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전 이맘때.
작은 CD장에 있던 CD는 이미 박스에 담아놓았다. 하지만 큰 CD장은 그대로 두었다. ABC 순으로 정리해놓은 큰 CD장 4개를 현재 상태대로 그대로 옮겨주는 조건이 그 무렵 나의 포장이사 계약 핵심사항이었다. 무질서하게 흩어놓고 다시 꽂는 일은 정말 하기 싫었다.
고양이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려고 하지 않았다. 알려주지도 않았다. 이사는 확정되어 있었으니까. 그 무렵 살던 곳은 지하철 종착역 부근이었다. 여기에서 가장 먼 곳이면 반대쪽 종점?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그렇게 되었다. x호선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이사했다.
그날, 약간 추웠나? 앞으로 살 일이 걱정되어 약간 떨었나? 둘 다?
이사는 큰 문제 없이 끝났다. 가구는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짐은 그냥 방에 풀어놓았다. 이삿짐 나르는 분들은 정말 편했을 게다. CD는 이사오기 전에 이미 1백장짜리 박스들에 다 담아놓았다. 사진처럼, 그냥 방바닥에 풀어놓고 나면 끝. 책들과 음반들. 그게 그 무렵 내 짐의 거의 전부였다. 내 옆에는 고양이 두 녀석.
큰 CD장 네 개는 작은 방 벽에 붙여놓았고
이제 막 세살이 된 둘째 녀석은 좋아하는 의자에 앉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지. 낯설었을 테지. 적응해야지.
이 무렵 막 네 살이 된 큰 녀석. 가장 좋아하는 자리인 CRT 모니터 위에 앉아 있는 녀석 표정도...... 좋지 않다. 이사 스트레스가 정말 심했다. 어떻게 아냐고? 창밖에서 트럭 소리만 나면 숨느라 정신을 못차렸다. 그게 이후 평생을 갔다.....
MBC 소속이었던가? 손석희 아나운서.
뉴스데스크인가 했는데, 흐릿한 글씨를 보니 100분토론이다.
TV 안테나선을 꽂았는데 화면이 이랬다. 난청지역이 아닐텐데 이상했다. 케이블을 달아야만 제대로 볼 수 있는 서울도 있나... 그래서 케이블 TV를 신청했느냐고? 아니, 지금까지 그냥 이 상태다. 마지막으로 TV를 켠 게 3년 전쯤 같다. 이 흐릿한 TV를 꼭 켜던 시간이 있었는데, 지금 무척 인기가 높다는 '보니하니'를 할 때였다. 이쪽으로 이사온 그 날 이후 나만의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11년 전의 '보니하니'를 거의 매일 봤다.
11년전.
그러니까, 이게 모두 2005년 3월 10일 전후의 일이다.
11년 후.
짐은 열배 정도 불었다고 볼 수 있겠고 (아아, CD와 책이 열 배 불어난 게 아니라 없던 가구를 들여놨기 때문에 늘어난 짐의 총량으로 따져서 열 배다.)
큰 고양이는 열다섯살을 네 달 남기고 무지개다리를 건넜고,
손석희 아나운서는 JTBC에서 뉴스를 진행하고 있고.
11년이나 지났는데,
나는...... 달라진 게 거의 없다. 그래서 심각하게 우울해지는 건 아닌데, 좋지는 않다. 재건축이 예정대로 진행되면 올해에는 이사를 해야 하는데, 예정대로 될까? 어디로 갈까? 그러면 나도 조금 달라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