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많은 일이 일어난 2009년이다. 내게 어떤 일이 있었나. 엄청난 일이 있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최근 10년동안 가장 무미하고 건조했다. 뭘 하는지 몰랐고, 뭘 해야할지 몰랐다. 그래도 그럭저럭 버텼다.
인생 뭐 별 거 있어?
이거, 내가 가장 혐오하는 인생관이자 세계관이다. 이렇게만 살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별 걸 바라고 살지는 않지만 뭔가 분명히 있다고 믿는다.
며칠 지나면 2010년이다. 1980년대는 80년대라고 해도 알아듣고 1990년대는 90년대라고 해도 알아듣는데, 2000년이 되면서 구분을 위해서라도 2000년대라고 써야 했다. 한글로 쓰면 네 글자라 거북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제 어떻게 표기해야 하나. 2010년대? 이천십년대? 다섯글자가 되니까 굉장히 비효율적인 것 같다. 고작 한 글자 늘어나는 건데...... 우연히 세기를 넘게된 사람들의 알려지지 않은 고민이 되겠다. 뭐, 1910년대와 구분하기 위해서라도 십년대라고 쓰기 보다 이천십년대라고 쓰는 게 낫겠다.
그렇게 이천십년대가 시작되려고 한다.
2010년은 庚寅年(경인년)이라고 한다. 당신은 무슨 띠입니까? 라고 물으며 나이를 파악하는 뻔한 질문도 하지 못하는 나는, 검색을 해서 "경인년은 호랑이띠입니다"라는 답변을 확인하고서야 호랑이 해라는 걸 알았다. 그렇다면 당연히 이 커버?라고 할만한 것이 있지만 우선 가장 최근 앨범 하나를 꺼내놓기로 했다.
밴드 이름에 들어간 숫자를 영문으로 바꾸면 망한다는 징크스는 매치박스 트웬티 Match Box 20가 이미 겪었는데, 이 밴드..... 고작 세번째 앨범을 내면서 30을 Thirty로 바꿔버렸다. (30을 영어로 서티라고 부른다는 거 다 아는데, 굳이 이름을 바꿀 필요가 있었어?) 이 밴드도 매치박스 트웬티의 전철을 밟을지도 모른다!! 라고 이야기하고 싶지만, 사실은 밴드가 발표한 세 장의 정규 앨범 가운데 이번 앨범이 제일 좋다. 내가 좋아하는 프로듀서 플러드 Flood와 함께 싫어하지는 않지만 좋아한다고 선뜻 대답하지는 못할 스티브 릴리화이트 Steve Lilywhite가 프로듀스를 담당했다. 이 사람들은 알다시피 U2의 앨범 프로듀서들. 그래서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정리가 되지 않은 듯했던 밴드의 음악이 단번에 정리되었다. U2 냄새도 폴폴 풍기면서. 그래서 난 더 좋은데, 해외의 평을 보면 그것 때문에 더 악평이 붙기도 한다. 내가 싫어하는 부분은 커버다. 범죄를 저지른 호랑이도 아닌데, 그리 멋진 글자체나 디자인 감각도 아닌데 왜 호랑이 눈을 밴드 이름과 앨범 타이틀로 가렸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뭐, 호랑이가 범죄를 저질렀거나 말거나 내년을 기억하게 해주는 앨범 커버로 꼽는 데에는 지장 없다.
호랑이가 커버에 등장하는 앨범 커버를 꼽는데 서바이버 Survivor의 [Eye Of The Tiger]를 빼놓을 순 없다. 빌보드 싱글 차트 2위 히트곡이자 영화 '록키3'의 성공으로 더 높이 플라이하이한 <Eye Of The Tiger>를 담은 앨범. <Eye Of The Tiger>와 <Burning Heart> 말고 또다른 히트곡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본 적 없겠지만 서바이버도 베스트 앨범이 있다. 2004년에 공개한 [Ultimate Survivor]도 호랑이 그림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서바이버가 <Eye Of The Tiger>를 발표할 수 있던 이유는 빌보드 톱40 진입곡 바로 전 해인 1981년에 공개한 <Poor Man's Son> 덕분이었다. 이 노래를 들은 실베스터 스탤론이 영화 '록키 3'에 쓸 곡인데 그 곡과 비슷하게 곡을 만들어달라고 해서 나온 게 바로 <Eye Of The Tiger>였다. 기회가 왔을 때 날카로운 잽과 훅을 넣어 명곡을 만들어낸 밴드에게 박수!
지난해처럼 굵고 짧게 끝내려고 했다가 조니 미첼 Joni Mitchell의 앨범 커버 하나를 추가했다. 아무리 봐도 고양이 같은데...... 앨범 제목이 타이거라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소심하게 넣었다. 이 앨범에는 <Taming The Tiger> 말고 <Tiger Bones>라는 노래가 있다. 정말 타이거 맞겠지?
스웨덴 록 밴드 켄트 Kent의 2002년 앨범 [Vapen & Ammunition]도 호랑이가 커버에 등장한다. '무기와 탄약고'라는 뜻의 스웨덴어와 호랑이가 어떤 연관관계가 있는지 모르겠다. 이 앨범 커버 속 호랑이도 은근히 매력이 있다. 한밤중에 어슬렁거리다가 근접촬영된 이유는 뭘까? 궁금하기는 한데, 스웨덴어까지 감당하는 건 무척이나 피곤해서 가사 전체를 훑어볼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비영어권 밴드 가운데 우리나라에서는 무척 많은 팬을 가진 밴드이니 누군가 정리해놓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