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n Who」(Independiente, 1999)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을 꼽으라면 대부분 <Why Does It Always Rain On Me?>일 것 같다. 하지만 난 그 앨범의 딱 네 곡만 기억한다. 그것도 분위기만. <Why..>는 가끔 듣지만 다른 이유는 없다. 제목이 멋지기 때문이다.
단 한곡도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불러본 적 없는 밴드에게 애정을 갖고 있다는 건 참 재미있는 일이다. 따라부르지 않은 이유... 아마 「The Man Who」를 듣고 나서 서둘러 구한 데뷔 앨범 「Good Feeling」에 혼자 'bad feeling'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왜 이 밴드는 항상 추측하게 만드나?" ...애정이 있다는 말은 지워버릴까?
기억나는 건 하나도 없지만 꾸준히 기억하고 있던 트래비스
Travis가 다섯번째 앨범을 발표했다. 「The Boy With No Name」(Independiente, 2007).
앨범 발표 전에 공개한 커버를 보면서 저긴 어디일까? 왜 저 건물만 덩그러니 놓았을까? 싶었는데, 알고보니 멤버들이 보인다. (사실 이건 기능을 거의 상실한 내 모니터 탓이기도 하다. 웬만큼 밝아서는 보이지 않는다. 조그만 사진 속에서 밴드 멤버를 발견하는 건 너무 어려운 미션이다.)
「The Man Who」도 멤버들의 모습이 그리 크게 드러나지 않았는데, 이 앨범은 심하다. 그림자가 없었다면, 아마 지금도 왜 건물만 찍었을까... 저 건물이 트래비스와 어떤 연관을 가지고 있는 걸까를 생각하고 있었을 게다. 타이틀이 "이름 없는 아이"였던 탓도 크다.
소년들은 어디로 간 거지?
그러자 이 앨범 커버를 촬영한 스테판 루이스
Stefan Ruiz는 이야기한다.
어디 있긴!! 옥상에 있지.
그랬다.
트래비스는 옥상에서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리며 멋지게 서 있었다.
트래비스의 앨범 커버처럼 눈 크게 뜨고 찾아봐야만 보이는 "소년들은 어디에 있지?" 커버가 또 있다.
다시 고백하면... 이 앨범 커버 역시 처음에는 무지개만 보였다.
아, 무지개가 떴구나. 나무 그림자가 길구나 했는데...
2002년에 결성되어 코드 세개면 충분해 스타일 펑크를 지향하는 일본 밴드 로드 오브 메이저 Road Of Major의 베스트 앨범 「Golden Road~Best~」(Junk Museum, 2007) 커버다.
밴드 이름 참 요란하다 싶은데, 텔레비전 기획으로 탄생한 밴드라고 하니 메이저의 길을 걸어가도록 내버려둬도 될 것 같다. 유명한 애니메이션도 잘 모르는 내게 이 밴드가 애니메이션 '메이저' 1기부터 3기 오프닝을 담당했다는 설명은 그리 쓸만하지 않지만, 어쨌든 이 커버도 소년 찾기 커버로는 딱이다.
* * *
사실 이렇게 멤버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것은 너무 뻔해 의도까지 다 알아버리는 신비주의다.
완전히 숨기자니 그렇고, 그렇다고 얼굴만 보여주면 재미없고.
뻔한 전략이지만 전략이 성공할 수 있으면 더 좋은 것이니 이런 커버를 만드는 것에 불만은 없다.
그런데... 정말, 소년들은 어디로 간 거지?
라고 끝내려다 추가하는
여기서 잠깐!
스톰 소거슨 Storm Thorgerson이다. 3부작 특집 정도는 해줘야 하는데, 자꾸 이렇게 조금씩만 이야기하게 되지만 오늘도 어쩔 수 없다.
왼쪽은 앤스랙스 Anthrax의 「Stomp 442」(Elektra, 1995)고 오른쪽은 오디오슬레이브 Audioslave의 셀프타이틀 데뷔 앨범 「Audioslave」(Epic, 2002)다. 스톰 소거슨의 커버 아트야 워낙 유명하지만, 이 커버/스토리를 구상하고 쓰면서 그의 커버에서 드러나는 한가지 특징을 정리할 수 있었다.
"스톰 소거슨의 커버 속에서 인간은 항상 초라하다."
그는 대형 건축물에 집착하고 커다란 스케일로 사진작업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항상 그 거대한 구조물의 한귀퉁이 또는 중앙에 인간을 등장시키는데, 그 속에서 인간은 작고 왜소하고 초라하게 보인다. 물론 이건 그의 철학이겠다. 물질문명 속에서 작아질 수밖에 없는 인간?
그 의미야 어떻든, 스톰 소거슨의 작업 속에서 인간을 찾아내는 것은 또 다른 재미다.