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15년 만이다.
그를 지켜본 15년 동안,
가장 들뜨고,
가장 활기차고,
가장 행복하고,
가장 명랑하고,
가장 밝고,
그러면서도 가장 차분하고, 가장 내밀한, 소식을 듣게 된 것은...
비록 1분 정도의 시간을 두고 연이어 도착한 40자의 한글 문자 두 건이었지만
전혀 감정을 읽을 수 없는 문자에서도 지금 상태를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
지금까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굉장한 기쁨이 묻어 있었다...
그럼, 이제, 기억에서 희미해지거나 흐릿해져도 미안해하거나 불편해질 필요가 없어졌다.
고맙다고 말해야 할까?
아마 제임스 이하
James Iha의 얼굴일 것이다. (아니라면... 할 수 없다. 내가 얼굴을 제대로 분간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으니, 무지에 대한 변명은 이미 한 셈이다.)
「Siamese Dream」(Virgin, 1993)의 성공과 두장짜리 걸작「Meloon Collie & The Infinite Sadness」(Virgin, 1995) 사이에 발표된 스매싱 펌킨스 Smashing Pumpkins의 모음집 「Pisces Iscariot」(Virgin, 1994)의 커버.
이건 밴드의 자부심이 한껏 드러난 시절이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멀찍이 떨어져서 봐야 윤곽을 잡아낼 수 있는 커버 속 인물은 누구여도 상관없었다. 얼터너티브 롹이라는 말로 모든 것을 덮어버리는 습관에 대한 반발일 수도 있겠다.
이 앨범 커버가 바로 그 순간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가끔 꺼내듣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제목을 기억하는 곡이 거의 없다. 디지털 시대의 맹점...
그나마 플리트우드 맥
Fleetwood Mac의 노래를 해체에 가깝게 커버한 <Landslide> 정도를 기억한다.
참 잘 버티고 있다고 생각하는 펑크롹 밴드 오프스프링
Offspring.
인디에서 성공하더니 메이저로 가서도 성공하는 몇 안되는 밴드.
1998년에 발표한 셀프 타이틀 데뷔 앨범 커버는 젊은 소년 같은 느낌을 준다.
희미하게 처리한 이유를 전혀 알 수 없다.
음악 방향에 대한 고민? 아니면 에일리언의 습격? 글쎄, 커버 아트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으니 그저 상상하는 수밖에.
펑크롹 밴드들이 여전히 정치적인 노래를 할 수 있다는 건,
다행일까 불행일까.
R.E.M.의 가장 최근 앨범 「Around The Sun」(Warner, 2004)는 자신감보다는 불안이 더 큰 밴드의 상황을 그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멤버 하나를 잃고 음악성에 대해서도 의심을 받는 상황.
그렇다고 해산하는 것이 더 나을 정도로 나쁜 음악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예전의 R.E.M.과 비교해보면... 그다지... 좋은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왜 멤버를 충원하지 않고 있을까? 그것도 핵심 파트인 드럼을...
이 이야기에 대해서는 수백번은 더 질문받고 수백번은 더 답했을 것 같다.
여전히 태양 근처에 머물지만 밝게 빛나지는 않는 밴드의 현재 상황. 강바람을 맞으며 걷고 있어도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후련함은 없을 것 같다.
R.E.M.의 흐릿한 커버와 비슷한 성격일 것이라 짐작하는 세풀투라
Supultura의 베스트 앨범 「Blood Rooted」(Roadrunner, 1997).
희귀 트랙 모음집이라 수록곡의 질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 것이 좋다.
물론, 세풀투라 매니악에게는 최상은 아니더라도 꽤 흥미를 주는 아이템일 수는 있겠다.
더구나 밴드를 떠나버린 막스 카발레라 Max Cavalera의 흔적이 담겨 있으니 그리 나쁘지는 않다.
"막스의 컴백을 바란다!"는 팬들의 소망을 조금이나마 해소하고 싶었을까?
막스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대신 세풀투라임을 강조하느라 흐릿하게 처리한 것이라는 인상은 거기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조금 어색해보이지 않아?
그렇지만 너바나
Nirvana의 이 싱글 커버는 흐릿하게 처리해 오히려 더 노골적이다.
원래 싱글 커버가 이런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커트 코베인
Kurt Cobain의 사망 이후 얼씨구나 싶어 소속사에서 제작한 싱글 박스셋으로 여섯 장의 기존 싱글을 모은 「Singles」(Geffen, 1995)에서 찾아낸 <Smells Like Teen Spirit>의 커버다.
이 앨범을 발표할 당시의 너바나는 이렇게 흔들리지는 않았을 법하다. 오히려 이 싱글의 히트 이후 지나치게 흔들려서 오히려 옆에서 보는 것이 더 불안할 지경이었던...
싱글을 발표할 당시의 마음이라면 이해하겠지만, 지금은 오히려 이렇게 흔들리는 게 더 노골적으로 보인다.
불안보다는 과도한 자신감 같아 보이니까.
사운드가든
Soundgarden의 이 커버에 대해서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소리를 지르는 저 흐릿한 인물이 에일리언인지 아니면 누군가를 모델로 한 것인지도 모르겠고
왜 이런 커버를 썼는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헤비하고 싶은 시애틀 그런지 밴드... 그렇지만 이제 시애틀 그런지는 죽었음을 알리고 떠나고 싶은 멤버의 절규를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도무지 모를, 그렇지만, 꽤 인상적인 흐릿한 커버.
사실... 제대로 보여줘도 모자랄 시대에 흐릿한 커버를 채택하는 것은 음악에 집중해 달라는 요구인지도 모른다.
넘치는 자신감이지...
실생활에서 흐릿해진다는 건?
글쎄, 그건... 뭐랄까. 아련해진다는 것 아닐까?
어떤 경우가 되었건 흐릿해지고 희미해지는 건... 그다지 즐거운 것은 아닕테지.
잊고 싶어 죽을 지경인데도 잊지 못하는 기억이 아니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