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커버/스토리 [diary edition]

쿵쿵. 심장이 뛴다.

심장은 뛰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것이 멈춘다.
두근두근. 이렇게 심장이 뛸 때에는 조만간 무슨 일이 벌어진다.
그게 불길하든 무섭든 너무너무 좋은 일이든.
공포영화는 이 두근두근을 가장 사악하게 이용하며,
연애소설은 이 두근두근을 가장 교묘하게 이용한다.
(생각과 달리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두근두근의 기억은 오래 남는다. 가끔은 추억이라고 이름붙여주기도 하는.)




한참 이탈리안 롹이 '프로그레시브'라는 타이틀을 달고 국내에 들어올 때 데 데 린드 De De Lind가 1973년에 발표한 유일한 앨범도 함께 들어왔다.
「Io Non So Da Dove Vengo. E Non So Dove Mai Andro. Uomo E'll Nome Che Mi Han Dato」라는, 아주 긴 제목을 단 앨범이었다. ("나는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로 가야하는지 모른다. 인간은 그들이 내게 부여해준 이름이다."라고 해석한다고 해설지에 적어놓았다.)

지금 기억할 수 있는 데 데 린드의 곡은 하나도 없다.
그만큼, 이 앨범을 자주 꺼내듣지 않았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항상 이 그림을 볼 때마다 '이런 건 LP 커버로 봐야 제맛일텐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석상, 그리고 그의 가숨에 붙어 있는 아주 빨간 심장.
배경이 하얀 색이었으므로 그 심장은 더 빨갛게 보인다.
이 앨범은 음악보다는 이 커버에 먼저 끌렸고, 지금도 가끔 커버 때문에 꺼내 음악을 듣게 된다.
이탈리안 롹 앨범 커버 아티스트의 많은 작품에서 자주 이름을 찾아볼 수 있는 일러스트레이터 마리오 콘체르티노 Mario Concertino의 작품이다.
(이탈리안 롹을 좋아했다면 오르메 Le Orme의 음반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크레딧을 자세히 살펴볼 것. 마리오 콘체르티노의 이름을 발견할 확률은 95%다. 안젤로 브란두아르디 Angelo Branduardi의 앨범을 꺼내봐도 좋다. 마리오 콘체르티노의 커버 아트에 대해서는 따로 적을 예정이다.)
앨범 타이틀로 따져본다면, 심장은 너무나 뻔하지만 인간을 상징한다.
그 심장이 지금 붉게 물들었으니, 저 석상은 곧 일어서서 나와 함께 걷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려면 1천년 쯤 지나야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럼 당신이 바로 1천년 전의 저 석상?)




푸 파이터스 Foo Fighters의 「One By One」(RCA, 2002)은 아주 깔끔한 심장 일러스트레이션을 담고 있다. 레이먼드 페티본 Raymond Pettibon이 그렸다. (부클릿은 그가 그린 다섯 컷의 빨간 심장 일러스트로 장식되어 있다.)
이 앨범 커버 속 심장은 꺼멓다.
타버린 심장... 무엇을 기다리다? 무엇에 지쳐서? 무슨 아픔 때문에?
그림 제목은 "Tired"다.
무엇이 그를 지치게 만들었을까? 그 또는 그녀?
그의 심장은 이제 까맣게 타버렸다. 이 심장은 곧 움직임을 멈출지도 모른다.
안타깝지만... 심장이 이렇게 까맣게 되는 동안에도 그 또는 그녀는 여전히 평소와 다름없는 생활을 할 것이다. 하긴, 내 심장 속도 모르는데. C'est la vie...

여기서 잠깐!!

「One By One」은 왼쪽처럼 리미티드 에디션도 있다. 푸 파이터스의 코어 팬을 위해 제작한 것으로, 4곡의 추가 신곡과 2곡의 라이브 트랙을 담고 있다고 한다.
오리지널 커버로 공개된 일반 버전도 보너스 DVD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판이라고 해서 그리 아쉬울 것은 없다. 이 앨범은 '코어'라는 단어 그대로 진정한 의미의 푸 파이터스 팬을 위한 것이니, 당신이 이것을 가지고 있다면 그렇게 믿어도 좋다.
(이 스페셜 팩 버전은 레이먼드 페티본의 일러스트가 표현하고 싶은, 무엇 또는 누구인가에 지쳐 꺼멓게 타버린 심장의 이미지가 훨씬 더 복잡하다. 심장의 안쪽은 물론이고 바깥쪽까지 시커멓게 처리되어 훨씬 더 지독한 상태처럼 보인다.)





반 더 그라프 제너레이터 Van The Graff Generator의 멤버였던 피터 해밀 Peter Hammill이 발표한 「X My Heart」(Discipline/PonyCanyon, 1996) 속 심장은 해석하기 어렵다.
앨범 타이틀도 그렇거니와 앨범 속에서 그림의 해석에 대한 어떤 단서도 찾지 못했다.
<X My Heart>라는 노래가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아니, 이 앨범이 세계에서 히트를 기록한 베스트셀러였다면 아마도, 모든 인터뷰는 이 커버 아트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했을 것이다. "커버 일러스트가 굉장히 의미심장합니다. 어떤 의미를 담고 있습니까?"라는 인터뷰어의 질문을 상상할 수는 있지만 피터 해밀의 답변은 떠오르지 않는다.
모두 상상이다.
한가지만 더 상상하면, 유난히 우울한 앨범 속 피터 해밀은 음악의 상상력을 되찾고 싶어하는 중이라고 해볼까? <Material Possession>에서 노래한 "Broken, lost, the precious thing, does that make your life so empty?"라는 가사 정도면 근접할 수 있을까?
어쨌든 리다트 Ridart에서 제작했다는 이 커버 아트 역시 그리 편해보이지는 않는다.




그나마 건강한 심장은, 철조망에 둘러쌓였지만 빛을 뿜고 있는 드림 시어터 Dream Theater의 앨범 「Live At The Marquee」(WEA, 1993) 속 심장이다.
영원한 삶을 살고 있다는 그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이 심장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그것 뿐일까?
하지만 이 심장도 아파보인다.
심장을 둘러싼 저 철조망은 심장이 뛸수록 더 조여들 것 같다.

이 심장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92년에 발표한 드림 시어터 최고의 앨범 「Images And Words」(Elektra, 1992)였으니, 거기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을까?
하지만 이 앨범을 보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만나 더 혼란스러워지는 느낌이 든다.
저 심장은 아픈 것일까?
뭐, 해석할 필요없이 그저 드림 시어터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무시할 수도 있다. 이 심장은 이후 발표하는 드림 시어터의 여러 앨범에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언 메이든 Iron Maiden이 '에디 Eddie'를 상징으로 삼았듯 드림 시어터도 그저 이 묶인 심장을 밴드의 이미지로 삼고 있는 것 뿐일 수도 있다.
그래도 다시한번 빨간 심장, 정열이든 열정이든, 아니면 분노든 쿵쿵 소리를 내며 뛰는 심장을 만났다.


살아가면서 적어도 세번쯤은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고통이나 푸 파이터스의 앨범 커버에서 본 것처럼 까맣게 타버리는 경험을 할 것이다.
어떤 상황이 되어야 그렇게 심장이 고통을 겪는지 모범답안은 없다.
남들은 깔깔 웃는 상황조차 내게는 고통이 될 수도 있다.
어느날 내 머리를 가볍게 때리는 빗방울 하나나, 몇년동안 땅속에서 지냈는데 하늘로 올라 부질없이 몇 주 동안 울기만 하다 개미의 밥이 되고 남은 매미의 날개 한쪽을 보았거나, 아니면... 아니면, 음, 조금전 옷깃을 스쳤던 지하철의 그 또는 그녀가 먼저 내린 순간이거나, 그런 상황조차 심장이 터지는 고통을 겪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10월이다. 심장이 아플 일이 더 많아질까? 이용은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며 10월의 마지막 밤을 슬프게 노래했는데...

내 심장은 지금 아픈가.
...그럴지도 모르겠다.
만약 그렇다면, 두근두근 뛰는 심장이었기 때문이다.


[추가 2007. 4. 17.]

사실 이후에도 숱한 심장을 만났습니다.
여전히 뛰고 있는, 여전히 두근두근한, 여전히 소리를 내는.
대신 내 심장이 잠시 멈춘 것 같아 추가하지 않았는데 겟롹님의 댓글에 따라 추가합니다^^



파파 로치는 2000년의 「Infest」(Dreamworks, 2000)을 열심히 들었습니다. 그땐 대세가 랩메틀이었죠? 그런데... 전 바퀴벌레를 굉장히 싫어합니다. 앨범 커버의 바퀴 때문에 항상 기분이 좋지 않아 지금은 꺼내질 않고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을 겁니다. 그래서 이후 앨범은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제가 찾지 못한 이유가 그래서였다고 슬쩍 핑계를 대봅니다.

그런데 혹시나 하고 시디장을 봤더니 다른 앨범은 안보이는데 이 앨범 「Getting Away With Murder」(Geffen, 2004)가 꽂혀 있더군요. 한번도 안들은 것 같은데 왜 거기 자리잡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이 앨범도 좀 무시무시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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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포스트
[커버/스토리] - 심장이 아프다 part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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