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커버/스토리 [diary edition]

오늘의 배경음악

Black Sabbath <Changes> from the Album [Vol. 4] (Vertigo, 1972)

지난 세 번째 앨범 [Master Of Reality](Vertigo, 1971) 수록곡 <Solitude>로 강력한 잽을 날렸던 블랙 사바스가 이번에는 피아노와 키보드를 앞세운 <Changes>로 바디블로에 이은 깊숙한 훅을 날렸다. <Changes>는 밴드의 어두운 이미지를 완전히 희석시키곤 했던 블랙 사바스 Black Sabbath의 대표작인 사랑노래다. 볼륨 크게 해도 별 문제없음. 음... 맞겠지? 가사에 심오한 의미를 슬쩍 숨겨놓고 사랑 노래로 포장해놓은 건 아니겠지?

 

 

오늘의 배경음악을 <Changes>로 정한 이유는, 오늘 커버/스토리가 블랙 사바스의 네 번째 앨범 [Vol. 4](Vertigo, 1972)을 다루기 때문이다. (너무 뻔한 전개인데?)

 

 

내 CD장에 꽂혀 있는 블랙 사바스의 네번째 앨범들. 왼쪽은 1987년 일본에서 발매한 3집과 4집 합본 버전, 가운데는 1996년 리마스터 버전, 오른쪽은 2004년 라이노에서 [Black Box: The Complete Original Black Sabbath 1970–1978]이라고 이름 붙여 발매한 8장짜리 박스셋 일부.

 

Black Sabbath [Vol. 4] (Vertigo, 1972)

- Cover design by Bloomsbury Group

 

네 번째 앨범 커버만 보면 그래도 블랙 사바스답다. 오지 오스본 Ozzy Osbourne이 박쥐 대가리를 물어뜯었대, 닭 모가지를 비틀었다던가? 공연 때마다 피를 한 바가지 뿌린다더라. 직접 공연을 본 적 없는데도 이런저런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흑마술, 오컬트, 사악함, 사탄, 중세, 현재였으면 이런 단어가 블랙 사바스 연관검색어로 자동 등록되었을 게 분명하다.

공연장에서 촬영한 사진을 앨범 커버아트로 사용한 네 번째 앨범 커버는 사악한 이미지를 가진 밴드의 명성을 유지시켜줄 만했다. 디자인한 게 맞나 싶게 커다랗게 배치한 타이포그래피는 어색하다. 바로 이전 앨범 [Master Of Reality]가 과하다 싶을 정도로 크게 배치한 타이포그래피 덕분에 좋았는데, [Vol. 4]는 과한 타이포그래피 때문에 결과는 반대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버틸 수 있는 이유는, 다른 요소를 모두 배제한 검은 배경과 주술사의 모습 같은 오지를 색상대비로 응용해 강렬한 인상을 남겨주었기 때문이다.

 

Black Sabbath [Vol. 4: Super Deluxe] (Rhino, 2021)

이건 오리지널 앨범 발표 50주년을 기념하는 2021년 수퍼 딜럭스 에디션 커버.

50주년 기념답게 오리지널을 그대로 가져왔지만 색상을 바꿔놓았다. 추가한 Super Deluxe라는 글자는 오리지널에 비해 더 답답하다. 여전히 색상대비 효과를 가져왔던 오리지널을 응용하지 않았더라면... 으...

 

 

여기서 잠깐

블랙 사바스 앨범 가운데 제목이 가장 촌스러운 앨범을 따져볼가? 아마 이 네 번째 앨범이 되겠다.

아, 밴드의 가장 최근 정규 앨범 [13] (Vertigo, 2013)도 비슷한 수준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13이라는 숫자가 주는 불길함은 블랙 사바스를 위한 최적의 숫자다. 데뷔 첫 앨범을 13일의 금요일에 발표한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앨범을 발표한 연도도 13년이다. 게다가 영국에서는 43년 만에 앨범 차트 1위를 기록했으며, 미국에서는 무려 '밴드 인생 최초의 넘버원 앨범'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이걸로도 부족해 이듬해 열린 그래미 시상식에서 앨범 수록곡 <God Is Dead?>로 2000년에 받았던 '메틀 퍼포먼스 부문' 상을 다시 받았다. 여러 모로 [Vol. 4]는 [13]을 상대하지 못한다.

그런데, 하... '네 번째 앨범'이라니... 누가 앨범 순서를 까먹을까 봐 걱정하기라도 했나? 이렇게 앨범 제목을 지은 건 밴드가 아니었다. 이 네 번째 앨범은 앨범 수록곡 <Snowblind>로 타이틀을 결정하려 했다. 하지만 음반사가 거부했다. 누가 봐도 <Snowblind>가 코카인과 관련된 노래인데 이걸 앨범 제목으로 삼을 수 없다며 거절했고, 결국 앨범 타이틀은 회사가 붙여버린 [Vol. 4]가 되었다.

 

 

 

이렇게 끝내면 커버/스토리도 아니고, 앨범 소개도 아니고, 헛소리 퍼레이드도 아닌 게 되니...

그래서 가져온 앨범 커버 한 장.

 

 

Marvin Gaye [Funky Nation: The Detroit Instrumentals] (Motown, 2021)

디지털로 공개한 마빈 게이의 앨범 [Funky Nation: The Detroit Instrumentals]의 커버다. 디지털 음원이라 누가 작업했는지 알 수 없다. 음악은 블랙 사바스의 [Vol. 4]의 음악과 가장 먼 거리에 있다고 할 만한 마빈 게이의 펑키, 블루스 연주만 담았다.

 

앨범커버로 돌아가면.. 블랙 사바스의 앨범에 사용했던 색상과 동일하다.

덕분에 앞에서 한 말은 다 뻥이 되어버렸다.

 

"뭐가 어쩌고 저째? 블랙 사바스의 앨범 커버를 보니 검은 배경과 주술사의 모습 같은 오지를 색상대비로 강렬하게 표현했다고? 그럼 그 앨범과 같은 색상을 사용한 마빈 게이의 앨범 커버는 흑마술 펑크를 보여주려는 거냐?" 이런 비난이 들린다. 그런데, 잠깐... 흑마술 펑크? 그럴싸 한데?

 

그런 의미에서, 이 앨범에 흑마술을 시전해 저주를 뿌린다면...

디지털로만 공개하긴 했어도 단독 앨범처럼 보이는데, 사실 이 앨범 수록곡들은 이미 2011년에 모조리 공개한 바 있다. 마빈 게이 최대의 걸작 [What's Goin' On] (Motown, 1971) 발표 4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로 2011년에 공개한 수퍼 딜럭스 에디션 두 번째 CD가 바로 이 앨범과 수록곡이 같다. 그걸 왜 이제야 단독 앨범처럼 공개했는지 모르겠다. 당시 40주년 수퍼 딜럭스 에디션은 디지털로 서비스가 불가능했는데 이번에 협상이 타결되어 공개할 수 있었던 건가? 더 찾아보진 않았는데 아마 이런 류의 문제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그래도 그렇지, '40주년 기념 수퍼 딜럭스 에디션 온리' 이게 더 가치 있지 않나?

 

 

 

오늘의 결론:

색상대비를 적절하게 사용한 앨범 커버는 오래 기억에 남는다는 점.

블랙 사바스는 이미 성공했고, 마빈 게이 역시 비슷한 효과를 내고 있다. 지금 당장 생각나진 않는데, 이런 색상을 사용한 앨범 커버가 더 있을 게다. (그건 찾는대로 업데이트하겠다.)

 

오늘의 진정한 수확은, 색상대비를 잘 활용한 앨범 커버 이야기하다 흑마술 펑크라는 새로운 장르도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오오, 오컬트 펑크! 멋지지 않은가.

 

 

 

 

업데이트 2021. 3. 26

Arab strap <Changes> from the single <Changes>

 ● originally recorded for Keith Cameron's [The Carve-Up] compilation (Loose Music, 1999).

한때 XFM 라디오 디제이였던 키스 카메론이 당대의 음악을 컴파일한 앨범에 아랍 스트랩은 <Changes>로 참여했다. 그 곡을 20년이 지난 2020년에 디지털 싱글처럼 공개했다. 누가 봐도 트리뷰트라는 건 단번에 알아볼 수 있다. 커버를 [Vol. 4]와 동일하게 만든 이유도 단번에 알아볼 수 있다. 음... 블랙 사바스 vs. 마빈 게이 같은 경우는 아니지만 어쨌든 비슷한 커버도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한 업데이트니 슬쩍 끼워놓기로 한다.

 

 

 

업데이트 2021. 3. 27

Lou Reed [Transformer] (RCA, 1972)

● Photography : Mick Rock | Art Direction & Design : Ernst Thormahlen

('내 직업'이라는 의미의 일이 아니라 '더 빠른 일처리'를 뜻하는) 일을 위해 포토샵을 건드렸을 때 판화 느낌이 나게 만드는 Threshold 효과를 무척 좋아했다. 그런 효과를 적용한 듯한 루 리드의 앨범 커버는 블랙 사바스의 앨범 커버아트와 비슷하다는 댓글 덕분에 추가 업데이트해놓았다. [Transformer]는 벨벳 언더그라운드 Velvet Underground 이후 루 리드의 솔로 활동이 지금까지 이어올 수 있게 만들었던 걸작이다. 앨범 커버 사진을 찍은 믹 록은 노출과다 상태로 인화된 사진을 이용해 오히려 더 극적인 이미지를 연출할 수 있었다고 했다. 내가 포토샵 threshold 효과를 좋아했던 이유와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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