위기의 등짝이지만 누군가에게 자신의 음악을 들려주겠다는 밴드의 의도였다면, 성공했다. 솔직히 좋아하는 음악 스타일은 아니지만, 밴드의 음악 성향으로 볼 때 이런 커버는 적절하다. (데스메틀 쪽에 이 커버아트와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나게 잔혹한 커버는 수 없이 많다.) [친절링크 서비스! // 1. 유튜브에 올려놓은 이 앨범을 들으려면 여기를 클릭 // 2. 간단하게나마 밴드의 정보를 보려면 여기를 클릭]
이러니 저리니 해도, 등짝에 최적인 이미지는 1997년에 공개한 핑크 플로이드 앨범 커버아트 바디페인트다.
너무나 유명한 이미지라 가져올까 했는데 저작권을 제대로 표기해놓은 사이트가 없어서 그냥 링크만 걸기로 했다. 핑크 플로이드의 백카탈로그 캠페인을 위해 작업한 이미지다. [핑크 플로이드 바디페인트를 알고 싶거나 보고 싶다면 클릭하는 게 좋다. 물론 이후 내용을 위해서도 한번쯤 보는 게 좋겠다.] 이 링크 속 글을 통해 추가로 알게 된 사실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이 바디페인팅을 시도하게 된 이유는 핑크 플로이드 백카탈로그 캠페인을 위한 아이디어를 떠올리다 back catalogue에서 글자 그대로 "back"을 구현하려고 등짝 바디페인트를 시도하게 되었다는 점. 두 번째는 참여한 모델의 이름이 현재 모두 밝혀졌다는 점.
핑크 플로이드 팬이라면 쉽게 짐작하겠지만, 이 등짝 바디페인팅의 단서는 1992년에 공개한 핑크 플로이드 백카탈로그 박스셋 [Shine On]이 분명할 거라는 사실도 추가로 적어둔다.
Pink Floyd [Shine On] (EMI, 1992)
업데이트 2018. 1. 25.
Wet [Don't You] (Columbia, 2016)
이런 등짝도 있다는 걸 잊었다. part 2를 위해 남겨놓을까 하다 그냥 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