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짜 커버/스토리

내가 기억하는 음악 속 오렌지는 알 스튜어트 Al Stewart의 1972년 앨범 [Orange] (CBS, 1972)와 그 앨범 수록곡 <Once An Orange, Always An Orange>다. 오렌지는 아니지만 같은 색감을 감안해준다면 라이프 오브 애거니 Life Of Agony의 [Soul Searching Sun](Roadrunner, 1997) 수록곡 <Tangerine>도 말하고 싶다. 신기하게도 독일 일렉트로닉/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탠저린 드림 Tangerine Dream에서 오렌지나 귤 색을 떠올린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독일 프로그레시브 록은 독일인 성격처럼 차분하고 냉정하고 이성적"이라는 말을 듣고 자란 탓이다. 독일 사람을 겪어 본 적 없으니 그렇다고 믿어왔다. 그렇게 말해준 사람은 헤겔, 칸트, 맑스, 엥겔스를 파고들었기 때문이었을까. 난 수박 맛만 봐서 잘 모르겠다. 어? 레드 제플린 Led Zeppelin의 <Tangerine>을 들으면서도 오렌지나 귤 색을 떠올린 적 없었네?

 

 

Life Of Agony [Soul Searching Sun] (Roadrunner, 1997)

 ● Illustration, Design by Dave McKean 

내가 라이프 오브 애거니의 탠저린을 오렌지 감성으로 받아들인 이유는 앨범 커버 때문이다.

한동안 잊고 살다 옛 생각에 꺼낸 라이프 오브 애거니의 세 번째 앨범. 4단 디지팩의 감촉이 좋다. 보컬 키스 카퓨토 Keith Caputo는 2011년 성전환 수술을 해 현재 미나 카퓨토 Mina Caputo로 살고 있다. 이 사실을 알고 띵~ 하다 검색해봤는데 예상하지 못한 성전환 사례가 꽤 있었다.

 

 

Frank Ocean [Channel Orange] (Def Jam, 2012)

● Artwork by Aaron Martinez, Phil Toselli, Thomas Mastorakos

라이프 오브 애거니의 음악에서 한참 지난, 그러면서 가장 최근, 그러면서 가장 선명한, 오렌지는 프랭크 오션 Frank Ocean의 오렌지다.

온통 까맣게 칠해놓고 Black Album 이라 부르거나 다른 색 넣지 않은 흰색으로만 커버를 꾸민 White Album 들과 견줄만한 커버 아트였다.

 

난 프랭크 오션의 [Channel Orange] 커버를 볼 때마다 핫트랙스매거진 2012년 9월호 표지가 생각난다. 프랭크 오션을 커버스토리로 다뤘던 잡지 표지는 잔뜩 폼 잡고 카메라를 노려보는 프랭크 오션의 사진이 아니었다. 잡지를 본 모든 사람에게 시비라도 걸듯 앨범 커버를 그대로 커버로 만들었다. 이 잡지 표지를 봐도 별 감흥이 없다(또는 없었다)는 사람도 많겠지만 난 이 표지를 볼 때마다 짜르르르르르르한 기운을 느낀다. 표지에서 번쩍번쩍 스파크가 튄다.

 

핫트랙스매거진 2012년 9월호 (통권71호)

 

 

자, 이렇게 오늘 갑자기 오렌지를 꺼내든 이유는 우연히 몇 장의 (유사) 오렌지 커버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우연이 겹치면 필연이라 했으니, 오렌지 커버를 다루는 건 필연이다.

 

 

Pugilist [Gradient 4] (Not On Label, 2021)

오스트레일리아 일렉트로닉 뮤지션 퓨질리스트 Pugilist가 지난해 4월부터 시작해 발표한 [Gradient] 시리즈의 마지막인 [Gradient 4]. 원래 이미지는 게이트폴드 커버처럼 양쪽으로 길게 펼쳐져 있는데 찌그려뜨려 정사각형 커버로 만들어놓은 걸 가져왔다. 연한 오렌지에서 시작해 진한 오렌지까지 그레이디언트로 표현되어 있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앨범 톱트랙부터 다시 듣기 시작했는데, 새벽 한 시에 앨범 첫 곡 <1am Dubbin'>을 들으니 마치 나를 위한 사운드트랙 같다. 착각은 자유라며 아주 옛날부터 비웃을 때 쓰는 말을 하고 싶겠지만, 착각이 아니라 정말이다. 새벽 한 시에 퓨질리스트의 덥을 들었다니까... 뭐, 위로 아래로 오가며 몇 줄 쓰는 사이에 벌써 한시가 지나버려 지금은 다른 노래가 나오지만.

친절 링크를 빼먹을 뻔 했다. 밴드캠프에서 들을 수 있다.

 

 

Eluvium [Virga II] (Temporary Residence Limited, 2021)

2019년에 발표한 [Virga I]을 잇는 미국 앰비언트 뮤지션이자 프로듀서 엘루비엄 Eluvium의 두 번째 [Virge] 시리즈. (밴드캠프에서 이 앨범을 들을 수 있는데, 앨범 발표일이 2021년 8월 6일이다. 지금은 7월 2일인데... 현재 69장 남은 1000장 한정 LP 발송일이 8월 6일 언저리가 될 거라고 한다. 거기에 맞춰 적은 모양이다. 특별한 경우 아니면 발매일에 관심을 두지 않으니, 상관없다. 나도, 당신도, 이미 7월에 이 음반 수록곡을 들을 수 있으니.

앨범 커버아트는 오렌지와 유사하지 않지만 그래도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색감의 커버아트라 오렌지로 넣고 소개했다.

 

 

얼마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커버/스토리는 세 장 정도에서 시작하고 끊기 때문에 여기서 끝내려고 했는데...

유키카 Yukika가 Pat Lok가 함께 작업한 싱글 커버를 막 발견했기 때문에 마무리는 이걸로 하기로 했다.

 

유키카 & Pat Lok <그라데이션 (The Moment)> (single. Stone Music Entertainment,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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