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렇듯,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루이스 캐롤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어떻게 끝나지? 그냥 꿈으로, 꿈에서 깨어나는 것으로 끝나던가?
책이든, 영화든, 한번 보고 기억하는 사람들이 부럽다. 그들의 예민하고 섬세한 감각이 부럽다. 내 기억력이 이리 엉망인 이유는 기억의 소재와, 내용과, 방식과, 입장이 달라 기억 강도가 달라 그렇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오늘 커버/스토리는 기억에 관한 이야기이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이야기이며, 앨리스라고 추측할만한 소녀들이 등장하는 이야기로 정했다.
오늘 커버/스토리는 기억에 관한 이야기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이야기도 아니다.
그저 앨리스일 것이라 추측하는, 소녀들의 상상세계를 적어보기로 했다.
땅구멍으로 들어가는 앨리스처럼 시저 시스터스 Scissor Sisters의 데뷔 앨범 [Scissor Sisters] 속 소녀는 이상한 입구를 거쳐 도시로 들어가려 한다. 환락의 도시.
뮤지션 사진도 자주 찍는 타라 다비 Tara Darby가 소녀 사진을 찍고 스푸키Spooky가 일러스트를 그려 넣어 완성한 커버.
이상한 나라로 들어가는 앨리스라고 치자.
케이트 부시의 앨범 [Never For Ever] 커버 속 소녀는 그야말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다.
Q 매거진에서 발행한 'The 100 Best Record Covers Of All Time'에 이 앨범을 수록했는데, 앨범 커버에 등장하는 수많은 생명체들을 거론한 부분만 가져와 봤다.
박쥐 다섯 마리. 새 열세 마리. 나비 일곱 마리. 어류(악마 형상을 한 것은 제외)는 몸에 반점이 있는 고기 두 마리와 고래 한 마리, 동물은 커다란 귀를 가진 개미핱기 한 마리와 고양이 두 마리, 개 한 마리, 사자 한 마리. 뱀은 두 마리인데 한 마리는 독기를 품고 악어이빨이고 한 마리는 겁나게 큰 게 꼭 용처럼 생겼다. 파충류는 음표를 옮기는 정체불명의 생물체 한 마리, 악어 한 마리, 그리고 역시 정체불명의 파충류 두 마리. 악마는 다양한 형상을 하고 있는데 대충 30명쯤(악마의 숫자는 명이 맞나? 어쨌든 30). 인간은 두 명(인데, 거의 머리만 보임). - The 100 Best Record Covers, p.110)
이 앨범 커버 컨셉트는 케이트 부시가 제시했는데, 대충 이야기를 들은 닉 프라이스 Nick Price가 멋진 일러스트로 완성시켰다. 케이트 부시는 스스로 앨리스가 되어 원더랜드를 만들어내고 싶어했을까.
케이트 부시의 [Never For Ever] 커버아트와 관련해 한번쯤 이야기가 나올 법한테, 아직 언급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없다. 뭐, 서로 연관성이 없다고 생각해서 그랬겠지만, 이츠 어 뷰티풀 데이가 샌프란시스코 사이키델릭 무브먼트 시기인 1969년에 발표한 셀프타이틀 앨범 「It's A Beautiful Day」(Columbia, 1969) 커버와 분명 닮았다.
또 하나 재미있는 그림이 있다.
이 음반사 로고도 이츠 어 뷰티풀 데이의 앨범 커버아트와 연관성을 따져볼 수 있다. 앨범 커버 속 여인은 두 손 다 머리 뒤로 넘겨 깍지를 끼고 있지만, 이 로고에서는 왼손을 이마에 대어 햇빛을 가리고 있어 '분명히' 차이가 있다. 눈부심을 방지하면서 더 멀리 보기 위해. 그렇지만 영향을 받은 걸 부인하긴 어렵다고 본다.
케이트 부시의 앨범 커버 속 여인을 앨리스라고 봐주기로 했으니, 이 앨범도 앨리스라고 보기로 하자. 왜냐하면, 두 앨범 커버아트 속에는 고래 한 마리와 소녀가 있기 때문이다. (조금 어색한 동일시인가... 나중에 고래 이야기를 할 때 다시 꺼내놓으려고 한다.)
도나웨일은 무슨 뜻일까.
"도나(Dona)는 ‘여성/부인’의 존칭의 의미가 있고요. 여성의 섬세하고 따뜻하고 아련한.. 느낌이 좋았습니다. 웨일(Whale)은 고래입니다. 일단 고래를 좋아해요. 바다도 좋아하고요. 신비롭고 아름답고 바라만 봐도 어떤 위안을 얻는, 고래는 예전엔 육상동물이었지만 어떠한 이유로 현재엔 유일하게 바다 깊은 곳에서 살고 있는 포유류로써 가장 성공적으로 잘 적응하고 진화한 동물이라고 해요. 또한 초음파를 발사하여 먼 거리의 물체를 확인하거나 대화를 나누죠. 도나웨일도 음악이라는 매개체로 대화를 나누고, 음악을 통해 이 세상에 잘 적응하며 지금보다 나은 모습으로 진화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도나웨일’이라는 이름을 짓게 되었습니다."
- [MPLUG가 진행한 도나웨일 인터뷰 전문 읽으러 가기] ( ※ 데드링크임)
레이블에서는 도나웨일을 "아지랑이 가득한 날의 아름답고 짧은 이야기. 아련한 보컬 사운드와 간결한 록 사운드"라고 밝혔다. 앨범 커버는 lemarr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일러스트레이터 조성흠의 작품.
카츠히코 마에다 Katsuhiko Maeda의 원맨프로젝트 밴드. 일본 감성과 일본 일렉트로닉과 일본 노이즈를 영미 감성과 영미 일렉트로닉과 영미 노이즈에 섞어 난해하다. 음악을 판단하기 어려워 해설지를 슬쩍 인용한다. 이 앨범은 "독과 악으로 넘쳐나는 환상적인 이야기를 에이펙스 트윈과 시우르 로스, 그리고 마치 디즈니표 애니메이션 사운드트랙을 한데 믹스해 놓았다는 평가를 일본에서 얻었다".
앨범 커버는 에츠코 후카야 etusko fukaya의 에칭 작품. 에칭의 섬세한 표현력은 이 커버의 작은 곳까지 시선을 가게 한다. 나비와 물고기와 뱀과, 고양이... 케이트 부시의 앨범 커버아트 분석처럼 누가 이 작품에 등장하는 동물들을 하나하나 분석해 주었으면 좋겠다.
* front cover artwork : Len Rooney Creative | Annihilator logo : Len Rooney Creative | front cover concept : Feet and Jeff | design : Jeff Faville
'앨리스'라는 단어에 집착하면 오늘 주제에 가장 가깝다.
하지만 커버 이미지나 앨범 수록곡 <Alison Hell>을 보면 앨리스의 지옥 체험 같은 공포체험이다.
다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앨범 커버 이미지를 봤는데, 이상하게 모두 주제에 맞는 것 같으면서도 아니다.
아무래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다시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