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커버/스토리 [diary edition]

앨범 커버에 개가 등장하는 앨범 치고 졸작이 없다는 통설은 언제부터 만들어졌는지 모르지만, 앨범 커버아트를 다루는 서적에서도 그 이야기는 나온다. 언젠가 모조 매거진은 한달에 한번 주제가 있는 앨범 커버 세 장을 보여주는 토막기사에서 개가 앨범 커버에 등장하는 앨범을 소개한 적이 있다. 거기 자니 캐시 Johnny Cash의 「American Recordings」(American, 1994)가 있었던가?

Johnny Cash 「American Recordings」(American, 1994)



앨범 커버에 개가 있는 앨범중에 볼 때마다 찜찜한 커버가 하나 있다. 앨리스 인 체인스 Alice In Chains가 1995년에 발표한 셀프 타이틀 앨범 「Alice In Chains」(Columbia, 1995)다. 무척 선해 보이는 개, 그렇지만 세 개의 다리를 가진 그 개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음악도 자주 듣지 않았다. 무슨 노래가 있었던가?


Alice In Chains [Alice In Chains] (Columbia, 1995)



생각해보면 앨범 커버에 개가 등장하는 작품 치고 좋지 않았던 건 그다지 없었다. 마치 그렇게 믿도록 누군가가 강요하는 것 같지만, 그냥 그렇게 믿기로 했다. 내가 믿거나 믿지 않거나 바뀌는 건 없으니까. 그리고 멍청한 앨범을 만들어보겠다고 결심하는 음악인은 없을 테니까.


최근 앨범 몇 개가 약속한 걸까 싶게 앨범 커버에 개를 담았다.
이전처럼, 개를 앨범 커버에 등장시켜 성공한, 믿을  수 없지만 믿음직한, 성공신화를 이어가고 싶었을까.





Norah Jones [The Fall] (Blue Note, 2009)
노라 존스의 네 번째 정규 앨범. 개의 종류는 잘 모르니까 넘어가기로 하고(만약 고양이였어도 마찬가지였을 테지만) 무엇보다 노라 존스가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어서 볼 때마다 기분이 좋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색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어도 잘 어울리는 전체의 색감도 좋다. 이 앨범은 지금까지 알고 있던 노라 존스의 음악과 많이 다르다. 첫 싱글 <Chasing Pirates>를 들으면 기복이 없다. 무척 밋밋하다. 자극이 없다. 그렇다고 편하게 들리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난 이 곡이 무척 좋다. 밋밋하게 들려도 여유가 있어서 좋다. 노라 존스의 이번 앨범은 2009년 나의 베스트 10에 들어가는 앨범이다. 밋밋한 음악이 얼마나 묘한 매력을 갖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여기서 잠깐!


Norah Jones <Chasing Pirates>, from the album [The Fall])


정규 앨범 커버 속에는 단 한마리의 개가 있지만, <Chasing Pirates> 싱글의 커버를 보면 그야말로 개판(!)이다. 개 종류는 여전히 모르지만 앨범보다 싱글 커버가 더 따뜻해보인다. 노라 존스의 표정도 훨씬 좋다.
이래저래 마음에 드는 커버와 음악이다. 사람도, 개도, 모두 착해보인다.




Sting 「If On A Winter's Night...」(Decca, 2009)

사실 요즘 스팅의 음악이 자꾸 중세로 돌아가고 있어서 좋은 듯 좋지 않은 듯 하지만, 그래도 팝 싱글 따위로 인기를 유지하려 하지 않는 자세 만큼은 믿음직스럽다. 내가 믿는다고 해서 스팅이 '아, 계속 중세를 탐구해도 되겠구나!' 생각하지는 않겠지만, 가벼운 히트곡 하나 만들어서 명성을 이어갈 때는 이미 지난 것 같다. 이 앨범은 스팅의 겨울 앨범. 오래된 자장가, 캐럴, 그리고 겨울의 분위기를 담은 무겁고 개인적인 겨울음악 모음집이다. 올뮤직가이드에서는 이 앨범이 나오자마자 별 다섯개 만점에 별 한개반을 땅땅 찍어주었다. (그러다 은근슬쩍 별 두개로 올려놓더니, 2018년 5월 현재 시점에서 확인해보니 세 개가 되었다... 흠.)

아, 오늘도 음악 이야기가 아니라 개 이야기인데 옆길로 샜다. 한겨울의 산속인데, 개 한마리가 옆에 따라붙어서 역시 따뜻해보인다.




Weezer 「Raditude」(Interscope, 2009)

위저의 새 앨범 커버.
저 녀석 아주 신났다. 멤버들 마음도 그럴까?
이상하게 난 위저가 지금까지 발표한 앨범 중에서 「Weezer」라는 타이틀을 단 (세 장의) 앨범만 좋아한다. 이 앨범도 호평 일색이지만 거의 들을 것 같지는 않다. 지난번 지산밸리 록 페스티벌에서 한국어로 개그한 것이 크다. (여담이지만, 한국어로 멘트를 날린 수많은 밴드 가운데 진심이 느껴졌던 건 2007년인가 2008년인가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 출연한 라르크앙시엘 L'Arc~en~Ciel 뿐이다.) 위저의 이 앨범은 그냥 디스코그래피 완성을 위해 채워놓았을 뿐.




Julian Casablancas 「Phrazes For The Young」(RCA, 2009)

스트록스 The Strokes의 앨범이 안나오는 사이에 이걸로 대리만족하라며 발표한 앨범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영국에서는 호평이다. 스트록스의 핵심인 줄리언 카사블랑카스의 첫 솔로 앨범이다. 스트록스야 워낙 잘 나가니까 내가 관심을 가지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을테고, 덕분에 서로 관심없어도 각자 살아갈 수 있어서 좋다. 난 스트록스의 데뷔 앨범만 좋아한다.
앨범 커버를 보면서, 이 친구, 센스있군!! 이렇게 생각했다면 뭔가 아는 게 분명하다. 줄리언 카사블랑카스 이야기가 아니다. 책상 위의 축음기와 그의 발 옆에 있는 개 이야기다. 자기의 솔로 앨범을 발표한 RCA의 아주 오래된 이야기를 재미있게 복원시켰다. 센스로만 따진다면, 90점 이상은 줄 수 있다. 저 개는 니퍼 Nipper라는 이름을 가진 개로, RCA 빅터의 트레이드마크다. 그 개와 회사 로고에 대한 오마주인 셈이다. 이쯤 해서 스트록스와 줄리언 카사블랑카스의 앨범이 어느 레이블에서 나왔는지 확인하는 것은 필수다.



최근에 공개된 앨범 가운데 개판인 앨범을 살펴봤다.
개판이라도 기분 나쁘지 않다.
앨범 커버에 개가 등장하면 그 앨범은 명작이라지 않은가. 이중에서 어떤 게 명작 대접을 받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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