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짜 커버/스토리

날개

2009. 1. 13. 23:59

날자 날자 한번만 더 날자꾸나....라고 이상이 시를 썼던가.
그의 모던한 사고는 나의 학창시절을 사로잡기도 했지만 이제 그런 생각을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가버렸다.
날고 싶다는 생각도, 날아야겠다는 욕망도 더 이상 생기지 않는다.

그러고보면 꿈속에서는 늘 추락하는 꿈을 꾸었다.
깨고 나도 키는 크지 않았고, 엄청나게 아득한 추락의 긴장만 남아 있었다.




그래서 아직도 날고 싶은 꿈을 간직한 제인 버킨 Jane Birkin이 부럽다.
「A La Legere」(EMI, 2002)의 커버 속 그녀는 지금 변태 metamorphosis중이다.
날개가 돋아나고 있다. 금방이라도 날개가 완성되어 날아가버릴 듯하지만, 아직 날개는 그리 크지 않아 날지는 못할 것 같다.

제인 버킨은 아직도 지상에 머물고 있으니, 제인 버킨이 하늘을 날기 위해서는 아직 더 긴 시간이 필요하다.


The Blue Aeroplanes / Swagger
많은 이들은 가짜 날개라도 달려고 한다.
아직 세상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유치원 꼬마들이라면 천사의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날아오를지도 모를 일이다.

그때를 기억하고 싶어하는 사람들, 그들을 이야기하는 커버/스토리라고 해도 좋겠다.

80년대 결성한 영국의 록 밴드 블루 에어로플레인스 The Blue Aeroplanes의 앨범 「Swagger」(Chrysalis, 1990) 커버는 날개를 슬쩍  그려넣었다. 날개에는 밴드의 이름과 같은 비행기가 담겨 있다. 날아갈 수는 없겠지만 날고 싶은 욕망은 보여주었다.
밴드의 음악에 비해 커버는 화사하고 아기자기해 어색하지만, 그래도 날개에 비행기를 끼워넣었으니 밴드명과 디자인이 어느 정도 조화를 이룬 것은 맞다.




세상사람들이 모두가 천사라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그 노래를 막 부르고 돌아오는 것일까?

매닉 스트릿 프리처스 Manic Street Prechers의 「Send Away The Tiger」(Columbia, 2007)의 커버다.
악마의 뿔과 악마의 검은 의상과 검은 날개. 막 학예회를 끝낸 것 같지는 않은데, 소녀들은 꽤 불량한 표정이다.

Crazy Town / Darkhorse
여기서 잠깐!!

매닉스의 커버는 대개 기억도 하지 못하는 미국 밴드 크레이지 타운 Crazy Town의 앨범 「Darkhorse」(Columbia, 2002) 커버를 떠올리게 한다.

비록 그림이긴 하지만, 악마 뿔을 달고 까만 스키니진을 입고, 액세서리 몇 개를 단 모습이 영락없는 매닉스 커버 속 소녀다. 물론 크레이지 타운은 악마같은 천사를 그릴 생각은 없었을 게다. 소녀는 악마의 꼬리를 갖고 있다.

이 의상이 악마같은 천사 또는 그 반대로 천사같은 악마의 일반적인 의상인지 그네들의 삶을 잘 몰라서 확신하긴 어렵지만 어쨌든 두 커버의 연관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말해두고 싶다.




팻보이 슬림 Fatboy Slim의 베스트 앨범 「The Greatest Hits: Why Try Harder」(Astralwerks, 2008)의 커버도 가짜 날개를 단 팻보이가 기분좋게 웃고 있다.
선글래스와 담배를 들고 있는 폼을 보니 날개는 충분히 큰데 날아갈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Fatboy Slim / You've Come a Long Way, Baby
보통 베스트 앨범이라고 하면, 그동안 발표한 앨범 커버를 재활용하는 것이 기본이다. 몇 장의 앨범을 발표했건 그 중에서 가장 히트한 앨범이 있을 테고, 그 커버 이미지는 아티스트의 음악세계를 가장 잘 요약해주기 때문이다.

팻보이 슬림의 베스트 앨범 역시 이 공식을 잘 따르고 있다.

왼쪽의 앨범은 1992년에 발표한 팻보이 슬림 최대의 히트작 「You've Come a Long Way, Baby」(Astralwerks, 1992)다. 베스트 앨범은 이 커버를 훌륭하게 재활용했다. 이 앨범에는 팻보이 슬림의 유일한 영국 싱글 차트 넘버원 히트곡 <Praise You>를 비롯해 차트 2위까지 오른 <Right Here Right Now>도 담겨 있다. 발표한 네 장의 싱글이 모두 톱10 히트를 기록한 이 무렵의 일렉트로니카 명반.

앞서 부에나비스트 소셜 클럽 이야기를 하면서 재활용 이야기를 꺼냈는데, 팻 보이 슬림 역시 이 명작의 커버를 잘 이용했다. 이 커버 속 팻보이는 앨범 커버 역사에서도 주인공이 누구인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미스터리 앨범 가운데 하나로 꼽인다.


이렇게 가짜 날개를 달고 있는 커버를 보면 즐겁기도 하면서, 왠지 우울해진다.

지금 내 모습이 생각나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날개 달린 것들은 날아줘야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 아닌가. 타조를 보면서 날지 못하는 새의 서러움을 깨닫고 인간사에 적용하는 경우도 있는 걸 보면 말이다. 그런데, 닭이 날아올라 나뭇가지에 앉아 있으면 이상하게 보는 건 또 뭔가. 닭은 그저 음식이기 때문일까.

Dokken / Long Way Home
어쨌든 날개를 가진 것은 날아야 하는데......

도켄 Dokken의 앨범 커버의 이 천사는 왜 날개를 뜯어내고 있을까. 「Long Way Home」(Sanctuary, 2002)는 이토록 아름다운 앨범 커버를 갖고 있으면서도 거의 라면 냄비받침급 평을 받는 앨범이다.

이 무렵에 이 앨범의 존재를 알지 못한 이유는 오직 수입반으로만 소개되었기 때문인데, 언제 기회가 되면 앨범 커버 때문에라도 구해볼 생각이다.

일부러 추락하는 천사나, 말을 잃어도 인간세상으로 나오고 싶은 인어나, 기본 내용밖에 모르고 있는 포뇨나 다 이유있는 행동을 하는 걸 테니까. 추락하는 꿈은 이제 꾸고 싶지 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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