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카메라도 이제는 예전의 자동 필름카메라처럼 대중적인 보급이 끝난 상황. 웬만한 핸드폰에도 저렴한 디지털 카메라만큼의 화소수를 가진 카메라 기능이 있으니
(... 생각해보니 내 핸드폰은 50만 화소다) 거의 모든 사람이 디지털 카메라를 소유하고 있다고 봐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좀더 그럴듯한 사진을 찍기 위해 초보 디지털 카메라 동호회 출사라고 해서 따라갔더니 LCD 화면을 보며 사진을 찍는 것은 막 시골서 상경한 촌뜨기가 되는 우울한 경험을 하게 되고, 이 경험은 뷰파인더로 화상을 보고 찍는 DSLR의 세계로 접어드는 계기를 제공하면서 결국 꽤 묵직한 무게와 크기를 가진, 이른바 '뽀대'가 나는 DSLR 카메라를 구입하게 만든다. 이제서야 그는 제대로 된 디지털 카메라의 세계에 빠져든 것 같다. 하지만 아직 촌뜨기의 세계를 벗어나려면 멀었다. 뽀대가 나는 줄 알았더니, 번들렌즈만 달고 다니면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여전히 촌뜨기인 것이다. 다시한번 우울한 경험을 한 그는, 진정한 디지털 카메라의 세계에 도달하기 위해 광각렌즈를 사게 되고, 망원렌즈도 사게 되고, 접사용 매크로 렌즈도 사게 된다. 그리고... 또 무슨 렌즈를 사야 하나? 이쯤 해서 "어안렌즈는 어떨까요?"라고 제안하는 누군가가 나타날지도 모른다.
하하, 농담이다. 하지만 컴팩트 디지털 카메라와 DSLR 사용자 사이에는 분명히 넘어설 수 없는 베를린 장벽보다 더 튼튼한 장벽이 있는 건 사실이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듯, 언젠가는 자의든 타의든 무너지긴 한다.
어안렌즈
Fish-eye Lens. 물고기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어떤 사진이 나올까? 사실 이 렌즈로 찍은 결과물은 어안렌즈가 뭔지 몰라도 알 수 있다. 광각의 일종이고, 엄청난 왜곡효과가 있다. (어안렌즈를 설명하는 글을 몇 개 읽다가 길고양이의 모습을 멋지게 찍은 글을 발견했다. 이 글과 별개로 꼭 한번 읽어보시길. spec. 부분까지 읽으면 더 재미있다. [
꼭 읽어보려면 클릭])
한번쯤 하고 싶은 이야기를 끼워넣느라 서론이 길었지만, 어쨌든 오늘은 어안렌즈로 찍은 것들을 모은 커버/스토리란 이야기. 이전 글(
"오랫만에 비...")에서 이야기한 스매싱 펌킨스
Smashing Pumpkins의 앨범을 듣다가 생각난 김에 몇 장 골랐다.
아직 다아시
D'Arcy에게 퇴짜맞기 전이라 빌리 코건
Billy Corgan의 머리카락이 온전하게 남아있던 시절의 데뷔 앨범 「Gish」(Hut/Virgin, 1991)다. 이 앨범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했으니 대충 넘어가야겠다.
정작 밥 딜런
Bob Dylan은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단 한번도 오른 적이 없는데, 버즈
The Byrds는 이 앨범(스매싱 펌킨스와 마찬가지로 데뷔앨범이다) 「Mr. Tambourine Man」(Columbia, 1965)에 수록한 <Mr. Tambourine Man>이라는 밥 딜런의 노래로 차트 1위를 기록했다.
이 앨범의 진짜 비밀은 (이것조차 너무 잘 알려져서 식상하다...) 다섯명의 멤버 중에서 실제로 앨범 녹음에 참여한 멤버는 딱 한명, 짐 맥귄
Jim McGuinn 뿐이라는 사실이다. 노래와 12현 기타를 연주한 그를 제외하고 나머지 파트는 모두 세션맨이 담당했다. 그렇다면 버즈는 껍데기 뿐인 밴드인가? 아니, 그렇지는 않다. 이 데뷔작 이후에는 멤버들이 직접 연주를 했으며 곡도 좋아서 지금까지 꾸준히 사랑받는 밴드 가운데 하나로 남아있다.
참, 짐 맥귄은 제임스 조셉 맥귄 3세
James Joseph McGuinn III라는 본명으로 태어났으며, 나중에 인도네시아 종교의 하나인 수부드
Subud에 귀의하면서 이름을 로저 맥귄
Roger McGuinn으로 바꿨다.
어떻게 하다 보니 밴드의 뒷 이야기만 한 것 같아서 한줄 덧붙인다; 커버 사진은 배리 파인스틴
Barry Feinstein이 찍었다.
언젠가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영미 대중음악계에서 천재라고 부를 수 있는 인물 다섯을 꼽는다면?" 물론 쉽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었다. 내 인생 최대의 앨범 다섯장, 무덤까지 가져갈 음반 세 장, 최고의 프로그레시브 롹 앨범 다섯 장 등등, 순위를 매기거나 꼭 순서가 있어야 하는 질문이 많지만 늘 대답하기 불편하다. 자신의 기준에 따라서 대답하면 그만이지만 이런 류의 질문에 대한 답은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것이고, 때때로 잘난척 하기 위해서 남들이 전혀 꼽지 않은 것을 선택하는 삐딱선을 타기도 한다. 뭐, 질문을 받을 당시의 기준으로 대답하긴 하지만 이리 보고 저리 봐도 그다지 영양가 있는 질문과 대답은 아니다. 다섯을 전부 대지 않고 딱 한명을 꼽았는데, 그가 바로 지미 헨드릭스
Jimi Hendrix였다. 생각해 보면, 천재보다는 혁명가가 맞겠다.
지미 헨드릭스이자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
The Jimi Hendrix Experience의 두번째 앨범 「Are You Experienced?」(MCA, 1967)의 커버 역시 어안렌즈로 찍었다. Gered Mankowitz (이 이름은 어떻게 부르나...)가 찍은 사진이다.
여기서 잠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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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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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지고 있는 「Are You Experienced?」는 커버가 위의 것과 다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건 내것과도 다르다. 도대체 어느 것이 진짜 「Are You Experienced?」의 앨범 커버인가! 라는 의문이 생길지도 모른다. 정답부터 미리 말하면 세 장의 앨범 커버가 모두 「Are You Experienced?」의 정상적인 커버가 맞다.
편의상 [1]로 표기한 것은 1967년에 발표한 오리지널 앨범 커버로 영국 발매 버전이다. 이 앨범이 오리지널 커버인 이유는 가장 처음 발표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1]은 1967년 5월에 영국에서 가장 먼저 발표한 버전이고, 어안렌즈로 찍은 사진의 앨범은 1967년 8월에 미국에서 발매한 버전이다. 1997년에 익스피리언스 헨드릭스 재단에서 새로운/최후의 리마스터 버전을 공개했을 때 채택한 커버도 [1]과 동일하다.
그럼 [2]는? 1991년의 첫번째 CD 재발매 버전에 이은 두번째 CD 재발매 버전에 사용한 커버다. 오리지널 LP에 수록되지 않고 싱글로 발표한 세 싱글의 B사이드까지 모두 수록해 가치를 높였는데, 이후 발매되는 버전에도 모두 그 곡들을 수록하고 있어서 CD의 선택은 마음대로 해도 된다. 대신 오리지널 UK 버전, US 버전, 그리고 CD 재발매 버전은 마스터가 다르다. 수록곡 배열도 세 장 모두 다르지만, 모두 세 장의 싱글 수록곡을 보너스 트랙으로 담고 있어서 수록곡의 차이는 없다. 펄 잼
Pearl Jam 최초의 두 장짜리 베스트 앨범 「Rearviewmirror (Greatest Hits 1991-2003)」(Epic, 2004)의 커버 역시 오늘 주제에 맞게 어안렌즈로 찍었다. 워낙 매스컴에 홍보사진 노출을 꺼리는 터라 펄 잼의 정규 사진을 찾기가 상당히 힘들지만 이 앨범의 부클릿은 딱 한페이지만 제외하면 모두 밴드의 스튜디오 사진으로 가득 채워놓았다. 커버 사진은 랜스 머서
Lance Mercer가 찍었다.
그동안 사진을 보면 펄 잼의 레코딩 스튜디오는 그렇게 좁은 편이 아닌데 왜 어안렌즈로 찍었을까? (지금 막 글을 쓰면서 든 생각이라 좀더 생각해봐야겠다. 베스트 앨범의 제목대로 밴드의 모습을 담은 저 거울이 리어뷰 미러이기 때문일까? 이건 너무 단순한데... 뭐, 단순한 것이 정답일 때가 많긴 하다.)
항상 거론할 것이라고 예고한 대로, 이번에도 비틀즈
The Beatles다. 시대를 읽는 감각이 탁월한 비틀즈는 역시 이 앨범 「Rubber Soul」(Apple, 1965)을 통해, 이후 온 미국의 롹 밴드들이 한번쯤 "머리에 꽃을" 꽂는 사이키델릭의 폭발에 앞서 이런 커버를 앨범에 담았다. 물론 로고 타입도 전형적인 사이키델릭 시대의 글자다. 사진은 로버트 프리먼
Robert Freeman이 찍었다.
하긴 굳이 사이키델릭 롹 이야기를 꺼내지 않아도 비틀즈의 마리화나 흡연이나 LSD 관련 이야기는 워낙 흔해서 약물에 취한 밴드의 상태를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재미있는 것은 이 앨범 커버에서 The Beatles라는 밴드명은 없다는 사실. 확실히 너무너무 자신만만하던 시기의 앨범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비틀즈의 최고 앨범으로 꼽기도 하는데
(물론 난 이 앨범을 비틀즈 최고의 앨범으로 치지는 않는다), 앨범을 틀어놓고 있으면 빼놓고 지나갈 곡이 정말 단 하나도 없다.
오늘은 정말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엄청 길어졌다. 그러고 보니 이 글의 제목을 왜 이렇게 써놓았는지 설명하지 않았다.
물고기가 밴드를 좋아하는 건 당연하다. 왜냐하면:
솔로 아티스트의 사진을 어안렌즈로 찍으면, 얼마나 웃기겠는가...
상상해보라. 길쭉한 미남/미녀가 폼나게 서 있어도 살까 말까 한데, 한사람이 덩그러니 허리를 둥글게 하고 서 있는 모습을... 얼굴만 찍는 경우는, 으아, 생각만 해도 웃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