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짜 커버/스토리

특별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매일 눈을 뜨면 의자에 앉는다.
TV를 볼 때와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항상 그렇다.
TV를 앉아서 본 게 언제였을까? 벽과 벽 사이가 너무 좁아 TV 화면을 정면으로 보려면 어쩔 수 없이 앉아야 했던, 그 지하방 시절 이후는 없었던 것 같다. 아주 좋지 않은 습관이긴 하지만, TV에 매달리지는 않는다. 비디오와 DVD를 틀어놓고 즐겁지 않은 영화를 가끔 보았다.

의자에 앉으면 당연히 컴퓨터를 켜고, 일관성 없이 책상 위에 널부러진 CD를 듣는다.
CD 갈아끼울 때 너무 신경이 쓰인다. 파워가 달리는 것인지, 아니면 메인보드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CD만 넣으면 회전이 시작되다가 컴퓨터가 부팅모드로 가버린다. 아예 파워가 꺼지는 수도 있다. 화면에 뜬 모든 화면을 저장시켜놓고, 그 다음에 '도 아니면 모'의 심정으로 CD를 집어넣는다. 꺼지지 않을 때, 휴- 소리가 날 때도 있다.

컴퓨터를 쓰는 동안 어슬렁거리던 고양이가 무릎 위로 올라오기라도 하면, 곧게 펴거나 꼬았던 다리를 풀고 녀석을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 양반다리를 해야 한다. 시간이 지날 수록 발이 저려오지만, 그래도, 인간보다 조금 더 따뜻한 녀석의 체온이 너무 따뜻하다. 게다가 기분 좋게 그르렁그르렁 거리는 소리를 낼 때면, 하던 일을 멈추고 부드럽게 등을 쓰다듬어준다.

그런 나의 하루.

커버스토리를 쓰겠다고 생각한 것은 2001년 쯤 되었을 게다. 음반 리뷰용 홈페이지도 만들었고, 이제 이 이야기를 쓰자고 생각했는데,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도메인 연장기간을 그냥 지나쳐버렸다. 카운터가 오직 나만의 방문기록으로 채워졌던 것도 이유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오히려 다행이다... 채울 것이 없었을 테니.)


그때 집어들었던 음반이 바로 콜라주 Collage의 「Moonshine」(SI Music, 1994)이다.
1996년에 지구레코드에서 라이선스로 발매한 콜라주의 CD 커버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죽음의 그늘이 드리운 배경 중앙에 놓인 커다란 의자, 그리고 빨간 옷을 입고 의자에 걸터앉은, 거의 해골에 가까운 그의 모습. 야, 이건 정말 아트인걸? 그때 이렇게 생각했을 게다. 콜라주의 음악이 아트롹 또는 네오프로그레시브 롹으로 분류된다는 것도 한몫했다. (이 앨범 이후 존 레논 트리뷰트 앨범을 발표하는 것으로 네오 프로그레시브 롹에서 스스로 멀어졌다.)

폴란드 출신의 밴드가 아트롹을 한다, 그런데 커버도 예술이다, 그럼 이것은 겉과 속이 일치하는 아주아주 멋진 작품인 셈이다. 사실 요즘은 거의 꺼내듣지 않지만, 그땐 참 많이 들었다. 이탈리안 프로그레시브 롹도 시들했고, 거물 밴드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모를 때였다.

확실히 내 시선을 사로잡을만 했다. 그림의 출처는 음악을 위해서 새로 그린 것이 아니라 그때까지 존재도 모르고 있었던 폴란드의 화가이자, 사진작가이자 환상예술가 fantasy artist 즈지스와프 벡진스키 Zdzislaw Beksinski였기 때문이다. '에일리언'의 이미지로 유명한 H.R. 기거 H.R. Giger도 벡진스키의 작업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조금 살펴보면 두 사람의 작업이 꽤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벡진스키가 죽음의 이미지에 가깝다면 기거는 외계인의 이미지가 강하긴 하지만.

단지 콜라주가 폴란드 밴드이기에 폴란드의 예술가 벡진스키의 그림을 사용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린 것인지도 모른다. 여러 아티스트의 앨범 커버로 H.R. 기거의 작품을 사용한 것과 달리 벡진스키의 그림은 콜라주 외에 아직 만나질 못했다. 콜라주는 이 음반 커버로 내 시선을 잡아끄는 것은 성공했다.

요즘 난 벡진스키의 그림 속 의자에 앉은 '그'처럼, 자꾸 의기소침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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