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는 일은?
한동안 컴퓨터 끄기였고,
요즘은 조금 더 나아가 컴퓨터 끄고 누워 DMB 잠깐 보기다.
2년 전까지 핸드폰 게임 고스톱 하기였다. 고스톱이 너무나 재미가 없어서 버튼을 누르다 보면 어느 순간 잠들어버린다. 훌륭한 수면제였다.
될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후에 뛰어난 평가를 받는 뮤지션들은 자기 전까지 악기를 만지작거렸다. 주로 기타였다.
어쿠스틱 기타는 증폭되지 않기 때문에 띵띵거리기 좋고
앰프에 연결하지 않은 일렉트릭 기타는 어쿠스틱 기타보다 소리가 더 작으니까 침대에서 가지고 놀기 딱 좋다.
Gary Moore 「Still Got The Blues」(Virgin, 1990)
뜬금없이 헤비메틀에서 블루스로 방향을 바꿨지만, 게리 무어가 이 앨범을 발표한 이후 다시 한번 블루스 음반을 뒤적거렸던 음악 팬들이 많았을 것 같다. 설왕설래했던 앨범이었다.
이게 무슨 블루스 앨범이냐 같은 이야기까지 나왔지만 2년 뒤에 「After Hours」를 발표했을 때에는 게리 무어가 진짜 블루스로 방향을 바꿨구나 싶었다. 하지만 블루스로 세번째가 되는 「Blues For Greeny」(1995)에 이르자 난 더이상 게리 무어의 블루스를 듣지 않았다. 똑같은 걸 세 번이나 계속 하는 건 지겹다. 처음부터 블루스였다면 당연하다고 하겠지만, 게리 무어는 헤비메틀에 최적화된 기타리스트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피터 그린 트리뷰트 앨범은 아직도 듣지 않았다.
Eric Clapton 「Backless」(Ploydor, 1978)
게리 무어의 앨범 커버에 영향을 준 것이 분명한 에릭 클랩튼의 1978년 앨범.
커버에서 보는 에릭 클랩튼은 말 그대로 고독한 기타맨이었다.
이듬해 패티 보이드와 결혼하게 되지만, 이 무렵 에릭 클랩튼의 진짜 애인은 술
alcohol이었다. (결혼 이후에도 술은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는 원흉이 된다. 후에 에릭 클랩튼이 치료센터를 개원한 것도 이때 겪은 지독한 중독이 영향을 미쳤다. 중독, 무엇에 중독되는지 각각 다르겠지만, 이거 좋아할 게 못된다.)
The Kills 「Midnight Boom」(Domino, 2008)
난 여전히 킬스의 음악에서 매력을 찾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프로젝트 밴드 데드 웨더
Dead Weaher에서 곡을 쓰고 노래 부르는 킬스의 보컬이자 기타리스트 앨리슨 모스하트
Alison Mosshart를 더 좋아한다.
좋아하는 음악 스타일의 차이일 뿐, 킬스나 데드 웨더나 좋아죽을 정도는 아니지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주저하지 않고 데드 웨더다.
킬스 역시 침대에서 기타를 뚱땅거리고 있는 모습을 앨범 커버에 담았다.
될성부른 나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거나, 아직 될성부른 나무에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떡잎은 된다는 걸 보여주려면 이렇게 침대에서 기타를 연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좋다.
자기 직전까지 기타를 만지작거리며 연주하고 작곡했는데 성공하지 못했다면, 그건 뮤지션의 문제가 아니라 뮤직 비즈니스의 문제라고 이야기해주면 된다.
경우에 따라 데미언 라이스
Damien Rice처럼 아예 침실을 스튜디오 삼아 녹음하게 되면 엄청난 성공을 거둘 수도 있다. 단, 침실이라는 공간과 침대라는 사물, 그리고 연주하고 노래하는 것 밖에 할 게 없는 뮤지션이라면...... 생각해보라. 이 분위기에서 노래를 한다고 치면, 즐거워 죽겠어요보다는 외로워 못살겠어요를 노래하는 게 천배는 더 쉽다.
나에게 침대는 "집이 아님"을 상기시켜주는 사물이다.
내가 될성부른 나무로 자라지 못한 이유는 침대에서 생활한 적이 없어서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