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료 1년을 남겨놓은 10년짜리 여권에 유일한 기록, 4년 전이다. 고작 5일짜리 일정이지만 이거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만들 땐 여러 일정이 이어질 것 같았는데... 다 날아갔다. 지금 팬데믹 상황이 진정되면 갱신 전에 이 여권을 들고 공항을 나갈 일이 있긴 할까? 한 달짜리 계획이 있지만 그땐 돈 걱정에 기간을 절반이나 1/4토막으로 줄일 게다. (그래도 집 떠나는 건 환영...)
쓰지도 않을 여권을 꺼낸 건 지난 해 한 문화강좌 제목 때문이었다.
"비자 없이 떠나는 세계 음악 여행"이(거나 비슷한 제목이)었을 게다. 아무 생각 없이 보고 있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비자 없이 세계 여행? 그거 이미 가능하잖아? 무비자 입국 국가가 얼마나 많은데? 비행기 타지 않고 세게 각국 월드뮤직을 듣는다는 의도로 지은 제목인 건 알겠는데, 비자 없이 떠나는 게 아니라 여권 없이 떠나는 게지... 여권 없으면 비행기 탑승도 못하는데... 여권 없으면 출국부터 난관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권' 커버/스토리를 쓰기로 했다.
(흥미를 끌 만한 내용을 추가해보겠다고 도서관에서 [여권의 발명] (존 토피, 후마니타스, 2021)을 빌려왔는데... 서론 읽다 반납해서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웹 이미지를 긁어왔더니 너무 이상하다. 그래서 스캔했는데 금박 때문에 이상하긴 마찬가지. 그냥 우리가 알고 있는 여권처럼 초록색에 금박인쇄이니 감안하고 보길. 이 여권을 들고 가고 싶은 곳을 추정해보면 부모님 고향이겠다. 강산에는 음악 시작할 무렵 발표한 <...라구요>에서 이미 이산가족 이야기를 다뤘다. 그의 부모님은 실제 이산가족. 강산에는 그때 감성을 이 앨범 수록곡 <명태>에 담았다. 난 <지금 (Piano ver.)>을 가장 좋아하고 가끔 따라부른다.
누가 봐도 커버 디자인에 여권을 응용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앨범 커버로 사용했을 때 약간 위험할 수도 있었을 텐데 별다른 말 없이 지나가 다행이다. 무슨 내용으로 위험했냐고? 여권을 꺼내 대조해보라. 여권 문양과 이 앨범 커버아트 속 문양이 같다. 위험한 행동... 하긴, ('견본'이라는 글자를 크게 넣은) 복사 지폐도 있는데 이 정도 복제야 큰 문제가 아닐지도...
한국남자와 비교하면 OSI는 확실하게 위험을 피했다. 미국 여권 디자인을 인용하면서도 그대로 가져오지 않는다. 날개는 부러졌고, 월계수는 시들었으며... (아, 월계수 반대편은 뭐냐... 화살? 미국 여권 문장 상징 분석이라고 검색해서 공부해야 하나보다...) 아, 아, 아무튼, 미국여권을 응용한 앨범이며, 커버를 비롯해 북릿까지 여권처럼 디자인했다. OSI 검색하다 음반 내부 모습과 함께 섬세한 추억까지 담은 리뷰 한 편을 읽었다. 관련글로 링크해둔다.
* 원래 이 글은 이렇게 끝이었다. 글을 쓰려고 앨범 커버만 올려놓고는 (최신글 자리에 두고 쉽게 수정하려고) 발행 예약을 해두었는데... 아뿔싸! 완성을 너무 쉽게 예단한 탓에 예약일에 발행되어 수록 이미지가 다 알려져버렸다. 그래서 위 세 장이 전부가 아니었다고 주장하기 위해 몇 장 더 추가한다.
2021년 10월에 발표한 모리 칼리오페의 싱글 커버.
언더월드 여권.
* all photos : Mario Sorrenti
따끈따끈한 캣 파워의 최신 앨범이자 세 번째 커버 앨범. 과거부터 최신 아티스트까지 고루 커버했다. 오리지널 아티스트 이름에서 닉 케이브 앤 더 배드 시즈의 <I Had A Dream Joe> 커버가 눈에 띈다. 닉 케이브의 광기를 제대로 묘사했을 것 같았는데, 실제로 그랬다. 캣 파워가 그동안 발표한 커버 앨범 세 장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은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오리지널을 커버한 <I Found A Reason>. (영화 '브이 포 벤데타' 사운드트랙 수록곡이기도 하다.)
음악 이야기가 길어졌다. 지금 음악 이야기 할 때가 아니다. 여권을 그렇게 넣고 다니다가는 큰일난다. 금방 잃어버릴 걸?
캣 파워가 보고 배워야할 여권 소지법.
내가 가 본 나라가 고작 세 나라인데 어딜 처음 갔는지도 기억하지 못하겠다. 처음 외국 갔을 때는 여권 잃어버리면 해외에서 미아되는 줄 알고 바지 주머니에 찔러넣고는 여권을 꼭 잡고 다녔다. 볼품없었겠지만 덕분에 말 통하지 않는 외국에서 엉엉 우는 일은 생기지 않았다.
이 앨범은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라이브를 수록한 라이브 앨범. 오스트레일리아의 별명 '다운 언더'를 제목에 넣었다. 정직한 제목. 커버 디자인을 보면 down과 underwear를 노리기도 했겠다. 그럴만한 아티스트다.
여권 커버아트를 쓰기 위해 내 여권도 뒤적였더니 어딘가 가고 싶어진다.
여권 필요 없는 '구글지도 보며 해외여행 하기'라도 해볼까?
[추가] 2020. 2. 27.
* art direction, design : Glen Christensen | photography : George Hurr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