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커버/스토리 [diary edition]

태양을 피하는 방법?

간단하다:
태양을 등지면 된다.

아아... 농담이다. 오늘은 태양을 등진 앨범 커버/스토리다.






우선 맨슨 Mansun의 13번째 EP 「Electric Man」의 CD1과 CD2의 커버로 출발.
EMI와 계약하면서 EP를 발표하고 싶을 때는 언제든 가능하다는 조항을 집어넣은 계약으로 정규앨범은 고작 세장인데 EP가 무려 14장이나 되는 이상한 밴드.(시도 때도 없이 발표하는 EP는 팬들을 즐겁게 해주긴 했지만...) 같은 레이블 소속 거물 밴드 블러 Blur가 셀프타이틀 앨범으로 굳은 의지를 표현하려 했던 1997년의 「Blur」를 앨범 차트 1위에서 끌어내리며 1위에 올랐는데도 오히려 레이블의 눈총을 받은 이상한 밴드.(레이블에서는 햇병아리 밴드의 앨범보다 블러의 앨범을 팔아먹는 게 훨씬 이익이었다.) 밴드의 음악에서 핵심이었던 보컬 폴 드레이퍼 Paul Draper와 기타리스트 도미닉 채드 Dominic Chad의 관계가 동성애 이상이었던 이상한 밴드.(둘의 관계는 미스터리다. 밴드가 해체하지 않았으면 아마 뭔가 폭로되었을 게다...)
하긴 데뷔 앨범 「Attack Of The Grey Lantern」(EMI, 1997)이나 「Six」(EMI, 1999)나 우아하지 않은 괴팍한 스토리와 브릿팝 이상의 묘한 음악이었다. 세번째 앨범 「Little Kix」(EMI, 2000)도 난데없이 사랑노래를 들고 나온 탓에 이상하긴 마찬가지. 게다가 네번째 앨범 레코딩 진행중에 치른 웜업긱 warm-up gig 도중에 밴드를 해체해버린, 시작부터 끝까지 이해가지 않는 기묘함으로 가득찬 밴드가 바로 맨슨이었다. 그렇지만 난 맨슨의 이런 모습을 좋아한다. 조금 더 확실하게 말하면, 얼터너티브 롹 또는 브릿팝 시대의 밴드 가운데 다섯손가락 안에 꼽는 밴드다.

그들도 태양을 피하는 방법을 확실히 알고 있었나보다. 태양을 등지는 것도 모자라 선글래스까지 끼고 있는 걸 보니. 아... 또 농담이다. (이제 그만.) 그동안 발표한 EP의 커버가 꼭 노래와 비슷한 느낌으로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지만, 이 경우에는 <Electric Man>의 가사 "Bring your sunshine to me"의 느낌을 앨범 커버에서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태양을 등진 사진은 대부분 아련한 느낌을 준다. 사실 이런 사진을 찍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태양을 강조하다 보면 인물의 얼굴은 완전히 죽어버리고, 얼굴에 노출을 맞추면 태양의 느낌은 사라진다. 물론 포토샵 CS라면 이런 사진은 순식간에 멋진 사진으로 탈바꿈시켜주지만, 앨범 커버를 찍는 포토그래퍼는 그런 후보정보다는 카메라를 조절해 멋진 작품을 만들어내고 싶어한다.
이때 사진들은 대개 아련한 오렌지 톤이 주를 이룬다. 부드럽고 아련한 느낌... 그래서 여성 아티스트의 사진에 태양을 등진 사진이 많은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k.d. 랭 k.d. lang의 앨범 「Invincible Summer」(Warner, 2000)이나 미셸 브랜치 Michelle Branch의 「Hotel Paper」(Maverick, 2003) 같은 경우에서 위에서 이야기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꼭 이 두 앨범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두 작품의 앨범 커버 사진 스타일은 쉽게 만날 수 있다. 오히려 아티스트의 얼굴을 부각시키지 않음으로써 음악에 더 집중하는 진지함을 드러내려는 의도도 있을 법하다. 미셸 브랜치의 경우는 앨범 타이틀과 크게 연관지을 만한 커버는 아니지만 k.d. 랭의 경우는 어느 정도 맥을 찾을 수 있다.  여기에 살짝 불어준 바람은, 꾸미지 않은 순수를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조금 더 드러낸다.


태양을 등지고... 자연스럽게... 여기에 살짝 바람이 불어준다?
그럼 이 앨범 커버는?



옐로카드 Yellowcard의 「Ocean Avenue」(Capitol, 2003)는 앞에서 이야기한 정석 비슷한 것이 모두 들어있다. 거기다 잔잔한 바다와 수평선, 거기에 더해 황금색 태양빛이니 더이상 좋을 수 없다. 만약 이 커버의 모델이 옐로카드의 멤버였거나 옐로카드라는 이름의 솔로 아티스트였다면 그 효과는 퍼펙트다. 아쉽게도, 커버 모델은 (음반사의 홍보 문구를 그대로 인용한다면) "바이올린과 펑크록의 폭발적인 교감이 돋보이는... 플로리다주 잭슨빌 출신 5인조 펑크 팝 밴드" 옐로카드와 전혀 상관없는, 진짜 모델이다. 이름은  브리태니 내시 Brittany Nash. (어떤 모델 활동을 했는지 알아보려고 옐로카드의 포럼을 뒤졌는데, 이 녀석들이 mp3로만 음반을 접했는지 이름을 물어보는 질문밖에 없었다. 이봐, 부클릿 맨 뒷줄에 모델 이름 적어놓았잖아... 어떤 모델활동을 했는지는, 결국, 찾지 못했다.) 어쨌든 모델 덕분인지 음악 덕분인지 이 앨범은 미국에서만 2백만장이 넘게 팔렸다. 음악도, 생각 이상으로 들어줄만하다.




이렇게 이야기하다 보니 대부분 여성 아티스트들이 이런 커버를 만드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스타일이다. 여기서 자주 거론하게 되는 닐 영 Neil Young도 첫 밴드였던 버펄로 스프링필드 Buffalo Springfield 시절부터 시작한 10년의 활동을 담은 첫번째 베스트 앨범 「Decade」(Reprise, 1977)의 커버를 태양을 등진 사진으로 찍었다.
다만 다른 앨범과 차이가 나는 부분은, 태양을 등진 것은 닐 영의 기타라는 사실. 이 커버는 태양을 이용해 기타와 인물을 황금색으로 물들이며 부각시키고 있다. (그런데, CD로 만들면서 LP 세장을 CD 두장에 꽉꽉 눌러담았다는 문장이 너무 두드러져서 불편하다. 닐 영의 이름보다 광고 문구가 더 두드러진다. CD로 포맷을 바꾼 1988년 쯤이면 이런 CD의 장점 정도는 다 알고 있던 시절인 것 같은데...)


오늘도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다.
정리하는 의미에서 마지막으로 선택한 커버는 리카르도 코치안테 Riccardo Cocciante의 「L'Alba」(BMG, 1975)다.



오늘의 주제인 태양을 이용한 커버 사진이라는 주제에는 맞지만, 아티스트가 아니라 새들이니, 무효!!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리카르도 코치안테 역시 자신을 드러내고 싶었는데 좀더 멋을 내려고 조금 뒤로 물러난 것은 아닐까 싶다. 과연 이 해석이 맞을까 싶어 오랫만에 이탈리아어 사전을 뒤적였더니 alba는 '여명, 동틈, 새벽'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발단, 시초'의 뜻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 앨범은 동틀 무렵에 힘찬 날갯짓을 하는 새떼를 통해 아티스트의 도약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겠다. 그렇다면 앨범 타이틀에는 가장 적당한 커버인 것 같기도 하다.

지금까지 거론한 커버의 뒷면에는 약속을 하기라도 한 듯 아티스트의 태양을 등진 또다른 사진을 담겨 있는데, 리카르도 코치안테 역시 태양과 함께 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싶었던지 부클릿 뒷면에 이 사진을 수록했다. 오히려 이 사진을 커버 사진으로 썼어도 전혀 무리가 없었을 것 같다. 혹시 어느 것을 커버로 쓸까 고민한 것은 아니겠지?

*     *     *     *

이렇게 많은 아티스트들은 태양을 등진 사진을 통해 앨범에 담은 음악의 분위기를 요약해서 전해주는 동시에, 자신의 모습을 슬쩍 감추면서 따뜻하고 아련한 모습으로 팬들에게 다가가려는 두가지 의미를 모두 충족시키고 있다는 것을 확인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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