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짜 커버/스토리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전쟁중에 병 속에 편지를 담아 보낸 것이 40년인가 50년만에 배달되었다는 기사.
내 기억력은 항상 이렇다.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이 거의 없다...

그리고 '병 속에 담긴 편지'라는 영화가 있다.
장르는 드라마... 이상하게 드라마 장르는 관심가는 감독의 작품이 아니면 안 보게 된다.
앞에 '로맨틱'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영화는 거의 무시하는 편.
남들 다 극장으로 달려갈 때도 로맨틱 드라마이기 때문에 안 본 영화는 너무나 많다.
심성이 메마른 모양이다...

그리고 그 영화의 제목과 같은 폴리스 Police의 노래가 있다. <Message In A Bottle>.
스팅 Sting의 솔로 시절까지 좋아하긴 하지만, 폴리스냐 스팅이냐를 놓고 양자택일 하라면 두말할 필요없이 난 폴리스다.
폴리스의 노래는 언제 들어도 좋다...

메시지를 병에 담는다, 쉴새없이 움직이는 바다에 던진다, 언젠가는 도착하겠지, 누군가 그 병을 주워 메시지를 받을 사람에게 전해주겠지, 그리고... 그리고, 그 메시지를 받을 때쯤이면 나의 진실을 알게 되겠지, 그걸로 족해.
라며, 메시지를 담은 병을 바다에 던졌다가는,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몰릴지도 모른다.
조심하시길...
딴소리는 여기서 멈추고 오늘 이야기 시작.




앨리스 인 체인스 Alice In Chains의 은유, 그건 무엇일까?
밴드 이름을 새겨놓은 병 속에 갇힌 파리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소년의 퀭한 눈.
EP 타이틀 「Jar Of Flies」(Columbia, 1994)의 의미를 살리기 위한 설정샷이라고 해도
꽤 자극적이다.
이 앨범을 제작할 무렵 밴드는 데뷔 앨범 「Facelift」(Columbia, 1990)과 두번째 앨범 「Dirt」(Columbia, 1992)의 성공에 황당해 했다. 정말? 그 황당함은 이 앨범의 부클릿 속 코멘트에 고스란히 들어가 있다. 레인 스테일리 Layne Staley의 가라앉은 보컬과 나머지 멤버들의 익숙하지 않은 하모니를 담아놓았다는 설명. 이 앨범을 만들 때 밴드의 심정은 데뷔 앨범 발표 이전의 순수한 밴드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싶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 파리들은 (의도하지 않게) 성공해버린 밴드의 이 당시 모습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박하사탕'처럼 "나 돌아갈래!"를 외치는 밴드. 결국 그들의 초기로 돌아간 건지 아닌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이 밴드의 지독한 슬픔은 비슷한 이유에서 자살해버린 너바나 Nirvana의 커트 코베인 Kurt Cobain 만큼이나 진했다. 이 EP 속에 그 감정을 담았다.




항상 아티스트 인명 사전의 맨 뒤를 장식하는 하드롹/텍사스블루스 밴드 지지 탑 ZZ Top의 1996년 앨범 커버도 병 속에 메시지를 담고 있다.
1970년에 데뷔 앨범을 발표했으니 벌써 30년이 넘는 밴드가 되었다. 세 명이 만들어내는 경쾌하고 격렬한 하드 블루스 롹. 그렇지만 80년대 들어서면서 시대에 걸맞게 신서사이저를 이용해 발표한 「Elliminator」(Warner, 1983)가 엄청난 반응을 얻으면서 초기 모습과 많이 달라졌다. 이 앨범의 성공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이후 지지 탑이 초기의 사운드로 돌아가도 시큰둥, 이 무렵과 비슷한 음악을 해도 시큰둥, 결국 지지 탑은 최근까지 시큰둥한 밴드가 되어버렸다. 물론, 여전히 감동을 받는 팬도 있을 테지만.
「Rhythmeen」(RCA, 1996)의 앨범 타이틀은 "drawing from mean rhythms"라고 밴드 멤버 빌리 기븐스 Billy Gibbons가 그랬다고 하는데, 믿거나 말거나. [앨범 보도자료 보기. 새창열림] 그다지... 와닿지는 않는다.
생각해 보니, 병이 너무 낡아서 그 속에 무엇이 들어있든 효능에 의심부터 하고 볼 것 같다. 좀더 산뜻하고 깔끔하고 깨끗한 병이었으면 믿어줄 수도 있었는데...




한 밴드가 음악성을 확~ 바꾸면 말이 많다.
퀸스라이크 Queensryche의 「Hear In The Now Frontier」(EMI, 1997)도 그런 앨범 가운데 하나다. 이게 무슨 퀸스라이크냐, 옛날로 다시 돌아가줘라! 라고 아무리 따져봐야 밴드가 이런 스타일을 좋아한다면 절대 바꾸지 않는다. 예전에도 이야기했고, 나중에도 이야기할 테지만, 한 밴드가 음악성을 바꾸게 되면 잃는 팬과 얻는 팬이 있다. 정말 허섭쓰레기같은 앨범이라도 좋아해줄 듬직한 팬이 아니라면 그런 무의미한 불평 대신 가볍게 무시해주는 것이 밴드에게나 자신에게나 도움이 된다. (애정이 있으니까 쓴 소리를 하는 것이다? 아직도 메탈리카 Metallica의 「Load」와 「Reload」, 그리고 「St. Anger」까지 씹어대지 못해서 안달인 것을 보면 그건 아닌 것 같은데? 가볍게 무시하라는 이야기는 굳이 험담할 필요없이 "메탈리카의 「Master Of Puppets」는 정말 죽이는 앨범이었어"라고 좋은 시절을 회상하는 편이 더 낫다는 뜻이다. 지나친 불평은 건강을 해친다.)
쓸데없는 이야기였다. 어쨌든!
퀸스라이크가 이런 앨범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 이유는 <Silent Lucidity>가 지나치게 성공한 탓이다. 80년대 네오 프로그레시브 롹 밴드가 이런 발라드를 히트시켰으니... 뭐,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예전 팬들이 새로 생긴 팬들보다 더 적극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던지 초기 스타일로 돌아왔다.
「Hear In The Now Frontier」의 커버 디자인은 스톰 소거슨 Storm Thorgerson의 작업을 떠올릴 정도로 깊은 인상을 남기는 휴 심 Hugh Syme의 작품이다. (그의 음반 커버아트의 세계는 별도로 다룰 예정이라 여기서는 그냥 이름만 남기기로 한다.) 포르말린을 채운 병 속의 저 귀는, 내 귀일 수도, 당신의 귀일 수도, 아니면, 밴드의 귀일 수도 있다. 앨범 부클릿은 저 귀의 이미지로 가득 차 있다. 귀를 꺼내는 것도 나일 수도, 당신일 수도, 아니면, 밴드일 수도 있다. 아마 이 커버는 그런 의미일 것이다.

         *          *          *

병속에 담은 메시지는 언제나 은유다.
은유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에게만 그것은 온전한 메시지다.
은유가 너무 지나치면 무의미의 세계로 들어가버린다.

은유의 메시지를 받은 그는, 나의 메시지를 제대로 듣지 못한 것 같다.
그날 하루종일 우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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