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커버/스토리 [diary edition]

이것이 록이다
중앙일보시사미디어 편집부 엮음/중앙일보시사미디어

(※ 책 이미지나 링크를 누르면 알라딘으로 이동합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이 책은,
사회를 걱정하는 사회학도의 냉소로 관통한 눈곱만큼의 록의 역사다.
감동도 없고, 애정도 없다. 단지 객관의 외피를 쓴 냉소만 있을 뿐이다.

잊지말자.
뉴스위크는 시사주간지다.
시사주간지는 정치와 사회에 관심이 많다. 그 관심을 기사로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사회학과 정치학의 시선이 그 어느 것보다 중요하다. 시사주간지가 다루는 대중음악은 음악지가 다루는 대중음악과 완전히 다르다. 대중음악지가 음악을 사랑하든 혐오하든 음악과 아티스트에 집중하는 것에 비해 시사주간지는 음악을 음악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것조차 사회학의 일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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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보자.
왼쪽 사진은 『이것이 록이다』라는 선정적인(벗은 여자가 나열되어야만 선정적인 것이 아니다) 제목을 단 이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는 커트 코베인의 죽음 관련 기사가 실린 뉴스위크 1994년 4월 18일자다.
커버에 커트 코베인이 실렸다고 뉴스위크가 대중음악에 애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그렇게 생각했다면 그건 완전한 착각이다. 이 커버에서 핵심은 재능 많은 한 아티스트의 비극적인 죽음이 아니다. 제목을 보라. "자살: 사람들은 왜 스스로 목숨을 끊을까?"다. 물론 커트 코베인을 다룬 제프 자일스 Jeff Giles의 기사도 있다. 하지만 그 기사의 냉소적인 마무리는 대중음악의 시선으로 접근한 독자를 멍하게 만든다. 그 기사조차 의도적으로 내용을 의심스럽게 썼다. 뉴스위크의 시선으로 본 커트 코베인의 죽음은 현대인의 유약한 심리와 사회병리학적 이상증후군을 가진 사람들의 일탈행위로 보는 냉소의 대상인 것이다.
이 기사를 찾아 읽을 시간에 오히려 눈물 찔찔 짜게 만드는 소설처럼 커트 코베인의 마지막 순간을 상상한 3류잡지의 기사를 읽는 편이 더 낫다.

『이것이 록이다』에서 번역해 실은 뉴스위크의 기사는 이런 냉소로 가득하다.

뒤떨어지고 평론가들에게도 혹평을 받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Hound Dog>이 빌보드 싱글차트 1위를 한 것도, 자신의 과거를 밝히지 않는 신비주의적 태도 뒤에 돈을 챙기는 아티스트라는 까발리기 기사 속의 밥 딜런도, 미국의 착한 소녀들을 영원히 홀리면 어떻게 하냐는 불안으로 점철된 비틀즈도, [잘 팔리는 블루스 음반만 집중적으로 발매하는] 음반업계의 과식 때문에 별볼일없는 여자 블루스 뮤지션이 각광받다보니 유명해진 재니스 조플린...... 뉴스위크는 이토록 냉소적인 시선으로 이들을 바라본다.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의 인터뷰에서는 객관을 가장하고 있다. 그렇지만 냉소적인 질문 때문에 분위기가 차갑다. 한글 번역 문투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인터뷰이를 향한 인터뷰어의 자세는 냉소가 철철 넘친다.)

비틀즈가, 재니스 조플린이, 롤링 스톤스의 믹 재거가,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도나 서머가 뉴스위크의 표지를 장식했다고 해서 그들이 대중음악에 애정을 보여준다고 믿는 것은, 커트 코베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아주 지독한 착각이다. 뉴스위크가 이들을 커버로 삼은 이유는 단지 대중음악인들이 만들어낸 일탈과 유행에 휩쓸리는 미국의 청소년들이 걱정되어서일 뿐이다.

물론 당대의 시선으로 당대의 대중음악인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자료로 삼을 수는 있다. 하지만 이 책으로 록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알고 싶어했다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오히려 뉴스위크가 미국 청소년들을 걱정하듯, 난 록의 역사를 알기 위해 이 책을 읽고 싶어할지도 모르는 한국 청소년들이 걱정된다. 왜냐하면, 애정과 관심에 앞서 뉴스위크 식의 냉소를 먼저 배울 것 같아서다.

그것을 걱정했던 것일까?
136페이지밖에 되지 않는 이 얇은 책의 절반은 한국 관련 기사로 채웠다. (부제에 "한국의 로큰롤 역사에 바치는 작은 헌사"라고 적어놓은 것을 기억하자.)
한국 뉴스위크 기자가 쓰고 인터뷰한 기사와, 최건과 빅토르 최에서 평생 벗어나지 못할 아시아의 한국 록 뮤지션 기사와, 한국과 아무 관련도 없는 한국계 뮤지션을 다룬 뻔한 기사와, 광명음악밸리의 팜플렛을 축약해 그대로 갖다붙인 한국의 록 페스티벌 기사와, 두 권으로 발간된 『한국 록의 고고학』 요약본에 다름 아닌 연대기와, 『이것이 록이다』에서 최고의 코미디로 꼽을 수 있는 [실제로는 웹사이트 가슴과 weiv와 이즘의 몇몇이 선정했지만] "뉴스위크 한국판이 선정한 Rock 명반 100선"이라는 리스트를 싣고 있다.



이 리스트를 보면 얼마나 황당한지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웬만한 리스트라면 아, 그렇구나. 이런 음반도 있었구나 하면서 모르는 음반의 등장에 (나의) 짧은 음악 감상 폭을 자책하겠지만, 이 리스트는 거의 개그다.
로큰롤 50년의 역사에서 100장의 명반을 꼽는데 이 뚱딴지 같은 앨범들은 무엇인가. 이 엉뚱하고 황당한 음반들 사이에 슬쩍 끼워놓은 한국 록 앨범들... 정말 초라해서 못봐줄 수준이다. 이런 쓸데없는 자존심은 내다버리는 것이 낫다. 게다가 아직도 거의 10년전에 음악지 '서브'에서 만든, [지극히 자의적인] 한국 100대 명반 리스트에서 벗어나지도 못하고, 벗어날 생각도 못하는 걸 보면.... 멀었다. 멀어도 한참 멀었다.
고작 이런 리스트를 뽑기 위해 "3회에 걸쳐 목록을 주고받으며" 앨범을 선정했다? 하...



이 책의 황당함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예는 전인권 인터뷰다.

들국화 1집보다 "전인권 1집에서 그는 드디어 흐드러지게 만개한 꽃"이 되었다는 묘사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지만 전인권을 선정한 것에 대한 이견은 없다.
문제는 한국 록 뮤지션 인터뷰를 할 때에 연락이 되지도 않고 약속도 계속 펑크나는 바람에 다른 사람으로 바꿀 생각을 했다는 이야기를 어찌 그리 당당하게 할 수 있냐는 점이다. 위대한 한국 록 뮤지션을 다루겠다는 의지가 고작 약속 펑크에 따라서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이 인터뷰의 진의를 의심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자가당착이다. 그걸 스스로 밝히는 것에 어쩌면 그리 당당한가.
다시 예를 들어보자. 한국 록의 대부로 신중현 선생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신중현 선생이 "일이 너무 바빠, 다음 기회에 인터뷰하자고"라고 이야기하거나 "내가 무슨 한국 록의 대부야. 그런 인터뷰는 귀찮아"라고 이야기했다고 치자. 그럼 한국 록의 대부에 관한 글을 쓰기 위해 다른 사람을 선정해야 할까? (물론, 이 책에는 신중현 선생의 인터뷰가 실렸다. 인터뷰에 꼬장꼬장하지 않은 성격 탓인지 아직까지 단 한번도 인터뷰가 잡혔을 때 거부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전인권을 정말 "흐드러지게 만개한" 한국 록의 거물로 꼽았다면 기필코 그를 만나야 한다. 약속을 펑크나지 않게 하기 위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를 만나야 하는 것이다. 한국 뉴스위크 기자는 거들먹거려도 되는 자리가 아니다. 전인권을 위대한 한국의 록커로 선정했다면, 인터뷰를 못해 그냥 글로 풀어 쓴 서태지의 경우처럼, 전인권을 끝내 만나지 못했다면 글로 풀어 쓰면 된다. 어떻게 인터뷰 펑크난다고 다른 사람으로 교체할 생각을 하나.
얼마나 주관 없는 위대한 한국의 록커 선정인지, 자신의 글 속에 다 들어있다.



이건 비틀즈 관련 토막 기사 번역이다. 싱글과 앨범을 구분하지 못하는 캡션을 보자.
더 이야기할 것도 없지 않을까?
싱글은 싱글이고 앨범은 앨범이다. 싱글 앨범은 이 지구상에 단 한장도 없다.
가장 기본적인 용어 구분조차 못할 정도면... 흠.

*          *          *

감정적이고 냉소적으로 이 글을 썼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이 정도 냉소면 『이것이 록이다』 속에서 만나는 그 싸늘한 시선의 반의 반도 미치지 못한다. 적어도 "이것이 록이다"라는 제목을 붙이고 책을 만들었다면, 충만한 애정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이런 냉소 퍼레이드를 보여줄 필요는 없다. 이런 책은 록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해악이다.

결국, 이 책은 제목과 내용이 따로 논다.
묻고 싶다. 이것이 정말 록이냐고.

이 책에 평점을 매긴다면 ★☆☆☆☆☆☆☆☆☆이다. (100점 만점에 5점)
당신의 소중한 돈을 보다 유용한 곳에 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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