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커버/스토리 [diary edition]

의자 part 2

2006. 8. 28. 01:08
"서 있는 사람은 오시오 나는 빈 의자"라는 노래처럼 의자는 비어 있어도 좋고 비어 있지 않아도 좋다.
앉으라고 만들어놓은 것이 의자, 그는 그저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 할 일을 다하는 셈이다.
뭐, 의자같은 우직함이 있어야 한다거나
의자처럼 투덜거리지 않고 봄여름가을겨울을 끄덕없이 보낼 수 있는 강인함이 있어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는 아니다.

예전에 벡진스키 Zdzislaw Beksinski의 의자에 관한 글을 쓴 적이 있는데, 그때는 오직 벡진스키와 콜라주 Collage라는 밴드의 음반 커버에 관한 이야기였다.
오늘은 별다른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으니 그 때 이야기를 이어 두번째 의자 이야기를 해보자.

벡진스키의 의자는 이랬다.



굉장히 어둡고 불길한 분위기에서 인간을 압도하는 크기의 의자.
하지만 이 그림 속의 의자는 의자의 역할을 충실하게 하고 있다.
빨간 옷을 입은 그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그는 의자에 앉아 깊은 번민 속으로 빠져들어간 상태.


그렇지만 음반 커버 속의 의자는 일반적인 의자의 역할에서 조금 (아니, 어쩌면 많이!) 빗나간 경우가 많다. 스콜피온스 Scorpions에서 활동하던 마이클 솅커가 팀을 떠나 자신의 이름을 걸고 결성한 그룹이 마이클 솅커 그룹 Michael Schenker Group이다.
1980년의 셀프 타이틀 데뷔 앨범 커버 속 의자가 바로 그런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 앨범 커버 속 의자는 "서 있는 사람은 오시오 나는 빈 의자"라고 아무리 꼬드겨도 가기 싫은 의자다.
생각해보라.
이 의자는 마이클 솅커가 경험했던 병원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든다. 누가 이런 의자에 앉고 싶을까...
이런 앨범 커버를 내세운 것은 무슨 이유일까? 지금 생각해보면, 마이클 솅커 그룹의 음악을 들은 사람들은 이런 충격을 경험할 수 있다는 뜻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앨범에 실린 <Lost Horizons>는 지금도 좋아한다. 헤비메틀에서 3/4박자(6/8박자던가?)를 사용했다는 기발한 사운드가 여전히 좋다.



Metallica 「Ride The Lightning」(Megaforce, 1984)

4년 뒤에 메탈리카 Metallica는 마이클 솅커 그룹의 아이디어를 훔쳐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앨범 커버를 만들었다. (아이디어를 훔쳐왔는지, 아니면 하다 보니 똑같은 분위기를 내게 되었는지 아는 바 없다.) 번개를 타고? 그림으로 보면 의자를 타고 아닐까?  음, 좋다. 어쨌든 메탈리카의 의자도 편한 의자가 아니다. 이 앨범 커버의 의도 역시 헤비메틀 밴드들의 말랑말랑한 사운드가 아니라 전기가 쫘르르 흐를 정도로 강렬한 소리를 들려주겠다는 의도겠다.



Devil Doll 「Sacrilegium」(Hurdy Gurdy, 1992))

마이클 솅커 그룹이나 메탈리카에 비한다면 데블 달 Devil Doll의 1992년작 「Sacrilegium」(Hurdy Gurdy) 속 의자는 훨씬 위압적이다.
'신성모독'이라는 앨범 타이틀과 가사만큼 압도적인 그가 앉아 있다. 마치 세상을 다스리는 악의 화신처럼, 아니면 '20세기 소년'의 "친구"처럼.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의자는 선명하다. 누구나 편히 앉을 수 있는 의자는 아니다. 이건 특혜를 받은, 아니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권력을 누리는 자의 의자이니까.

좀 편한 의자는 없을까?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비아 Bia의 앨범 「Carmin」(Saravah, 2003)의 커버를 보자.


Bia 「Carmin」(Saravah, 2003)

아, 혹시 아직까지 비아의 음악을 들어보지 못했다면 오해할 수도 있어 미리 한 마디 하면,
비아는 몸으로 음악을 하는 보컬이 아니라 목으로 음악을 하는 보컬이다.
비아는 브라질 출신의 싱어송라이터다. 브라질의 노래를 다른 나라 언어로 부르거나, 그녀의 음악을 인정한 프랑스의 노래를 브라질어로 노래하기도 하는 아주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보컬이다.
그런데... 이 의자는 너무 작위적이지 않을까?
그래서인지 음반 해설지에는 "브라질 출신의 싱어송라이터 비아의 음악은 파란 하늘, 파란 바다가 있는 언덕에서 빨간 드레스를 입은 채 빨간 카우치에 누워 잠든 자켓 속 정경처럼, 비현실적일만큼 낭만적이고 한가롭고 쓸쓸하다."라고 적어놓았다.
흠... 소파라고 하려고 했더니 카우치라고 해야겠다. 어쨌든 이 의자는 자유로운 영혼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를 담고 있지만 약간 부담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음반 속에는 이보다 훨씬 멋지고 감각적인 사진이 많은데...
비아에게는 편안한 의자일지 모르지만,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불편하다.



Tom McRae <Karaoke Soul>(db records, 2003)

탐 맥리 Tom McRae의 2003년 앨범 「Just Like Blood」(db records, 2003)에서 싱글 커트한 <Karaoke Soul>의 커버는 어떤가.
그리 높지 않은 언덕에 놓인 의자 세 개.
물론 비아의 앨범 커버에서 느꼈던 작위적인 분위기는 여전하지만 역광을 이용한 사진 속 풍경은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준다. 사진은 메리 스캔론 Mary Scanlon이 찍었다.
그 생각이 불길하든, 불행하든, 섬세하든, 아니면 밝고 경쾌하든, 그것은 보는 사람 마음대로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저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이 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 것이다.
그의 노래 만큼.


사진을 찍는 사람들에게 의자는 참 재미있는 피사체다.
아마, 당신도 그런 사진을 찍고 혼자 감탄했을지 모른다.
쏟아지는 비를 흠뻑 맞고도 우산을 펴거나 비를 피할 생각 없이 그대로 맞고 있는 의자,
눈이 가득 쌓인 그 겨울의 의자,
또는 사람은 없고 비둘기나 고양이가 앉아있거나, 아니면 누군지 알지 못하지만 즐거워하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담은 의자.
의자는 비어 있을 때 편해보인다. 그리고, 편해보이는 만큼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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