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커버/스토리 [diary edition]

얼마전 예약주문을 받기 시작한 공개된 짐 자무시 Jim Jarmusch의 DVD 박스셋을 장바구니에 넣었다 다시 보관함으로 옮기길 몇 번, 결국 포기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천국보다 낮선 Stranger Than Paradise '의 끝없이 이어지는 2 vs. 1이라는 조합에 매력을 느낄 시절은 이미 지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이 영화를 딱 한번이라도 더 볼 마음이 생길까 싶기도 했고.

하지만 포기한 진짜 이유는 DVD 박스셋에는 포함되지도 않은 '고스트독 Ghost Dog: The Way Of The Samurai' 때문이었다. 시네코아였던가. 어느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았는지 기억나지도 않는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일본에 흠뻑 빠져버린 짐 자무시의 노골적인 사무라이 찬양은, 꽤 멋진 화면을 보여주고 있었는데도 불쾌했다. 그 영화 이후 난 짐 자무시를 잊었다. 다행히 그는 이후에 한 편의 영화를 더 제작했을 뿐이라, 굳이 잊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었다.

아침부터 센 음악을 들을 때가 종종 있다.
지금 듣기는 좀 불편하지 않을까 싶어서 책상 위에 던져놓고 미루고 미루다 어느날 아침에 문득 그 CD를 보면서 괜히 미안한 마음에 꺼내 들을 때가 많다. (듣지 않고 미뤄둔 것이 대충 70장 정도 책상 위에 굴러다니고 있다. 언제 듣는가가 문제인 것이지 어느 것을 듣는가는 문제될 것이 없는 셈이다...)



그렇게 해서 집어든 것이 칼리반 Caliban과 헤븐 셸 번 Heaven Shall Burn이라는 두 밴드가 사이좋게 앨범의 반씩 자기들 노래를 수록한 스플릿 앨범 프로젝트 「The Split Program II」(Lifeforce, 2005)다. 이것이 두번째 프로젝트인데, 드림온 레코드에서 발매한 한국반에는 첫번째 프로젝트 앨범 「The Split Program」(Lifeforce, 2003)까지 보너스로 들어있다.
커버를 보니 참여한 두 밴드의 이미지와 아주 딱 맞는다. 살벌한 샤우팅과 쉴새없이 질주하는 메틀 코어 사운드는, 사무라이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아무튼 일본의 무사가 들고 있는 칼날과 표정처럼 강렬하다. 이 앨범 때문에 오늘 하루 멍하게 시작하게 되었고, 사무라이에 관련된 커버를 떠올리게 되었다.




그래서 바로 꺼낸 것이 프랑스의 프로그레시브 롹 밴드 타이 퐁 Tai Phong이 1975년에 발표한 셀프 타이틀 데뷔앨범 「Tai Phong」(Warner, 1975)이다. 장 자크 골드만 Jean-Jacques Goldman이 기타와 바이올린을 연주한 것으로도 유명한 밴드. 장 자크 골드만은 타이 퐁의 활동을 끝내고 지금까지 솔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 밴드는 재미있게도 베트남 출신 뮤지션인 칸 Khahn과 타이 Tai와 함께 장 자크 골드만이 참여해 이색적인 구성원을 가지고 있다. (타이 퐁이 우리가 알고 있는 태풍이라고 한 이야기를 들은 것 같기도 한데, 찾아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프로그레시브 롹 밴드의 뒷 이야기에 ~카더라가 잘 따라다닌다. 왜냐하면 웬만한 밴드는 거의 멤버의 신상이나 음반 발매 과정이 알려지지 않기 때문에.)
밴드의 음악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무라이 커버는 랑 Lang이라는 인물이 그렸는데, 그가 누군지 그때부터 지금까지 알려진 바 없다. 이들도 일본의 무사도에 관심을 가졌던 것일까? 아니면 단순한 이국 취향? 어쩌면... 프랑스에서도 많은 팬이 존재하던 예스 Yes의 커버 아티스트 로저 딘 Roger Dean의 영향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 오리지널 커버는 바탕색이 하얀색인데, 예전에 올렸던 비틀즈의 앨범처럼 CD를 굴리는 것에 너무나 익숙하다 보니... 사방이 누렇게 변색되었다. 감안하시길.)




그 앨범이 바로 1974년에 발표한 예스의 「Relayer」(Atlantic, 1974)다. 로저 딘은 유독 예스의 커버를 그릴 때는 일본의 민화같은 느낌과 공상과학적인 분위기를 섞는다. 다른 밴드의 커버를 그릴 경우에도 간간이 일본식 여백의 미가 드러나긴 하지만 예스의 커버와 비교해보면 격이 다르다. (예전에 썼던 "야구도 이겼는데... Babe Ruth"라는 글의 커버를 참고하면 될 듯하다.)
사실 이 앨범 커버를 작게 올렸으면, 아마 말을 타고 다리를 건너는 두 사람이 보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커버 왼쪽 아래의 커다란 구렁이와 결투를 벌이러 또는 구렁이를 지나 산 정상의 괴물과 싸우러 가는 듯한 두 사람은, 사무라이 복장을 하지는 않았지만 확실한 일본 무사다. 로저 딘의 일본 취향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앨범 커버 가운데 하나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예스의 커버 아트는 극찬을 받고 있었으니 타이 퐁의 뜬끔없는 일본 사무라이의 일러스트 커버는 이 앨범과 괜히 연관짓고 싶어진다.




헤비메틀 밴드 주다스 프리스트 Judas Priest의 데뷔앨범과 두번째 앨범의 수록곡을 컴파일한 초기 베스트 앨범 「The Best Of Judas Priest」(Gull, 1978)도 사무라이 커버다.
사실 이 베스트 앨범은 베스트라는 이름에 전혀 걸맞지 않는 명목만 그럴 듯한 앨범이다. 그다지 평가가 좋지 않은 데뷔앨범과 데뷔앨범에 비교하면 백배는 멋진 두번째 앨범의 수록곡을 적당히 조립했기 때문이다. 밴드 멤버들은 소속사인 걸 레코드에 주당 25파운드의 정기적인 급여를 요구했다. 하지만 이런 조그만 요구도 들어주지 않자 결국 CBS로 옮겨 1977년에 세번째 앨범 「Sin After Sin」(CBS, 1977)을 발표했고, 그 앨범은 성공을 거뒀다. 그러자 걸 레코드는 자기들이 가진 음원을 이용해 급조한 컴필레이션 앨범이기 때문이다. 다섯 명의 멤버가 주당 25파운드면 한사람당 고작 5파운드의 주급을 요구한 셈인데, 어떻게 소속사란 곳이 그런 요구도 들어주지 못했을까.)
어쨌든 이 앨범은 무의미한 컴필레이션 앨범이지만, 그래도 폴 몬티글 Paul Montegle의 사무라이 일러스트를 커버로 채택한 것은 선견지명에 가까운 성공이었다. 주다스 프리스트는 이후 일본 팬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얻어냈기 때문이다. 물론 '면도날같은 사운드'라는 밴드의 중후반 이미지와 잘 어울린 것도 이 앨범의 커버를 인상 깊게 만들었다.



걸 레코드의 두번째 급조(急造)시리즈 「Hero, Hero」(Gull, 1979)도 사무라이 커버다. 멜빈 Melvyn이 그렸다는데, 역시 그가 누군지 모르겠다. 레이블이 소유한 첫번째와 두번째 앨범을 무작위로 섞어(그래도 꼴에 첫 트랙은 <Prelude>로 해놓았다...) 만든 가지고 있어봐야 아무 소용없는 1, 2집 합본 음반이다. 그래도 타이틀을 '제대로' 붙인 센스와 초록색 빽판과 다르게 붉은색 사무라이 커버를 볼 수 있어서 다시 구했다. (아, 이 커버의 인물은 사무라이라기보다 십자군전쟁 같은 전투에서 사용한 의상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벤다는 의미에서 사무라이 커버로 올려놓았다.)




알다시피 헤비메틀사에 남을 명작인 블랙 사바스 Black Sabbath의 「Paranoid」(Vertigo, 1970)의 커버도 빼놓을 수 없다. 왼손잡이인 것이 조금 걸린다. 칼조심...


사무라이의 길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사무라이 커버가 때때로 깊은 인상을 주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물론 내 경우에는 사무라이 복장이 임진왜란의 이미지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외국인들은 많은 부분에서 일본의 영향을 받고 있으니 이해할 만하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내세울 것은 과연 무엇인가를 따져볼 생각은 없다.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내가 기억하는 사무라이는,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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