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커버/스토리 [diary edition]

후광

2016. 3. 17. 03:50

'기억'은 흥미를 끄는 소재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이야깃거리가 달리면 곧바로 기억상실을 꺼내든다. 핵심 기억만 잊는 기억상실도 있고, 아주 짧은 기간 기억만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 바로 몇 분 전 기억을 지우기 위해 번쩍 섬광을 보여준다거나, 기억의 일부를 기계로 지우는 장면도 SF영화에서 자주 봤다. 사실관계를 따지는 청문회 같은 자리에서는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기억나지 않는다....... 사실, 세상의 모든 걸 기억하고 싶어도 모두 기억할 수 없다. 잊고 싶어도 잊지 못하는 게 있고, 항상 기억하고 있다가도 필요한 순간에 완전히 사라지기도 한다. 나는 뉴 래디컬스 New Radicals의 이 앨범을 기억해야 할 순간에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한두번이 아니다.

그래서 이번 포스팅은 이제 그럴 일이 없길 바라는 마음에서 작성한다. 기억이 나지 않는 순간 '내 블로그를 검색하면 있다!'고 생각하게끔. 그런데..... 블로그에서 뭘 검색해야 하는지 그걸 기억하지 못한다면 말짱 도루묵? 태그에 뉴 래디컬스 대신에 "뭐지, 뭘까, 기억, 망각, 기억력 점차 감소, 상실" 이런 내용을 잔뜩 집어넣어둘까? 가장 좋은 건 "검색"일지도 모르겠다. 검색해보는데, 검색이란 단어를 검색하면 뉴 래디컬스가 나올 테니까. 아, 정말 멋진 발상이다. 태그에 반드시 '검색'을 집어넣기로 하자.



New Radicals 「Maybe You've Been Brainwashed Too」(MCA, 1998)

응? 앨범 제목이 "New Radicals"가 아니었어? 왜 뉴 래디컬스가 기억해야할 순간에는 기억나지 않았던 건지 드디어 이유를 알 것 같다. 제목이라도 제대로 적어놓았다면 어쩌면 쉽게 기억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이 글을 쓰면서야 앨범 제목을 다시 본다. 이 앨범을 오랫동안 잊어버리라고 스스로 세뇌했던 모양이다.

난 뉴 래디컬스의 열렬한 팬은 아니다. 이 앨범은 (지금은 연락이 끊어진) 그가 "꼭 들어보라"며 권해주었던 음반이었다. 그저, "좋아요"라는 한 마디 평이 이 앨범에 관한 설명의 전부였다. 요즘은 유튜브를 폴짝폴짝 뛰어다니거나 적은 비용을 들여 무제한 스트리밍 서비스로 들어보겠지만, 그 무렵엔 무조건 샀다. 내 소유가 아닌 음반은 음반이 아니었으니까. 당연히 샀지만 금세 잊고 말았다.

사실 이 앨범을 커버/스토리에 쓰려고 꽤 오랫동안 생각해왔다. 주제는... (이 포스팅 제목을 봤으면) "후광!"이라고 말하는 순간 띵똥~ 음이 울려퍼졌겠지만, 처음에는, "신발!"이었다. 음반 커버에 유명 브랜드 신발이 종종 올라오고 있어서 그걸 묶어 소개하려던 참. 하지만 뉴 래디컬스의 음반 커버아트 속 신발이 뭔지 아직 모른다. 그래서 방향을 바꾼 게 "후광"이다. (후광이 없었다면, 모자가 주제가 되었을 게다. 버브 The Verve의 「Urban Hymns」(Virgin, 1997) 앨범 커버에 있는 그런 모자.



Jamiroquai 「A Funk Odyssey」(Epic, 2001)

아이언 메이든 Iron Maiden의 에디 Eddie가 헤비메틀 최고의 캐릭터라면, 애시드 재즈 최고의 캐릭터는 자미로콰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쉽게도 이 앨범에는 자미로콰이를 상징하는 그 캐릭터가 없다. 한때 자미로콰이의 핵심 제이 케이 Jay Kay가 활동중단을 선언하기도 했지만 긴 공백을 넘어 지금은 다시 활동중이다. 워낙 행복한 음악을 하는 밴드라 안티 팬들이 거의 없다는 것도 장수의 원인이겠다. 클럽을 상징하는 미러볼을 대체한 레이저 조명이 후광처럼 빛나는 앨범 커버. 오늘 주제에 딱이다.



Sergio Mendes 「Timeless」(Concord, 2006)

브라질 팝의 거장 세르지오 멘데스의 2006년 앨범. 미국 팝/힙합 프로듀서 윌아이엠 will.i.am과 함께 작업한 앨범이다. 스티비 원더 Stevie Wonder를 비롯한 네오소울, R&B, 힙합 아티스트와 함께 브라질의 고전과 참여 아티스트들의 최신 음악을 고루 섞어 즐거움을 준 앨범. 폭발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성공한 시도였다고 판단했는지 몇 년 뒤에 여기 참여한 아티스트들을 다시 불러모아 비슷한 앨범 「Magic」(Sony, 2014)을 발표하기도 했다. 어.... 갑자기 앨범 소개로 빠져버렸다. 주제인 후광으로 돌아오면 이 앨범 커버를 디자인한 롤랜드 영 Roland Young은 1971년에 발표한 세르지오 멘데스와 그의 그룹 브라질 66 Sergio Mendes & Brazil 66의 앨범 「Pais Tropical」부터 인연을 맺은 아트 디렉터.


여기서 잠깐!






Gilberto Gil「Giberto Gil」(Philps, 1968)

이 앨범은 어떤가.

세르지오 멘데스와 같은 브라질의 거장으로, 문화부장관을 역임하기도 했던 질베르투 질의 1968년 앨범이다. 세르지오 멘데스의 앨범 커버를 담당한 롤랜드 영이 혹시 이 앨범 커버에 영향을 받은 건 아닐까?

세르지오 멘데스의 앨범 커버와 이 커버는 구도와 색채가 비슷하다. 하지만 두 사람의 앨범 커버에 사용한 핵심 컬러 초록과 노랑은 브라질 국기의 핵심 색이기도 하다. 그러니 둘을 억지로 나란히 엮어놓을 필요는 없다. 그저 그런 느낌이 든다는 정도면 충분하다. 괜한 여기서 잠깐이었나? 이 앨범 역시 후광이라는 오늘의 주제에 맞는 앨범 커버이니 굳이 박스로 따로 뺄 필요가 없었다. 그렇지만 바꾼 블로그 스킨에서 구현할 수 있는 페이지 디자인을 위해서 한번 해봤다. 여기서 잠깐!이라는 글자 앞에서 빨간색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경광등, 멋지지 않은가. (모바일에서는 안보인다.)




휴, 오늘의 글은 여기서에서 끝내야겠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처음에는 기억에서 시작해 뉴 래디컬스로 이어지다가 마지막 앨범 커버 두 장에서 주제와 소재가 막 뒤죽박죽 된 것 같다. 오랜만에 커버/스토리라 그런가...... 하긴, 요즘 내가 자주 오락가락하는 편이라 삶의 반영이라고 둘러대기로 하자. 아, 끝내기 전에 오늘의 태그로 "검색"을 추가하기, 요건 잊지 말자. 이번 커버/스토리의 진정한 주제니까.


공유하기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naver 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