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짜 커버/스토리

처방전

2007. 5. 6. 14:26


오늘의 커버/스토리는 펄프 Pulp의 핵심이었던 자비스 코커 Jarvis Cocker가 발표한 솔로 앨범 「Jarvis」(Rough Trade, 2006)에 관한 이야기.

자비스 코커는 솔로 앨범을 발표하면서 CD 알판에 다음과 같이 처방전을 써놓았다.
[클릭하면 크게 보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앨범 사용법

* 경고 : 마음을 진정시킬 목적이거나 운동할 때 들을 목적이라면 「Jarvis」는 결코 좋은 선택이 아닙니다.

* 앉아서 듣는 것은 상관없지만 무릎 꿇을 필요는 없습니다.

* 한 곡만 떼어나 들을 수는 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듣을 때 가장 좋습니다.

* 오디오의 톤 컨트롤을 건드리지 말고 원래 상태로 들으세요. 로우파이도 아니고 하이파이도 아닌, (이 앨범을 위해 최적화시킨) 나만의 사운드 MyFi거든요. 당신도 좋아했으면 좋겠습니다.

* 아무도 듣지 않는 노래는 노래가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 앨범을 들어줘서 고맙습니다.

* 참, 잊을 뻔 했네요. 항상 이야기하는데, 음악 들을 때는 글자 같은 거 읽지말고 음악만 들어주세요.

여기서 소리를 조절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들으라는 항목은 X-Bass니 수퍼 베이스 등등의 이름을 붙여 강제로 베이스를 올리는 기능이나, 우퍼를 이용해 쿵쿵 몸을 건드려주는 베이스를 만들어내거나, treble이라고 적어놓은 고음쪽 소리를 높이는 경우처럼 변형시키지 말라는 주문이다. 아티스트들은 프로듀서와 함께 가장 완성된 사운드로 만들어내고 그것을 CD에 담았으니 그 소리를 변형시키는 것을 좋아할 리 없다. 고가의 오디오는 톤 컨트롤이 아예 없다. 말하자면 처음 레코딩 상태 그대로 감상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가끔은 생각 이상의 고가 오디오로 음악을 듣다가 정말 후진 레코딩!이라며 싸잡아 대중음악의 사운드를 경멸하는 경우도 생긴다. 자비스 코커는 고가의 오디오를 사용하란 의미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소리를 바꾸지 말고 들어달라는 이야기이다. "아무도 듣지 않는 노래는 노래가 아니"라는 이야기는 그런 의미에서 더 중요하다.

어쨌든 자비스 코커의 처방전은 그럭저럭 자상한 편이다.




하지만 스피리추얼라이즈드 Spiritualized의 앨범 「Ladies And Gentlemen We Are Floating In Space」(Dedicated/Arista, 1997)의 처방전은 상상을 초월한다.
앨범 커버에서 이미 힌트를 주고 있다. "한 알에 70분 1 tablet 70 min"이라니...

이 앨범은 800장 한정으로 진짜 약처럼 CD를 포장한 리미티드 에디션이 있다.
일본의 한 중고음반 사이트(인지 경매 사이트인지 일본어라 확인하지는 못했지만...)에 그 이미지가 있다.
현재 가격은 무려 14700엔. [확인해보기]

하지만 일반 주얼케이스 버전으로도 충분히 그 느낌을 받을 수 있다.
3단으로 펼쳐지는 리플릿이 전부 처방전이다.




BMG를 통해 국내에도 이 앨범이 공개되었는데, 그때 한글 라이너 노트에 간단하게 번역해놓은 것이 있어서 옮겨본다.

* 스피리추얼라이즈는?
감정과 영혼을 치료하는 데 쓰입니다.

*스피리추얼라이즈드를 하루에 두 번 이상 처방하려면?
전문가의 처방을 먼저 받으시기 바랍니다.

* 스피리추얼라이즈드 처방시 다른 주의점은?
다른 약과 혼용하지 마시고 운전이나 위험한 기계의 작동시 복용은 음주와 동일한 위험을 수반하니 가급적 삼가해주기 바랍니다.

* 처방시기를 놓쳤을 경우에는?
기억나는 즉시 다시 드시기 바랍니다.

* 스피리추얼라이즈드 치료를 갑자기 중단하면?
수면장애, 우울증, 신경과민, 도보장애 등이 유발될 수 있으며, 심할 경우 불안, 환각, 흥분, 수면장애, 기억상실증 등이 생길 수 있습니다.

* 스피리추얼라이즈드를 다른 치료제와 함께 먹었을 때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은?
정신착란, 중독증세, 환각, 환청, 중독성 도취감, 식은땀, 헛소리, 말더듬, 망각, 부조화, 마비, 기억력 감퇴, 충혈, 정신분열, 정서불안, 일시적 마비, 안구경련, 행복감, 목적상실, 무기력, 현기증, 시각장애, 심장경련, 방향감각 상실, 혼돈, 성격변화, 부정맥, 그리고 성욕의 변화가 올 수 있습니다.

대단한 처방전이다.
사실 스피리추얼라이즈드의 음악은, 믿거나 말거나지만, 약을 먹은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약을 먹고 들었을 때 가장 좋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경험은 아직 없고,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어차피 스피리추얼라이즈드는 이 앨범을 "귀에만 투약하라 For aural administration only"고 했으니, 처방전을 따르면 그 느낌이 올 수도 있겠다.


약은 뮤지션에게,
진료도 뮤지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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