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커버/스토리 [diary edition]

수박

2021. 9. 25. 00:38

멜론을 무척 좋아하는 특별 손님이 올 예정이라 잘 숙성시켜놓겠다고 며칠 전부터 상온에 꺼내 두었는데, 대접하기 직전에 한 조각 잘라먹었더니... 우웩! 상해버렸다. 이런 낭패가 있나. 멜론 대접은 뒤로 미뤘다. 그때만 나오는 특별 음식도 아닌데, 뭐.

 

멜론은 그렇다고 치고.

요즘 화제는 워터멜론 watermelon이다

'수박'의 해석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던데, 수박이 논란이 될 여지가 있나? 겉은 파란데(아, 이게 논란이라면 논란이구나. 한때 신호등도 파란불이라고 불렀는데... 정확히 하면, 겉은 초록인데) 속은 빨간 과일. 그러니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라는 거, 정말 모르나? 너무 뻔해서 덜 쓰다 보니 오히려 지금은 낯선 은유일 수는 있겠다. 하지만 은유의 내용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논란?

 

그런 의미에서 수박 커버/스토리다.

 

 

씨 없는 수박 김대중 [씨 없는 수박] (붕가붕가레코드, 2013)

* cover design by 김기조

이거 너무 확실해서, 여기에서 시작하고 여기에서 끝나도 할 말 없을 정도다. 겉은 초록이고 속은 빨간 수박이다. 씨가 없다고 수박이 아니라고 하려나?

 

 

 

Harry Styles <Watermelon Sugar> [single], from the album [Fine Line] (Columbia, 2019)
Harry Styles <Watermelon Sugar> [single], from the album [Fine Line] (Columbia, 2019)

해리 스타일스의 두 번째 앨범 [Fine Line]에서 싱글 커트해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기록한 곡이며, 그래미 수상까지 이끌었던 히트곡. 그렇지만 싱글 커버는 수박을 찾지 않았다면 여전히 발견하지 못했을 게다. 그도 그럴 것이 싱글 <Watermelon Sugar> 커버 이미지는 대부분 앨범 커버를 싱글 커버로 쓰고 있기 때문이다. 위의 싱글 커버는 해리 스타일스 오피셜 홈에서만 한정 시간 동안 판매했던 7인치 싱글들이다. 위 버전은 1주일 동안 판매한 싱글 커버고, 아래 버전은 단 하루(!)만 판매한 커버 이미지라고 한다.

이 노래 가사 가운데 "watermelon sugar high"라는 반복 구절을 마약을 뜻하는 은어로 해석하던데, 신기하게도 가사 첫 줄에 나오는 strawberry는 모두 딸기로 번역한다. watermelon보다 (마약 또는 성과 관련된) 은유가 더 선명하고 확실한 게 strawberry일 텐데 왜 이걸 글자 그대로 번역하고 넘어갔을까. 그나저나, 저 수박들, 뮤직비디오 촬영 소품인 줄 알았더니, 뮤직비디오 속에서 해리 스타일스가 아주 맛나게 먹는 장면을 넣었다. (그런데 그 장면 보면서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나는.)

 

 

 

Watermelon Sugar [Something To Savior] (Not On Label, 2005)

단 한 장의 앨범만 발표하고 더 흔적을 남기지 않은 여성 포크 듀오 워터멜론 슈거 Watermelon Sugar의 각설탕같은 수박도 슬쩍 넣어둔다. '수박인 줄 알았더니 각설탕이네'인지, '각설탕인 줄 알았더니 수박이네'인지, 아니면 각설탕 크기로 만든 수박 맛 젤리인지, 각설탕 크기로 만든 수박 같은 각설탕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오, 헷갈렸는데, 수박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려주는 앨범 커버였네. 이 뻔한 은유를 정말 몰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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