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커버/스토리 [diary edition]

 바로 앞 글에서 사막 이야기를 조금 했는데, 이번에는 질질 끌지 말고 말 나온 김에 바로 시작하자고 마음 먹었다. 그런데... 우연히 블로그를 뒤적거리다 이미 몇 년 전에 사막 관련 커버/스토리를 쓰겠다고 적어놓은 글을 발견했다. 맙소사... 정말 게으르네. 하긴, 최근 글도 몇 달 만에 쓴 거라 게으름에 대해 변명거리가 없다.

 

Sick Puppies 「Connect」(Capitol, 2013)

이 앨범에 관해 중얼거리다 사막 이야기를 꺼냈다. 보자. 그때 뭐라 적었는지.

대개 사막을 커버아트에 등장시킬 때는 크게 세 가지 경향이 있다. 1. 황량한 사막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 무미건조한 심성을 드러내거나, 2. 흑백사진으로 사막의 황량함을 예술로 승화시키거나 3. 이 앨범처럼 사막은 사막인데 사막답지 않은 물체나 사람을 통해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아트로 만들어내기

그러니까, 식 퍼피스 Sick Puppies의 앨범 커버아트는 사막에서 아트를 선사한 거란 뜻이겠다. 생각해보라. 사막에서 우산이라니. 이런 우스꽝스러운 설정부터 아트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가. 만약 조금 더 아트의 아우라를 뿜어내려고 작정했다면 (식 퍼피의 멤버인) 저 여인의 옷부터 없앴을 게다.

무슨 망발이냐고?

 

Rush [Hemispheres] (Mercury, 1978)

* Hugh Syme – Graphics, Art direction | Bob King – Art direction

바로 앞 글에서 '사막' 하면 바로 떠오르는, 사막 이미지를 아트로 발전시킨, 앨범으로 꼽았던 러시 Rush의 앨범이다. 휴 심 Hugh Syme은 그동안 이 블로그에 몇 번 등장했는데, 핑크 플로이드의 힙노시스가 했던 작업과 흡사한 부분이 많다. (가끔 힙노시스?라는 의문이 든 앨범 커버아트가 휴 심의 작품일 때가 많았다. 이런 경험은 나 말고도 여럿일 게다.) 휴 심은 러시의 앨범 커버를 통해 사막을 황량한 이미지가 아닌 새로운 차원의 공간으로 만들어냈다. (보라. 벗은 것도 이미지에 굉장한 플러스 요인이 되었다.)

 

from the album [Wish You Were Here] (Harvest, 1975)
from the album [Wish You Were Here] (Harvest, 1975)

*  Design, Photography By – Hipgnosis

핑크 플로이드 Pink Floyd는 어떤가. 커버아트를 담당한 힙노시스 팀은 사막 이미지를 음반 커버 전면에 드러내지는 않았다. 대신 이너 슬리브에서 강렬한 사막 이미지를 선보인다. 여기서는 포인트가 양복이다. 사막에서 양복이라니!

 

Nick Murphy [Run Fast Sleep Naked] (Future, 2019)

앞선 글에서 언급한  닉 머피 Nick Murphy의 앨범이다. 양복! 맞다, 양복이다. 대신 그는 왜 뛸까...라는 의문이 들도록 스토리를 만들어가고 있다. 사막 이미지에 영화 같은 스토리를 집어넣어 절반은 성공했다. 왜 절반인가 묻는다면... "사막 이미지에 영화 같은 스토리를 집어넣었다. 그런데 그 다음에 떠오르는 건 무언가?"라고 되묻겠다. 없지 않은가. 이미지로 준 충격이 음악이 주는 충격과 어울릴 때 커버아트의 역할은 200% 증가하는 법. 그게 없어 아쉽다.

 

그럼 다른 사막은 어떤가.

 

Camel [Rajaz] (Camel Productions, 1999)

* Design by Greg Welsh

밴드 이름부터 사막과 연관이 있는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카멜 Camel의 열세 번째 정규 앨범 [Rajaz]다. 재미있게도 카멜의 앨범 커버아트에 낙타가 등장한 적은 몇 번 있지만 사막 이미지를 담은 건 이게 처음이다. 1973년에 첫 번째 정규 앨범을 발표했으니 거의 30년만에 사막이다. 결국 카멜은 낙타가 필요했을 뿐, 사막은 필요없었다는 말이 되겠다. 이 사례는 커버아트 역사에서 무척 흥미로운 일이 될 수도 있다. 이 앨범 커버아트의 포인트는 사막을 건너는 낙타를 담고 있긴 하지만 정작 중요하게 묘사한 건 낙타 그림자와 사막 그림자가 어울려 기타줄 같은 느낌을 주도록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는 앨범을 주도한 밴드의 기타리스트 앤드류 레이티머 Andrew Latimer의 입김이 있었거나 디자이너가 그의 존재감을 부각시켜주려 한 게 분명하다.

추측만 하지 말고 증거를? 이거면 되려나?

 

Sirrah [Did Tomorrow Come...] (Music For Nations, 1997)

* Cover design : Zygmunt Druzbicki, Mariusz Bruckacki, Bart Kopec, Jola Laitl

폴란드 고딕메틀 밴드 시라 Sirrah의 앨범 커버 속 사막은 음산하고 사악하다. 저 짐승을 붙잡아 제물로 바치고 싶어질지도 모르겠다. 빛을 이용해 사막의 굴곡을 잘 잡아냈고, 발자국도 사막 효과 확대에 이바지하고 있다. 최근 유행하는 드론을 이용한 각도도 깊은 인상을 남기도록 돕는다.

 

Tinariwen [Elwan] (Wedge, 2017)

* Design – Gilles Guerlet

알리 파르카 투레 Ali Farka Touré의 세계적인 성공을 바탕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데저트 블루스(Desert Blues)는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 노예들의 합창 또는 신앙생활 등에서 비롯된 음악이라는 블루스의 기원에 대해 보다 넓은 시각을 가지라고 말해준다. 말리 출신의 티나리웬 Tinariwen 역시 데저트 블루스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거물 밴드이다. (알리 파르카 투레와 티나리웬은 각각 그래미상을 받으며 미국에서도 확고한 명성을 얻었고 지금도 이어가고 있다. 블루스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반드시(!)' 들어보길 권한다.)

'사막'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밴드답게, 그리고 그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하라 사막 주변 출신인 이들의 앨범 커버아트에서 사막은 자연스럽게 배경이 된다. [Elwan]은 가장 예술적인 사막을 담았다.

 

사막 커버아트는 여전히 많다. 오아시스도 사막 커버아트의 일부일 테고, 사막과 비슷한 분위기를 보여주는 해변의 모래언덕도 중요한 커버아트의 배경이 되고 있다. 바닷가 모래언덕을 사막에 포함한다면 그 수는 훨씬 많아진다. 여기서도 마찬가지. 사막이라고 했지만 사막까지 가는 경비를 줄이려고 바닷가에서 사막 분위기로 촬영한 사진도 많을 게다. 사막 커버는 계속 등장할 텐데, 사막을 배경으로 앨범 커버아트를 꾸며 최근 공개한 두 장의 앨범을 추가하며, 오늘 사막 이야기는 일단 끝.

 

The Maine [You Are OK] (8123, 2019)

* Art Direction – John O'Callaghan | Art Direction – Tim Kirch | Design – Richard Raun

사막, 하늘, 거울, 실오라기 하나 없는... 그래서 OK.

 

Fémina [Perlas & Conchas] (Not On Label, 2019)

* Artwork, Concept By – Candelaria Aaset | Graphic Design – Francisco Spertino | Photography By – Federico Andrade

아르헨티나 여성 트리오 페미나의 세번째 앨범인데... 음... 음... 모델은 세 명의 진짜 멤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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