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커버/스토리 [diary edition]

유튜브든, DVD든, 대형 라이브 공연을 보면, 음악에 몸을 맡긴 채 조용하게 흔들리는 관객을 보게 된다. 무아지경 상태에 빠져든 것 같기도 하다. 그럴 때 자연스레 나오는 포즈가 있다.

 

 

 

Anoushka Shankar [Chapter III: We Return To Light] (Leiter, 2025)

* cover image by Carly Hildebrant

시타르 연주자 아누슈카 샹카는 2023년 [Chapter I: Forever, For Now]에 이어 2024년에 [Chapter II: How Dark It Is Before Dawn]를 발표한 뒤, 숨 한 번 크게 쉬고 세 번째 시리즈 EP [Chapter III: We Return To Light]를 공개했다. 우리나라에서 시타르 연주음악은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러니 기존 앨범은 말할 것도 없고, 연속 공개한 EP들이 어필할 수 있을 거라 예측을 하긴 어렵다. 그래도 아누슈카 샹카의 음악에 큰 관심을 가진 팬이 이 글을 읽는다면, 죄송. (그녀의 아버지가 시타르 연주의 대가 라비 샹카 Ravi Shankar라는 사실, 재즈와 팝을 오가는 대 스타 노라 존스 Norah Jones가 이복형제라는 사실 정도는 그래도 널리 알려져 있다. 음악보다 진한 피에 얽힌 이야기.)

 

연주음악이라 제목이 큰 영향을 주는데, 앨범의 마지막 트랙 <We Return To Love>는 (긴장을 모두 제거한) 이완의 순간 같다. 들으면 느낌이 온다.

 

아마도, 이런 감정들이, 앨범 커버 속 몸짓을 만들어냈을 텐데...

 

 

 

Meshell Ndegeocello [Peace Beyond Passion] (Maverick, 1996)

* art direction : Gregory-Trever Gilmer | photography : Guzman

이런 감정들과 몸짓...이라면, 두 말할 것 없이, Me'Shell Ndegéocello다.

오늘 이 글에서 다른 커버들은 모두 삭제하고 이 앨범 커버만 기억해도 된다. 이 커버 하나면 끝이다. 음악도 두 말 할 것 없다. 90년대(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이후에도) 알앤비/소울의 명반이다. (그런데... 혹시 눈치챘는지? 아티스트 이름을 아직도 한글로 적지 않았다. 이 아티스트를 90년대에 어떻게 읽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럼 검색해 봐야지... 했다가 더 혼돈에 빠져든다. 스와힐리어로 넣고 발음시켜 보면 메셸 은데게오켈로다. 구글이 영어를 검색해 한국어로 보여준 이름도 마찬가지. 나무위키는 미셸 은데게오첼로로 적(고 구글 기준은 미셸 뉴게첼로, 애플뮤직 기준으로 미셸 은디지오첼로로 쓴다고 주석으로 적)었다. 매니아디비는 미셀 엔 디지오첼로, 엠엠재즈는 미셸 은데게오첼로, 예스24 아티스트 페이지는 미셸 뉴게첼로로 적고 있다. 아,  도대체 어떻게 읽고 쓰나. 이럴 때는 아티스트가 "내 이름은 이렇게 발음해 주세요"라고 말해주는 대로 따르면 된다. 검색 중에 단서를 찾았다. 첫 앨범에 이름 발음은 이렇게 해달라고 적은 스티커를 붙였다고 한다. (말하자면, 레이블피셜인 셈인데, 이름을 제대로 불러야 판매에 도움이 될 테니, 아티스트의 직접 발언이라고 생각해도 좋겠다.) 스티커에 적어놓은 글자는 "N-Day-Gay-O-Chell-O"라고 한다. 앤데이게이오첼로? 아티스트 이름 발음 때문에 프린스 팬사이트 포럼 글까지 참고하는 이 상황... 묘하다. AI에게 물어보면? 물어봤더니, 제미나이는 "미셸 은데게오첼로 또는 미셸 엔디지오첼로로 표기할 수 있다고 했고, 퍼플렉시티는 "메셀 은데게오첼로로 표기할 수 있다"고 한다.

 

황홀한 몸짓 이야기인데 이름 때문에 스텝이 꼬인다. 위 글은 다 지워버리자. 

 

미셸의 앨범 커버아트는 황홀, 무아지경, 엑스터시의 몸짓을 가장 잘 보여준다. 아마 20년 뒤에도 그럴 거라 생각한다.

 

 

 

Dawn Richard [Infranred] (Fade To Mind, 2016)

앞서 이야기한 미셸의 앨범 커버를 오마주 했을 거라 추측할 수 있는 던 리처드의 2016년 EP. 알앤비를 기반으로 한 음악인데, 얼터너티브 알앤비 성향이 조금 더 강하다. 디지털 음원으로 공개한 이 EP는 이듬해 앨범 커버를 바꾸고 곡을 추가해 딜럭스 버전을 공개했다. 딜럭스 버전 커버아트는 오리지널 커버를 변형했지만 오늘 이야기하는 황홀경, 엑스터시의 분위기를 묘한 각도에서 유지하고 있다.

 

(원래 이 커버를 저장한 이유는 전신을 한 가지 색으로 칠한 바디페인팅 커버아트 관련 글을 쓸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해서였다. 그런데 오늘 글에 맞는다. 아니, 오늘 글에 딱 맞는다. 처음 의도대로 바디페인팅 글에 다시 꺼내면 되기도 하고.)

 

 

 

Keren Ann [Bleue] (Polydor, 2019)

음악을 들어보면 희열에 차 있지 않고, 곡 제목과 가사들을 번역시켜 보면 들뜬 기쁨도 아니고 가라앉은 슬픔도 아니다. 앨범 커버 속 케렌 앤 역시 기쁨이나 황홀함 vs. 부족함이나 갈구 같은 느낌을 동시에 전한다. 그래도 전체 결론으로 따지면 앨범에 담은 음악과 별개로 앞선 예들과 비슷하게 황홀경 또는 엑스터시를 묘사하는 쪽에 가깝다.

얼마 전 TV 다큐멘터리에서 케렌 앤의 오래된 음악 <Not Going Anywhere>를 들은 터라 이렇게 꺼내놓는 게 반갑다.

 

 

 

V.A. [How Stella Got Her Groove Back Soundtrack] (Flyte Tyme, 1998)

우리나라에는 '레게파티'라는 제목으로 공개한 영화의 사운드트랙 커버아트(이자 메인 포스터의 약간 변형판).

딱히 황홀경에 빠진 것 같지는 않지만, 고개를 들어 하늘만 본다면 다른 앨범들과 마찬가지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슬쩍 끼워 넣었다. 영화 사운드트랙 커버아트를 소개할 일이 거의 없으니 이해해 주길.

 

 

 

그리고 오늘의 마지막 커버.

 

Ben Stafford [Happier Today] (No Label, 2025)

??? 영화 포스터나 마찬가지인 사운드트랙 커버까지는 봐준다고 해도, 이건 좀 너무 한 거 아니오???

라고 항의할 수도 있지만, 다른 커버와 마찬가지로 이 앨범 커버아트 역시 황홀경의 상태를 보여주는 게 맞다. 이상한 이유는 간단하다. 다른 앨범 커버들을 보면 두 손을 모두 들고 있는데, 이 앨범 커버는 크롭의 예술인지, 크롭의 미학인지, 크롭이라는 잔기술인지, 아무튼 크롭을 희한하게 했다. (나도 이 커버를 처음 봤을 때는 마치 웨이터가 접시를 든 포즈로 찍은 사진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 앨범을 발견한 스포티파이의 아티스트 페이지를 보면 지금까지 이야기한 앨범 커버와 같은 포즈로 찍은 사진을 바이오그래피 페이지에 넣어두었다.

다시 말하지만, 이 커버도 황홀경의 상태를 보여주는 게 맞다.

 

 

 

 

이번에는 은유도 없고, 슬쩍 숨겨놓은 메시지도 없고, 내 상태를 드러내려는 의도도 없고, 내 마음을 바꿔보기 위한 글도 아니다. 아누슈카 샹카의 앨범 커버아트를 보았고, 그것과 비슷한 앨범 커버를 알고 있었으므로 시작한 글이다. 무엇보다 뉴스공포증까지 겪을 정도로 힘든 시절이라 즐거운 일이 없는 상태에서 썼다. 그래도 한번 쓱 보고 지나가기에는 충분할 것 같아 그대로 발행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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